2023년 1학기 방송통신대 한국사의 이해 중간과제물)아래 문제 중 2개를 선택하고 교재를 참조하여 각각 서술 연보 작성 나의 삶 중에서 생년을 포함하여 15~20년 정도 선택 자서전 한 부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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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2023년 1학기 방송통신대 한국사의 이해 중간과제물)아래 문제 중 2개를 선택하고 교재를 참조하여 각각 서술 연보 작성 나의 삶 중에서 생년을 포함하여 15~20년 정도 선택 자서전 한 부분 작성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아래 문제 중 2개를 선택하고, 교재를 참조하여 각각 서술해주세요.

⑴ 단군신화를 통해 고조선 성립 배경을 알아보고, 단군신화의 역사적 의의를 설명하시오.

① 단군신화
② 단군신화를 통한 고조선 성립 배경
③ 단군신화의 역사적 의의

⑵ 삼국이 연맹체 국가에서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설명하시오.


2. 연보 작성 : 나의 삶 중에서 생년을 포함하여 15~20년 정도(연속되지 않아도 됨)를 선택하여 연보를 작성해주세요.

연보쓰기(1985~2011)


3. 자서전 한 부분 작성 : 연보 중 일부 시기 혹은 주제를 선택하고, 제목을 단 후 자유롭게 서술해주세요.

1994~2004년’, 청소년 시절의 나

4. 참고문헌

본문내용

한 부분 작성 : 연보 중 일부 시기 혹은 주제를 선택하고, 제목을 단 후 자유롭게 서술해주세요.
‘1994~2004년’, 청소년 시절의 나
나의 10대 초반은 3저호황 덕분에 유복했던 시기였다. 영화제목처럼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누구보다 나를 아껴주셨던 조부모님과 늦게 아들을 보고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하셨던 부모님 슬하에서 사랑만 받고 성장했다. 물론 이제는 그때의 행복했던 일들을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힘들었다는 기억은 없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적어도 불행한 시절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외아들처럼 애지중지 사랑만 받으며 자라다 보니, 쾌활하고 명랑한 성격 탓에 친구들과의 관계를 늘 주도했다. 또한 싫고 좋음이 분명하고 고집은 강했다. 인내심은 부족했으며 주위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 또한 크지 않았던 것 같다. 한마디로 유아독존과 같은 성품의 소유자가 10대 시절의 나였다.
반면 아버지는 보수적이면서 우직하신 분이었다. 무엇보다 가정에 충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성실하셨다. 그러나 이 좋은 성품을 나는 배우지 못했다. 적어도 10대 때는 그랬다. 다만, 아버지의 건강한 체력을 물려받은 것 같았다. 아버지는 명절과 공휴일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바쁘셨지만, 집에 오시면 늘 나의 자는 모습을 확인하고 주무실 만큼 사랑이 깊은 분이셨다.
초등학교 입학 이래, 아버지는 한 번도 학교성적 갖고 야단친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학교 성적은 우수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입학 이후 태권도를 배우면서 보다 적극적인 성격을 형성하고 자신감 있게 친구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귀하게 성장하다 보니 안하무인인 경우가 많고 내 마음에 안 들면 화부터 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학교생활에서 이것이 문제가 되어 친구들과 싸우는 일들이 잦았다. 특히 1994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는 늘 가까이서 훈계를 해주시던 존재가 사라지니, 더 어긋나는 학교생활이 지속되었던 것 같다. 늘 든든한 지원자이셨던 할아버지의 부재에 따른 상실감에 나도 모르게 방황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여기에 내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1997년의 IMF 구제금융 위기였다. 이 사건 이후에는 나를 사랑하셨던 아버지의 환한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사춘기를 경험하면서 이것이 상처가 되어 학교생활에 더 적응하지 못하고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물론 내 작은 눈에 들어온 것은 IMF가 아니라 아버지의 어두운 모습뿐이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는 해인 1999년에는 처음으로 이성친구를 사귀었다. 당연히 학업은 더 멀어지고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색해졌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공부하라는 말씀은 안하셨다. 단지, 친구와 잘 지내고 싸우지 말라는 말만 하셨다. 용돈을 받으면 브랜드 옷이나 신발을 사는 것이 이 당시 나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래서 부모님이 용돈을 주시지 않을까 걱정돼 부모님 앞에서는 ‘예’라는 대답은 잘했다.
요즘 학폭 논란이 여러 분야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폭력을 가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건 내가 생각해도 대견해보인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유류상종이라고 나처럼 불량스러운 친구들과의 싸움뿐이었다. 그럼에도 만약 나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친구들이 있다면, 만나서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싶고 또 그 마음을 위로해서 조금이나마 상처를 치유해 주고 싶다.
2001년은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이후 우리나라와 나의 가족 모두가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 한 해로 기억된다. 우리라나는 IMF 구제금융을 조기 상환해서 빚을 청산했고 이 즈음 아버지의 사업도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진후 에는 나이를 한 살 더 먹은 때문인지, 매일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죄책감을 느끼는 날이 많아졌다. 이렇게 아들 하나만을 믿고 계시는 부모님을 실망시켜드려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며 정신적으로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교공부는 여전히 적성에 맞지 않았다. 부모님도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 한결 부담은 덜했다. 오랜 고민 끝에 고등학교 졸업 전 대학진학은 포기했다.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이해해주셨다.
2004년 드디어 10대의 마지막 관문인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자랑스러운 졸업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잘 버텨낸 내 자신이 대견했다. 새로운 시작 앞에서 2주간 동안 전국 배낭여행을 떠났다. 육체적으로는 힘든 시간이었다. 특히 한여름 그냥 서있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지치게 되는데, 도보로 매일 걷는 강행군은 체력에 자신이 있던 나도 그 한계를 느끼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고비를 하나씩 넘어가면서 나를 뒤돌아보며 정신적으로 한 단계 성숙된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조금 어렵게 표현하면, 배낭여행은 경험과 기억에 근거한 나(자아, ego)가 아니라, 원래의 나로 경험과 기억을 넘어서는 존재 자체로서 나(자기, self)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장하며 생각과 느낌으로만 알고 있었던 나를 넘어서‘보다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신채호와 박은식의 역사관에 국가 대신 개인을 넣어도 의미가 통한다. 즉, 개인 또한 자신의 걸어온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혼이 없이 사는 것과 같다. 나는 배낭여행을 통해 나의 혼을 찾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2주 동안의 여행은 질풍노도와도 같았던 나의 10대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더 나은 나로 거듭나기 위한 하나의 여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우리나라의 역사가 나의 동반자였음을 깨닫게 된다.
문득 만약 IMF 위기가 없었고 아버지의 사업이 계속 호황이었다면, 내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해진다.
4. 참고문헌
송찬섭 외(2017), 한국사의 이해, 출판문화원.
https://www.culture.go.kr/knowledge/encyclopediaView.do?code_value=H&vvm_seq=8145&ccm_code=H061&ccm_subcode=H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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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3.03.01
  • 저작시기20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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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198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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