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언어에 대한 의견 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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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관점의 문제

Ⅱ. 언어학의 관점

Ⅲ. 화용론적 관점

Ⅳ. 일상언어에서 문학의 언어로

Ⅴ. 문학의 언어활동 논리

Ⅵ. 언어세계와 현실세계

본문내용

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라고 했는데, 거기서 나아가 모르는 것을 알겠다는 무모할 정도의 추구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 문학행위이다. 그러한 점에서, 언어학이 확정적 의미에 집착한다면 문학은 의미의 불확정성을 인정하고 출발한다. 언어학이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않으려 한다면 문학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도전의 언어이다. 그러한 예를 한용운의 시 <알 수 없어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가 시적 언어어의 핵심을 보여 준다든지 서정시로서 대표성을 지닌다든지 하는 등의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한다. 언어활동의 한 국면으로서의 缺如槪念(없는 것의 존재를 표현하는 말들)을 표현하는 추구가 문학에서 어떻게 형상화되는가 하는 점만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만이다.
바람도 없는 공중에 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이 시는 어떤 언어활동인가? 일단은 문학적 언어활동이라는 점을 승인하고 들어가기로 하자. 그러면 이 시의 주체는 누구인가? 시의 마지막 행에 비로소 주체가 얼굴을 내민다. 일인칭 대명사 '나'가 나온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하는 데 나오는 '나'는 어느 차원의 나인가? 여기서 답을 하기보다는 그 층위가 다양하다는 점을 먼저 지적하기로 하자.
나의 가슴은 등불의 은유로 비유되어 있다. 나의 가슴이 등불이 되고 그 등불은 누군가의 밤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그 역할은 대단히 미약하다. 그러나 그칠 줄 모르고 탄다는 점에서 힘이 있는 등불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누구의 밤을 지키는 등불인 것을 모른다고 하는 이상, 나라는 존재 또한 누구인지 규정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존재가 아주 없는 것인가 하면 또 그렇지는 않다. 존재는 존재로 감지되기는 하는데 언어화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이러한 존재를 이성중심주의적 시각에서는 존재라 할 수 없다. 그러나 문학, 시에서 그러한 존재를 언어로 형상화하고자 한다. 이는 가히 존재충동이라고나 할 만한 그러한 언어적 욕구이다.
언어화되지 않는 존재를 존재로 돋구어 올리는 데 우리는 은유를 동원한다. 은유는 비슷한 것은 같다는 모순의 논리이다. A = B 라는 식으로 동일률이나 排中律과 같은 아리스토텔레스 식의 논리를 무시한다. 이렇게 논리를 무시한 채 대상을 언어화하는 것이 시에서 언어가 수행하는 특징적 역할이다. 따라서 나라는 존재는 일인칭을 나타내는 대명사로 기능하는 것을 넘어서 수많은 의미를 달고 있는 형상(실체가)이 된다. 그리고 위에 인용한 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언어화할 수 없는 것을 언어화하는, 결여성을 뒤집어 놓는 혁명적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문학의 언어 특징 중의 의미있는 국면이다. 이러한 치열한 사유의 끝가지에 열리는 맵짠 열매가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하는 역설이다. 역설에서 주체개념은 의미의 극한에 다다르게 된다. 이러한 언어활동은 민족이라는 거대단위를 대상으로 하여 수행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가히 혁명적 언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이 모순으로 가득한데 어찌 그들이 구사하는 언어에 모순이 없기를 기대하겠는가. 나는 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 또한 나를 사랑한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어쩌랴, 나는 나의 언어로 너의 손목을 잡거나 머리채를 쓰다듬을 수가 없다는 이 분명한 사실을. 그러려면 혁명의 칼을 빼드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가슴이 부풀어 울렁여 나는 말을 잊느니, 말이 없으면 그대 얼굴은 또한 가뭇없이 사라지고 만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 걸쳐 있는 이 구렁을 직접 메꾸는 방법이 이렇게 막연한데, 언어와 현실의 거리야 말할 바 있겠는가. 언어와 사실 그 사이에서 주체와 대상의 거리가 소멸한다면, 그리하여 의미있는 활동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라면, 주체의 분열쯤이야 무슨 상관일 것이며 주체의 중층적 분화가 대수겠는가.
우리에게는 시대의 어둠을 밀어내며 내 땅의 언어를 손질할 일이 있을 따름이다. 그것이 일상이면 어떻고 문학이면 무엇이랴. 언어활동이 내 존재의 증명이고 내가 남과 더불어 사는 윤리를 실천하는 길이 언어활동에서 열리는 것이라면, 우리의 나아갈 길은 언어활동 말고 달리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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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용, 『한국현대소설구조연구』, 삼지원,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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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steva, Julia, Le Texte du Roman, Mouton Publishers, 1979.
Oakeshott, Michael, On Human Conduct, Clarendon Press·Oxford, 1975.
Pratt, Mary Louise, Toward a Speech Act Theory of Literature Discourse, Indiana U.P., 1977.
Searle, John R, Intentionality, Cambridge U.P.,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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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lek, Ren & Warren, Austin, Theory of Literature, Peregrine Books,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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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4.12
  • 저작시기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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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46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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