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문학상 당대를 대표하는 대시인 왕유의 생애와 사상, 작품세계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중국문학상 당대를 대표하는 대시인 왕유의 생애와 사상, 작품세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서론

Ⅱ.왕유의 생애

Ⅲ.시대적 배경과 왕유의 사상

Ⅳ.왕유의 시
1.유가시
2.도가시
3.불교시
4.자연시

Ⅴ.결론

본문내용

만 들려 오는데
저녁 노을빛이 깊은 숲속으로 들어와선
다시 또 푸르른 이끼 위를 비추는구나.(녹채)
이 시는 당시삼백수를 비롯하여 당대 시집에는 어디에나 들어있는 망천시의 대표작이다. 깊은 숲속에서 느끼는 고요를 사람의 말소리가 들릴 정도라고 표현하여 잘 묘사하고 있다.
나눠진 줄마다 그루그루 이어진 빛 고운 나무들
맑디맑은 잔물결 속으로 거꾸로 비쳐 들었나니
결코 경성 황궁의 어구가에 늘어선 나무들처럼
봄바람에 날리며 슬픈 이별을 애달파하진 않노라.(유랑)
이 시는 깊은 산중에는 본래 공명을 추구하는 나그네가 없으므로 이곳의 봄바람에 말리는 버드나무는 실의한 사람들의 아쉬운 이별을 보며 가슴 아파하는 경성 일대의 버드나무와는 달리 한가로이 유유자적함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결국 왕유가 부귀공명에 대한 미련을 떨쳐 버리고 자연의 한적함에 젖어 유유자적하는 자신의 심경을 비유한 것이다.
그윽한 대숲 속에 홀로 앉아
거문고 타다 또 길게 휘파람 부는데
깊은 숲속이라 사람들 알지 못하고
밝은 달빛만 다가와 비추어 준다.(죽리관)
이 시는 당시삼백수에 녹채와 함께 들어있는 망천시의 대표작이다. 대숲 우거진 조용한 곳에 초당을 지어놓고 홀로 앉아 거문고를 타며 유유자적하는데 속세의 사람들은 세상살이에 바빠 이와 같은 세상을 모르고 지내지만 달빛만은 알고서 찾아와 주는 것을 표현한 시로서 자연과 사람의 이심전심의 상태를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망천집20수 외에 그의 또다른 자연시를 살펴보자.
텅빈 산 비온 후에 새롭고
계절은 늦가을이라
밝은 달빛은 숲 사이를 비추고
맑은 샘물은 돌 위로 흐른다.
대숲이 시끄러우니 빨래하던 여인들 돌아가는 듯
옆잎이 움직이니 고깃배가 지나가는구나.
봄 풀이 절로 시들어 가는데
왕손은 스스로 머물만 하구나.(산거추명)
이 시는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자연의 묘사가 뛰어나며 시각(달빛,고깃배)과 청각(샘물,여인들 소리)의 대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가지니 강호가 하얗고
물결이 밀려와 천지가 푸른빛이네.(송아계주)
이 시 역시 자연을 잘 묘사 하고 있다.
닭과 개가 촌락에 흩어져 놀고
뽕나무, 느릅나무는 먼 밭에 무성하다.
동네 사람 보이지 않고
침석 위로는 구름연기 솟아 오르네.(천탑주인)
무성한 방초는 봄을 싱그럽게 하고
낙락장송은 여름을 시원케 하네
우양은 스스로 마을로 돌아오고
철없는 아이는 관리가 무엇인지 모른다.(전원락칠수중)
위의 두 시에서는 닭과 개가 놀고, 뽕나무와 느릅나무가 무성하고 그 위로 뭉개구름 솟아 오르는 촌락과 해 저물어 스스로 마을로 돌아오는 우양 등을 묘사하여 평화로은 농촌의 모습이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다.
아침 닭이 이웃 마을에서 울어대어
모두 일깨워 맡은 일에 힘쓰네
농부는 밭 갈러 나가고
아낙은 바느질을 시작하네.(정우전가유증)
위의 시는 농가의 주체인 농부를 그리고 있다.
버드나무 색이 봄 산에 빛나고
배 꽃에 저녁새가 숨는다.
북쪽 창가 오얏나무 아래에서
한가로이 않아 초향하네.(춘일상방지사)
사람은 한가하고 계수나무꽃 떨어지네.
밤이 고요하여 봄 산이 비었는데
떠오르는 달에 놀란 산새는
봄 시내 가운데에서 때때로 온다.(조명한)
위의 두 시는 석조, 춘한 등의 자연을 벗삼아 한적한 생활을 보내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왕유의 자연시는 자연의 풍부하고 다채로운 아름다운 모습을 객관적·사실적인 수법으로 묘사하여 독자에게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이 자연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왕유의 자연시의 특징은 송, 소동파가 한 얘기로 일축할 수 있다. 소동파가 말하길
「미마힐지시, 시중유화, 관마힐지화, 화중유시.」
(왕유의 시를 음미해보면 마치 시 가운데 그림이 있는 듯 하고, 그의 그림을 보노라면 그림가운데 시가 있는 듯 하다.)
라고 하였다.
위의 예로 든 시를 보면 왕유의 자연시는 또한 평화로운 농촌의 모습과 농부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 여러 있으며, 한가한 생활의 정취도 즐겨 묘사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왕유의 시를 사상적인 경향과 제재선택 차원에서 분류하여 고찰해 보았다. 그 외의 시들과 또한 각 시들의 형식적인 면을 모두 살펴보지 못한 미흡한 점이 남아있으나, 앞서 살펴본 왕유의 시 만으로도 대강 그의 시 세계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Ⅳ. 결론
당대에 이백, 두보와 함께 최고의 시인으로 칭송되는 왕유에 대해 조금이나마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상에서 왕유의 생애와 시를 살펴 보았다.
그는 가히 천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재능이 뛰어나 어렸을 때부터 시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회화, 서예 등에도 능했다. 젊어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아갔으나 그 후 두 번이나 좌천을 당한 아픔으로 한 때 산속에 은거하며 벼슬을 버리기도 하였다. 그의 이러한 생애는 그의 사상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즉 젊어서는 유가사상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고, 은거생활을 할 때는 도가사상, 그리고 만년에는 불교사상에 심취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의 사상은 자연스레 그의 시에도 반영되었고, 관직에 있을때는 궁정시를, 변경지방에 좌천됐을때는 변경시를 그리고 전원에서의 삶은 그로 하여금 아름다운 자연시를 짓게 하였다.
왕유가 만약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평탄한, 즉 관직에서 별 탈 없이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았다면 과연 그의 시가 그만큼 다양한 사상과 주제를 가질 수 있었을까? 문학작품은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된다는 점에서 그의 이러한 생애는 왕유에게 다양한 작품을 창작할 수 있게끔 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안정된 삶의 꿈이 깨어져버린 후에도 그것에 대해 그다지 미련을 두지 않고 스스로 내면을 가꾸며 자연에 눈을 돌리는 모습에서 그의 온화하고 낙천적인 기질을 엿 볼 수 있었다.
그는 비록 멀리 둘러가기는 했지만 말년에는 상서우승의 벼슬까지 역임하였고, 당대 자연시파의 맹주로 이름을 날렸을 뿐 만 아니라, 남종문인화의 시조로 칭송될 만큼 회화에서도 크게 성공하였다.
요컨대 왕유는 뛰어난 예술가이며, 관료였고, 좌절을 딛고 일어나려고 노력한 당대의 창조직인 사람으로서 지금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키워드

  • 가격2,000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03.12.05
  • 저작시기2003.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36641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