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의 정치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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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고구려의 통치체제
1. 5부체제의 성립과 운영
2. 중앙집권적 국가체제의 정비
3. 왕권의 쇠퇴와 귀족중심의 정치운영체제
4. 통치조직의 정비

Ⅱ. 백제의 통치체제
1. 5부체제의 성립과 운영
2. 중앙집권적 국가체제의 정비
3. 관산성 패전과 귀족중심의 정치운영
4. 통치조직의 정비

Ⅲ. 신라의 통치체제
1. 6부체제의 성립과 운영
2. 중앙집권적 국가체제의 정비
3. 통치조직의 정비

본문내용

아래에 실무를 담당하는 대사와 잡무를 담당하는 사(史)가 있었다. 그런데 중요 부서의 장인 영은 대개 2인 내지 3인이었다. 장관의 복수체제는 귀족회의적 전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직과 관등과의 관계를 보면 어떤 관직에 취임할 수 있는 관등을 하나로 한정한 1관등-1관직체계가 아니라 하나의 관직에 일정한 관등 이상의 소지자가 취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1관직-복수관등군체제는 신라의 관직체계가 관등체계보다는 신분체계에 의해 규제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2) 지방통치조직
부체제단계에서의 지방통치는 소국단계의 국읍-읍락체제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6부의 유력세력을 통한 간접적인 지배가 행해졌다. 그러나 중앙의 집권력이 강화되면서 종래의 국읍-읍락은 성(촌)으로 재편제되었고, 이를 토대로 하여 지증왕대에 와서는 지방관을 파견하게 되었다. 지방관 파견은 지방에 대한 중앙의 직접적인 통치를 가능하게 하였다. 읍륵이 중고기의 지방통치조직을 총칭하는 것이라고 할 때 52읍륵은 이 시기의 지방통치조직이 52개의읍륵으로 이루어진 것을 나타낸다. 읍륵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주군과 성(城)촌(村)이다. 중고기의 지방통치조직은 성(촌)을 기본토대로 하고 그 상부에 광역의 행정구역으로서의 주와 군이 설치된 주-군-성(촌)제라고 할 수 있겠다. 주군성(촌)제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주였다. 이 시기의 주는 행정구역으로서 일정한 직할시를 가지고 있었고, 동시에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군관구(軍管區)로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 주는 작전의 필요상 주치(州治)를 이동하기도 하였다. 주의 장관인 군주(軍主)는 주의 직할지를 다스리는 민정관임과 동시에 군지휘관의 임무도 지녔다. 소경(小京)은 514년(지증왕 15) 아시촌(阿尸村)에 소경을 둔 것이 최초이다. 소경은 행정적문화적 성격이 강한 지방통치조직으로서 왕경인을 옮기기도 하고 정복지역의 유력세력들을 사민(徙民)하여 안치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소경은 군사적 성격이 미약하였다. 소경의 내부구조는 주나 군처럼 수개의 촌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장관은 사신(仕臣, 仕大等)이라 하였다. 군(郡)은 주 다음으로 정치군사적으로 중요성을 가지는 지방통치조직이었다. 주군(州郡) 아래에 있는 하위의 지방통치조직이 성(촌)이다. 이들은 주나 군에 영속되어 그 지휘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성(촌)에 파견된 장관이 도사(道士)였다. 이처럼 성(촌)에 도사가 파견된 것은 성(촌)에 대한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파악과 지배를 의미하는 것이다. 주-군-성(촌)이라고 하는 지방통치조직을 구성하는 기본단위는 자연촌으로서의 촌락이었다. 이러한 자연촌락들이 모여 지방통치조직으로서의 성(촌)을 이루었다. 촌락들에는 중앙귀족으로 전화하지 못하고 지방에 남게 된 재지세력들이 존재하였다. 신라 중앙정부는 지방통치조직의 정비와 더불어 이 재지세력들을 편제하는 장치로서 외위체계를 만들었다. 외위체계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간(干) 이상의 것으로 간을 어미로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간 이하의 관등이다. 간 이상의 외위는 신라가 재지의 족장세력들을 상하로 편제할 때 족장을 의미하는 간을 확대분화시켜 만든 것이고, 간 이하의 외위는 이전에 족장으로서의 간이 지녔던 일벌 등의 지배기구를 하위의 외위로 체계화한 데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외위체계의 이러한 이원적인 구조는 재지세력들을 신분적으로 편제하는 것과 일정한 관련을 갖는다. 한편 중앙정부는 외위를 수여받은 재지세력을 주군과 성촌의 행정에 참여하여 지방관을 보좌하도록 하기 위해 주사(州司)군사(郡司)현사(縣司) 등 지방관사를 설치하고 여기에 일정한 관직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관직으로서 주목되는 것이 촌주(村主)사인(使人)군사(軍師) 의 직과 장척(匠尺)문척(文尺) 등의 직인데, 이중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촌주사인군사였다.
3) 군사조직의 정비
부체제 단계에서는 각 부의 유력자들이 부병(部兵)으로 표현된 군대를 가지고 있어서 군사조직체계가 다원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앙집권적 국가체제가 갖추어지게 되면서 각 수장들이 가지고 있던 군사권은 해체되어 점차 국왕 휘하로 일원화되었다. 동시에 국가체제의 정비와 더불어 진행된 정복적 팽창활동과 삼국 사이에 전개된 치열한 전쟁으로 군사조직의 규모도 확대되고, 또 중앙과 지방에 다수의 군부대들이 설치되었다. 이러한 군부대의 명칭으로는 기본적으로 당(幢)정(停)이 사용되었다. 신라의 군사조직의 체계적인 정비는 법흥왕대에 본격적으로 행해졌다. 법흥왕은 병부를 설치하여 군사권을 일원화하였고, 동시에 군부대도 새로이 정비하였다. 진흥왕대에 들어와 정복활동이 보다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군사조직도 확대개편되었다. 진흥왕대에 왕도에 두어진 중앙군단으로서 가장 핵심이 된 것은 대당(大幢)이었다. 왕도를 수비하기 위해 설치된 이러한 부대들의 주둔지와 관계되는 것이 대성군(大城郡)과 상성군(商城郡)에 위치한 6기정(畿停)이다. 한편 진흥왕대에 지방에 배치된 핵심군단으로 상주정하주정신주정비열홀정하서정이 있었다. 그런데 이 시기의 군사조직은 지방통치조직과 밀접한 관련을 가졌기 때문에 각 정은 주치에 배치되어 있었다. 따라서 주치가 옮겨질 때 정도 같이 이동되었다. 그리고 군이나 성(촌)에는 종래의 외여갑당을 확대개편한 부대(幢)들이 있었다. 신라의 군사조직은 진평왕대에 와서 대외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보다 확대되었다. 기왕의 군단 외에 진평왕대에 와서는 서당(誓幢)보기당(步騎幢)사천당(四千幢)급당(急幢) 등 중앙군단이 새로이 설치되었고, 또 지방에 배속된 5정에는 군사당보기당 등이 직속부대로 편제되었다. 그리고 각 부대에 배속된 군관조직도 정비되었다. 중앙과 지방에 배치된 각 군단의 군관조직을 보면 대당과 귀당법당서당 등 중앙군단과 지방의 5정의 최고지휘관은 장군이라 하였으며 진골 출신자만이 임명될 수 있었다. 장군의 휘하에는 대감(大監)제감(弟監)감사지(監舍知)소감(少監)화척(火尺)의 군관이 직속되어 있었다. 한편 6정에 직속되어 있는 부대와 군과 성(촌)에 배치된 독립부대 등의 지휘관은 당주라 하였으며 그 휘하에는 감화척 등의 하급군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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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0.14
  • 저작시기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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