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 양동마을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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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행문 - 양동마을을 다녀와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양동마을을 다녀와서......

(1)양동의 고 가옥
(2)양동마을의 정자

본문내용

름이 ‘함허루(함허루: 허함이 가득 차고 잠긴다는 의미)다, 이 정자는 중건할 때 붉은 적송(춘양목)으로 건축했고, 건축한지 오래되지 않아 아직도 적송 고유의 붉은 기가 생생하다, 일몰 때 열려진 문틀을 통해 스며드는 햇볕이 홍송의 주재들을 비추면 , ㄱ자 대청은 붉은 기운으로 가득 찬다, 이 큰 대청의 이름은 삼관헌(삼관헌)이다, 즉 3개의 물체를 보고 느낀다는 뜻이다, 유형물일 수도 있고,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무형의 사고일 수도 있다, 우선 대청 후면에 심어진 3그로의 고목일 수도, 아니면 향단, 물봉 정상의 금잔디, 무첨당 이 3가지의 유형물일 수도 있다, 대청에 있는 3짝의 나무문을 열면 세 그루의 고목들 사이로 이씨 종가무첨당 사당이 정점으로 보인다, 대청을 굳이 ㄱ자로 번형된 형태로 만들어 정면에 3칸을 확보한 의도 중에 하나일 것이다, 또한 함허루에서는 향단이 바로 보인다, 이씨 문중의 가장 중요한 두 집을 안대로 삼아 건축한 절묘한 안배다, 왜 두 건물을 안대로 삼았을까?
심수정은 향단파에 속한 정자다, 즉 회재 이언적의 동생 농재공 이언괄의 갈래다, 그래서 향단을 안대로 삼았을 것이다, 또 한 이씨 문중의 대종가 무첨당을 심수정이 마을 중앙에 위치하여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무첨당의 사당을 복수의 안대로 삼았을 것이다, 이 두 가지의 필요에 의해 묘한 ㄱ자형의 형태를 취 할 수 밖에 없었다. 부속 행랑은 정자와 반대로 ㄴ자로 대각선 방향에 놓였다, 따라서 어느 각도에서 보면 마치 튼 ㅁ자형의 집을 이루려다 미완된 구조물로 보인다.
내곡정(內谷亭)
향토문화재 1914년 건립
안골(내곡) 깊숙한 곳 설창봉 정상 바로 밑의 계곡에 위치하여 외부인 이 찾기 힘들다, 이 정자는 안골 끊집 창은정사의 소유로 창은 정사를 통하여서만 올라 갈 수 있다, 이외의 장소에 이외롭게 건축된 정자다, 형식은 수운정과 비슷한 T자형으로 경주지방의 전형적인 정자 건물이다, 건물의 3면 전체에 계자난간을 둘렀고, 난간 청판에 꽃무늬를 조각했다, 또 기둥 위에도 꽃살이 조각된 보아지를 달았다, 정자의 형식도 이색적이지만 이렇게 정자건물 전체에 화려하게 조각한 예는 극히 드물다.
설천정사(雪川亭舍)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3호/1602년 창건, 1997년 제건
이 정사는 회재선생의 셋째 손자인 흥해군수 이의활(이의활)이 건립하여 강학하든 건물로 정자채 담하나사이를 두고 살림채외 행랑채가 독립적으로 건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언잰가 정자와 행랑채 사이에 있던 살림집은 멸실 됐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왼쪽 4칸을 대청으로 하고 오른쪽 2칸을 온돌방으로 배치했다, 막돌 흐튼층 쌓기한 기단 위에 주좌가 있고 주좌에 쇠시리를 한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에는 끝이 날카로운 쇠서를 갖춘 익공을 꾸몄다, 대청과 온돌방 사이는 세짝의 정자살 붙발기를 넣은 분합을 달았고, 후면은 4분합 골판문을 달았는데, 이 문은 전체를 들어 올려 열 수 있도록 하였다, 간결 소박하면서도 다양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꾸민 것이 돋보인다. 설천정의 행랑채 초가집은 초가집으로는 드물게 입체적으로 구성된 형태다, 특히 이 행랑채의 전면에 캔틸레버 발코니를 설치하는 등, 매우 특이한 구조와 형식을 가졌다.
원래의 정자건물은 1995년 겨울에 화재로 소실하여 1997년 재건하였으나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없어졌다.
영귀정(泳歸亭)
이 정자는 이씨 문중의 무첨당에 딸린 정자로 형태와 구성은 수운정과 비슷하면서 다른 점이 많다, 정자전면에 계자난간을 둘러 정자에 오르려면 뒤에 있는 툇마루를 통하여 오를 수 있다, 이 정자의 행랑채는 정자를 둘러싸고 있는 담 뒤쪽에 있고 특이하게 대문채에 하인이 항상 대기할 수 있는 하인 방과 창고를 사이에 두고 대문을 배치하였다 이 정자는 매우 해학적인 이름을 가졌다, 영귀정이란 정자 아래에 흐르는 기계천을 수영하여 이 정자로 돌아온다는 뜻이고 , 대문의 이름이 이호문(이호문)이라 방문객이 한번 불러서는 대문을 열지 않고 두 번 불러야 대문을 연다는 옛 선비들의 해학이 담겨 있다.
강학당(講學堂)
중요민속자료 83호/1867년 건립
손씨 일가의 서당인 안락정에 대응하여 이씨 일가의 자재들의 기초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지었다, 심수정 뒤 언덕에 위치하여 이씨 종가 무첨당의 사당을 안대로 잡아 건축하여 마를 전면이 보인다, ㄱ자 건물 꺾이는 모퉁이에 방을 배치하여 2개의 마루를 구획했고, 각 칸살이는 용도에 따라 길이를 배려했다, 특징은 작은 마루에 1/3칸 크기의 마루방을 만들어 서고(장판고)로 사용한 점이다, 서당 건물다운 기능과 규모다. 건물은 간결하고 층고도 낮고 구조는 검소하다, 강학당 입구에 3칸의 부속 행랑채를 두어 서당의 필요한 일을 하도록 안배하였다, 또 하나의 이씨 일가의 서당인 경산서당은 1970년대 포항공업용수 땜을 건설할 때 안계리에 위치한 것을 그대로 이전한 것으로 서당 건물로서는 규모가 매우 크다.
안락정(安樂亭)
중요민속자료 82호/1780년 건립.
이름과 형식은 정자지만 손씨 일가 자재들의 서당으로 사용됐던 건물이다, 마을 앞 호명산 맞은편 인좌골 진입로를 사이에 둔 성주산 남쪽 산등성이에 독자적인 영역으로 자리잡았다, 5칸의 전형적인 강당 건물이지만 경관은 매우 뛰어났다, 앞마당에는 바위들로 연못 모양과 석가산을 꾸몄다, 서당으로서는 흔치 않은 조경시설이다.
사실 이 많은 곳들은 다 둘러보고 정취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많았지만, 양동마을을 둘러본
후 문화재에 대해서 많은 것을 느꼈다.
특히 이언적선생의 청백리 사상이 담긴듯한 가옥을 보면서 나도 선생의 정신을 이어야할
후손임을 절실히 느꼈다.
또한 단아함을 배우고 여백의 미를 가질 줄 아는 조상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나도 그런
것들을 얼마나 알고 배울수 있을까? 얼마간 그 기운이 가슴속 깊이 파고드는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그건 아마도 조상들과 비교되는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인지 아님 깨달음에
대한 흥분인지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었다.
아무튼 짧고도 긴 양동마을 답사를 마치고 난 더욱더 가벼운 걸음으로 상쾌한 설레임을 느끼며 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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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7.15
  • 저작시기2004.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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