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지역의 독립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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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남 지역의 독립 운동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마산에 내려와 이곳 기독교계의 유지인 이상소(李相召)·임학찬(林學瓚) 등을 만나 경남지방의 민족 대표로서 서명 날인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실패하고 이튿날 상경하였다.
2월 26일 이갑성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인 배동석(裵東奭)을 다시 마산에 파견하여 서명 날인을 권하였으나 또다시 실패하였다. 이처럼 마산지방의 협조가 부진한 가운데 서울에서의 대대적인 독립선언식과 독립만세운동이 있은 직후인 3월 2일, 이갑성·임학찬·이형재(李瀅宰) 등을 통하여 그에게 30여매의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다.
그는 이튿날 이것을 무학산(舞鶴山)에서 군중에게 배포하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1년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어 197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음.
김 두 석(金斗石) 1915. 11. 17∼ 號 : 貞熙 국내항일
경상남도 마산(馬山)사람이다.
1939년 7월 20일 마산(馬山) 사립의산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일제의 신사참배(神社參拜) 강요를 완강히 거부하다가 동 교사직에서 해임당하였다.
1940년 5월 17일부터 1941년 7월 30일까지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에 대한 거부와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반대하다가 5회에 걸쳐서 구금당하였다고 한다.
1942년 8월 23일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도발하여 식민지 탄압정책이 가중되었을 때 신사참배요구와 일제의 식민지정책을 비판하다가 다시 일제 경찰에게 피체되었다. 1944년 9월 1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15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77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음.
강 종 완(姜宗完) 1900. 12. 25∼1962. 5. 5 3.1운동
경상남도 마산(馬山)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진주(晋州)·함안(咸安)·마산 등지에서 동지 180여명과 함께 항일 비밀경사대를 조직하여 독립선언문을 등사하고, 독립운동을 선전하는 격문을 작성하여 배포하는 등 지하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해 4월 25일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부산(釜山)형무소에서 3년 8개월의 옥고를 치르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어 196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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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4.07.15
  • 저작시기2004.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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