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 대한 모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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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삼국사기`를 읽고(2편)
2.삼국사기의 편찬목적
3.김부식의 생애와 역사의식
4.삼국사기의 사학사적 위치

Ⅳ.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상호비교
1)체재의 성격
2)기술방법
3)사학사적 의의

Ⅳ. 의견제시
1)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도표를 통한 비교
2)삼국사기의 성격
▶ 편찬 당시의 시대상
3)삼국사기내용
▶ 삼국사기의 서술특징

본문내용

樂), 제2권은 색복(色服), 거기(車騎), 기용(器用), 옥사(屋舍), 제3∼6권은 지리지이다. 그리고 제7∼9권은 직관지(職官志)인바 중앙관부(7권), 궁정관부(8권), 무관과 외직(9권)으로 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신라제도의 해설에 치중하였고, 특히 지리지에 가장 큰 비중을 둔 것은 오행지에 중심을 둔 《한서 漢書》나, 예악지에 중점을 둔 《당서 唐書》와 그 특징이 다르다. 우선 제사지에는 5묘(廟), 3사(祀)의 설명이 중심이며, 악지는 악기, 가악(歌樂), 무(舞), 악공(樂工)의 순서로 되어 있다. 그리고 복색조, 기용조, 옥사조에 나타난 금지조항은 전국민을 하나의 법규 속에 묶어 국민의 의미를 제시한 것이며, 4두품과 평민간의 같은 대우는 주목할 내용이다. 지리지가 큰 비중으로 취급된 것도 일종의 영토의식의 표현으로 생각된다. 직관지에서는 중앙행정관부에 있어서 14관부와 19전(典: 7寺成典 포함.)의 균형적 배려와 궁정관부가 110여개가 넘고 있어 강력한 왕권유지의 제도적 뒷받침을 엿보게 한다.
3. 표 (表)
표는 박혁거세 즉위년(서기전 57)부터 경순왕 9년(935)까지를 연표 3권으로 나누고 있다. 이는 중국문헌의 연표에 재상표(宰相表), 종실표(宗室表), 방진표(方鎭表)가 있는 경우를 대조할 때 그 내용이 빈약하고 간소하다.
4. 열전 (列傳)
열전 10권은 중국문헌에 비하면매우 빈약한 편이다. 따라서 인물기준도 항목별(名臣, 循吏, 酷吏, 儒林, 叛逆 등)로 된 것도 아니고, 왕후/공주열전도 없다. 특히 10권의 열전 중에서 김유신(金庾信) 개인열전이 3권이나 되며, 나머지 68인을 7권에 포함시키고 있다. 특히, 7세기에 활약한 인물이 34인이고, 나라를 위하여 죽은 사람이 21인이나 되고 있어 위국충절의 인물나열이 핵심이 된다.
제1∼3권은 김유신전으로 그 안에 선조(武力, 舒玄)와 후손(三光, 允中, 巖)의 업적을 강조하였고, 제4권은 을지문덕(乙支文德), 거칠부(居柒夫), 이사부(異斯夫), 김인문(金仁問), 김양(金陽), 흑치상지(黑齒常之), 장보고(張保皐), 사다함(斯多含)의 전기이다. 제5권은 을파소(乙巴素), 후직(后稷), 밀우(密友), 박제상(朴堤上), 귀산 (貴山), 온달(溫達) 등 10인의 전기이다.
제6권은 강수(强首), 최치원, 설총 (薛聰), 김대문 등 학자의 열전이다. 특히, 최치원의 마한 고구려설이나, 백제의 해외진출에 대한 견해는 설총의 〈화왕계 花王戒〉와 함께 대표적인 내용이다. 제7권은 해론(奚論), 관창(官昌), 계백(階伯) 등 19인의 전기이다. 여기에서는 찬덕 (讚德)과 해론, 심나(沈那)와 소나(素那), 반굴(盤屈)과 영윤(令胤), 비령자 (丕寧子)와 거진(擧眞) 등 부자가 순국한 충의열사의 기록이 중심이 된다.
제8권은 향덕(向德), 성각(聖覺), 김생(金生), 솔거(率居), 도미(都彌) 등 11인의 전기이다. 특히, 효(향덕, 성각), 충의(劒君), 기예(김생, 솔거, 百結), 열녀(薛氏女, 도미),효녀(知恩) 등의 행위를 기록하고 있다. 제9권은 창조리(創助利)와 연개소문 (淵蓋蘇文)의 열전으로서, 결국 왕을 시해한 반신(叛臣)의 기록이다. 제10권은 궁예 (弓裔)와 견훤(甄萱)의 열전으로 결국 나라를 망친 역신의 기록이다.
5. 기타: 논찬(論讚)
《삼국사기》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논찬이다. 논찬이란 역사서술에 있어서 사신의 견해를 나타낸 사론(史論)을 말하는바, 《삼국사기》에는 논과 찬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논이라 하였다. 《삼국사기》에는 신라본기에 10측, 고구려본기에 7측, 백제본기에 6측, 열전에 8측 등 모두 31측의 논찬이 있다. 그 내용은 대개 예법준칙, 유교적 덕치주의, 군신의 행동, 사대적인 예절 등이 중심이 되지만 그러한 유교적 명분과 춘추대의(春秋大義)를 견지하면서도 우리 현실과 독자성을 고려한 현실주의적 입장을 띠고 있다. 그것은 내물왕의 동성취처(同姓娶妻)나 혁거세의 왕후동반순행을 옹호한 점이나, 신라 3보(寶)와 할고지효(割股之孝)를 비현실적인 것으로 비난한데 나타나 있다.
《삼국사기》는 신채호(申采浩) 이후 많은 학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유교중심의 사대적인 개악서(改惡書)는 아니었다. 12세기의 시대정신과 사회상을 고려할 때 그러한 중국중심의 풍조 속에서 우리나라를 찾으려는 노력이 엿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중국의 전통적인 사학이 가지고 있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의 객관적 서술자세를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하였다. 특히, 정부주도하의 관찬(官撰)이라는 역사편찬의 본을 정착시켜 조선초의 역사서술, 특히 《고려사》 편찬에 기여함으로써 전통사학을 크게 발전시켰다.
삼국사기의 서술특징
첫째, 이 책은 처음부터 삼국을 하나의 완성된 국가로 보았으며, 왕을 절대적 지배자로 파악하였다. 말하자면 1세기부터 삼국이 국가로 성장한 것으로 이해하였으므로, 태조왕, 고이왕, 내물왕을 역사적 전환점으로 보지 않았으며, 역사변천을 발전사관으로 파악하여 신라, 고려의 교체(交替)를 당위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둘째, 이 책은 역사내용을 하늘과 땅 사이의 관념적 사고를 통하여 파악하였다. 그러므로 김부식은 자연의의 변화와 인간의 활동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역사내용을 추출시켰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왕의 정치행위가 전개된다는 사실이다. 셋째, 이 책은 역사를 교훈으로 삼았기 때문에 편찬 당시의 현실비판을 특정한 과거사실인 백제, 고구려 부흥운동의 내분과 결부시켜 지도층의 분열과, 폭압자의 최후를 역사의 필요성으로 기술하였다. 따라서 김부식은 묘청(妙淸)일파의 패배나 견훤, 궁예의 멸망을 통일에 대한 분열의 응징으로 설명함으로써 역사의 당위성을 제시하고 있다.
넷째, 이 책은 강렬한 국가의식과 자아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종래 《삼국사기》의 사대성에 대한 반론으로서 우리나라 현실과 독자성을 강조한 김부식의 사론에서 엿볼 수 있었다. 끝으로 이 책은 역사에 있어서 개인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영웅주의사관이 아니라, 고대에 있어서 개인의 역할을 강조함은 물론 멸사봉공(滅私奉公)의 공적인 윤리를 제시함으로써 국가와 민족에 희생하는 인간의 도리를 중시하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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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8페이지
  • 등록일2003.06.08
  • 저작시기2003.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3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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