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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서 그의 전략을 비꼬기도 했다.
키케로는 병이 나서 파르살리아 직접 전투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그런데 전투가 끝나고 폼페이우스가 도망을 가자, 키케로를 총사령관에 앉히려고 했다. 그러나 키케로는 그를 거절하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배신자라고 외치며 그를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카토가 구해 주고는 몸을 피하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브룬디시움으로 건너간 키케로는 그곳에 머물면서 카이사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카이사르가 상륙했을 때 마음속으로 카이사르가 자신을 어떻게 대할 지 걱정을 하며 마중을 나갔다. 그런데 카이사르는 키케로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그 후에도 키케로를 늘 존중해 주었다.
그 뒤 공화정이 군주 정체로 바뀌자, 키케로는 정계를 떠나 청년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며 조용한 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지위나 가문이 뛰어난 청년들과 가까이 지냄으로써 그는 다시 큰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때 그는 철학에 관한 대화들을 책으로 엮어 내거나, 윤리학 또는 물리학에 관한 전문 용어를 로마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비유나 그 밖의 적절한 방법을 써서, 전문 용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로마어로 바꾸었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이후, 키케로는 카이사르 2세와 친분을 맺게 되었다. 그런데 카이사르 2세는 키케로에게 함께 집정관 자리에 오르자고 유혹한 후, 집정관이 되자 키케로를 버리고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손을 잡았다. 그 때 가장 큰 논쟁거리가 키케로를 죽이느냐 살리느냐 하는 문제였다.
키케로는 그의 나이 64세 때 먼지를 뒤집어써서 머리와 몸이 지저분했고, 얼굴은 근심의 빛이 가득한 채 여위어 있던 모습으로 헤레니우스의 손에 죽었다. 키케로의 손과 머리는 안토니우스에게 전달되었고, 그것을 연단 위에 걸어 놓았다. 이것을 본 로마 시민들은 안토니우스의 잔인함을 보았다.
그 뒤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카이사르 2세는 외손자가 키케로가 쓴 책을 읽는 것을 보게 되었다. 카이사르 2세는 그 책을 빼앗아 한참을 읽더니 이렇게 말하면서 돌려주었다.
“얘야! 이분은 뛰어난 학자였고, 훌륭한 애국자였단다.”
카이사르 2세는 마침내 안토니우스를 정복하고 얼마 뒤 집정관이 되었다. 그때 동료 집정관으로 키케로의 아들을 임명하였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집정관을 지내는 동안 그들은 안토니우스의 동상과 그를 위해 세운 모든 기념물을 없애 버렸다. 뿐만 아니라 안토니우스의 자손은 마르쿠스라는 이름을 쓸 수 없도록 하는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신은 안토니우스에 대한 복수를 결국 키케로 가문에게 맡겨 주었던 것이다.
키케로는 로마의 뛰어난 정치가이며, 웅변가재무관정무관집정관 등을 지냈으며, 렌툴루스 일당의 음모를 밝혀내어 로마를 위기에서 구해냈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와 함께 당시 로마의 세력가였으며, 한때 클로디우스의 음모로 로마를 떠나 망명 생활을 하기도 했다. 안토니우스가 보낸 자객의 손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참고자료
플루타르크 지음, 이성규 역, 『어른과 청소년을 위한 플루타르크 영웅전 선집』, 현대지성사, 1998
키케로는 병이 나서 파르살리아 직접 전투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그런데 전투가 끝나고 폼페이우스가 도망을 가자, 키케로를 총사령관에 앉히려고 했다. 그러나 키케로는 그를 거절하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배신자라고 외치며 그를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카토가 구해 주고는 몸을 피하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브룬디시움으로 건너간 키케로는 그곳에 머물면서 카이사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카이사르가 상륙했을 때 마음속으로 카이사르가 자신을 어떻게 대할 지 걱정을 하며 마중을 나갔다. 그런데 카이사르는 키케로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그 후에도 키케로를 늘 존중해 주었다.
그 뒤 공화정이 군주 정체로 바뀌자, 키케로는 정계를 떠나 청년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며 조용한 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지위나 가문이 뛰어난 청년들과 가까이 지냄으로써 그는 다시 큰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때 그는 철학에 관한 대화들을 책으로 엮어 내거나, 윤리학 또는 물리학에 관한 전문 용어를 로마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비유나 그 밖의 적절한 방법을 써서, 전문 용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로마어로 바꾸었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이후, 키케로는 카이사르 2세와 친분을 맺게 되었다. 그런데 카이사르 2세는 키케로에게 함께 집정관 자리에 오르자고 유혹한 후, 집정관이 되자 키케로를 버리고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손을 잡았다. 그 때 가장 큰 논쟁거리가 키케로를 죽이느냐 살리느냐 하는 문제였다.
키케로는 그의 나이 64세 때 먼지를 뒤집어써서 머리와 몸이 지저분했고, 얼굴은 근심의 빛이 가득한 채 여위어 있던 모습으로 헤레니우스의 손에 죽었다. 키케로의 손과 머리는 안토니우스에게 전달되었고, 그것을 연단 위에 걸어 놓았다. 이것을 본 로마 시민들은 안토니우스의 잔인함을 보았다.
그 뒤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카이사르 2세는 외손자가 키케로가 쓴 책을 읽는 것을 보게 되었다. 카이사르 2세는 그 책을 빼앗아 한참을 읽더니 이렇게 말하면서 돌려주었다.
“얘야! 이분은 뛰어난 학자였고, 훌륭한 애국자였단다.”
카이사르 2세는 마침내 안토니우스를 정복하고 얼마 뒤 집정관이 되었다. 그때 동료 집정관으로 키케로의 아들을 임명하였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집정관을 지내는 동안 그들은 안토니우스의 동상과 그를 위해 세운 모든 기념물을 없애 버렸다. 뿐만 아니라 안토니우스의 자손은 마르쿠스라는 이름을 쓸 수 없도록 하는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신은 안토니우스에 대한 복수를 결국 키케로 가문에게 맡겨 주었던 것이다.
키케로는 로마의 뛰어난 정치가이며, 웅변가재무관정무관집정관 등을 지냈으며, 렌툴루스 일당의 음모를 밝혀내어 로마를 위기에서 구해냈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와 함께 당시 로마의 세력가였으며, 한때 클로디우스의 음모로 로마를 떠나 망명 생활을 하기도 했다. 안토니우스가 보낸 자객의 손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참고자료
플루타르크 지음, 이성규 역, 『어른과 청소년을 위한 플루타르크 영웅전 선집』, 현대지성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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