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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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사용하는 한편, 서민이나 상류 주택에서는 겨울에 사용한 온돌방을 시설케 되는 고정에서 고상주거식 온돌방이 정착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온돌과 목조건축의 고상식은 동일 지역, 동일 시대에 그 문화가 공존하고 있었으나 신분의 층을 달리하여 존재했던 것이다. 그후 고려 시대에는 서민층에서 온돌은 일반화되었고, 따라서 한국민가의 공간 성격과 구조 그리고 조형의 특징을 안전 시켰다. 조선왕조 시대에는 제주도까지 전파되어 한국 전역에서 이용케 됐고 상유신분주택과 궁궐에서까지 사용하기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온돌 시설이 민가에 정착하므로 써 부엌은 취사 기능에 난방 기능까지 담당하게 되고 특히 침실이나 거실 등의 다른 공간과는 독립된 공간으로 만들어져야만 됐다. 방바닥을 덥게 하기 위해서 불길을 만들고 연기가 굴뚝으로 나가게 하기 위해서 구들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불을 때는 아궁이는 방바닥보다 훨씬 낮아야 했다. 그러므로 부엌바닥은 지표에서 낮게 만들어 방바닥과는 60 90㎝의 차를 만들었다. 바닥이 낮고, 독립된 공간이 되고, 다른 공간과 이질적인 동선이 되며, 아궁이 부뚜막을 가지는 한국만의 독특한 부엌을 가지게 되었다.
연간기온차가 심한 한반도의 자연 조건은 방의 외벽을 두껍게 하고 개구부를 작게 하여 폐쇄적 내부가 되었다. 거기에도 온돌의 영향이 있었다. 취사의 열기로 난방을 하게 되므로 온돌이 가지는 능력 한계로 인해 규모가 작은 방에 그 효과가 좋았고 바닥에서의 복사열로 기류 현상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와 같이 온돌은 한국민가의 외형은 물론 공간 성격과 생활양식을 좌우시킨 기본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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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5.05
  • 저작시기2004.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8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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