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미술과 신고전주의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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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세기 미술과 신고전주의 미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19세기미술(개론)

2.신고전주의미술
1)다비드
2)앵그루

본문내용

화가들은 모두 그의 밑에서 나왔다. 역사적 주제를 그린 작품은, 18세기 로코코 미술의 우아·섬려한 것에 비해, 고대조각이 지니는 조화와 질서를 존중하고 장대한 구도 속에서 세련된 선에 의하여 고대조각 그대로와 같은 형태미를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형식적으로는 잘 다듬어진 대구상화(大構想畵)이긴 하지만, 다소 생동감이 결핍되어 있다. 이와는 달리 초상화에서는 고전적인 형식미 속에서 사실적인 묘사력을 충분히 살려 참신한 느낌이 약동하고 있다. 나폴레옹 실각 후 추방되어 1816년 브뤼셀로 망명하였고,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였다. 그 밖에도 《마라의 죽음》(1793) 《사비니의 여인들》(1799) 《나폴레옹의 대관》 《레카미에부인의초상》 등의 대표작이 있다. 또 《라부아지에 부처상(夫妻像)》(1788)과 같은 초상화도 있다.
다비드는 프랑스의 고전주의의 창시자 및 지도자로서 널리 알려지고 있다. 파리에서 태어나 죠셉 비앙의 제자였으며, 1755년 로마에 유학하여 라파엘로 및 고대미술을 연구한 후 1780년 귀국하였다. 1785년에는 대혁명적인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를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고전주의의 이상을 형식적과 내용면에서, 순수하게 실현한 최초의 작품이었다.
다비드는 자코뱅당원으로서 프랑스 혁명운동에 적극참여하고 마라의 죽음 등 혁명사건을 취재한 작품도 그렸다. 혁명이 끝난 후 나폴레옹의 궁정화가로 나폴레옹 대관식을 비롯한 영웅을 찬미한 작품을 남겼으나, 나폴레옹이 실각하고 왕조가 부활하자 앞서의 혁명때 국왕의 사형에 투표한 책임을 추궁당해 추방되어 벨기에 브뤼셀로 가서 그곳에서 세상을 하직하였다. 다비드는 고대의 제재와 내용을 이상으로 하여 지나치게 엄격한 구성 뚜렷한 윤곽 조각과 같은 찬 느낌의 색조 등을 추구하였으며, 앵그르에 의해 그 완성을 보았다.
<작품.1>http://www.imoon21.com/modern/classic/david/davidimg/brutus.jpg
브루트스앞으로 자식들의 유해를 옮겨오는 호위병들
1789년, 캔버스 유채
파리, 루브르 미술관
로마 공화국 집정관 브루트스는 공화국에 반역적인 음모를 꾀하던 일당 속에 자신의 두 아들이 있음을 알고 고심하지만 의무감이 앞서 그들을 반역죄로 사형에 처한다. 집에 돌아온 그는 처형된 자식들의 유해가 운반되어오는 것을 보고 괴로움과 슬픔에 잠겨있고 그의 아내와 딸들은 놀라움과 슬픔에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있다. 이 극적인 장면을 무대장치처럼 차려진 배경과 사람들의 로마풍 의상은 다비드의 고대연구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작품.2>http://www.imoon21.com/modern/classic/david/davidimg/hora.htm
호라티우스형제의 맹세
1789년, 캔버스 유채
파리, 루브르 미술관
신고전주의의 신호탄이자 다가올 혁명에 대한 예고였다. 혁명을 앞지른 미술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혁명 전야의 투지 정신을 담아 내고 있으며, 당시 열광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장면은 늙은 부친 호라티우스 앞에 한 줄로 선 삼형제가 조국을 위해 싸움터를 떠나기에 앞서 부친께 맹세를 하고 있는 긴박한 순간이다. 오른쪽에 슬픔에 젖어 있는 연약한 여인들의 표정은 한층 감동적인 요소를 더한다.
<작품.3>http://www.imoon21.com/modern/classic/david/davidimg/marat.jpg
마라의 죽음
1793년, 캔버스 유채
브뤼셀 벨기에 왕립 미술관
1793년 7월 13일 마라의 암살 소식이 전해지자 다비드는 그림 제작에 착수하여 같은 해 10월 14일 완성하여 작품을 공개하였다. 악성 피부병때문에 목욕을 하면서 집무를 하던 마라에게 거짓소개서를 갖고 온 25세의 여인 샤를로트 코르데가 찾아와 칼로 찔러 죽였다
<작품.4>http://www.imoon21.com/modern/classic/david/davidimg/napoleon.jpg
나폴레옹대관식
1806-7년, 캔버스 유채
파리, 루브르 미술관
나폴레옹이 자기 스스로 대관한 후 황후가 되는 조세핀에게 관을 씌워주는 광경으로 교황 비오7세가 그 대관을 축복하고 있는 모습이다. 초상화의 전시라고 할 만큼 나폴레옹의 모든 인물들이 이 그림에 나타나있으며 개성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화면 정면 별실로 만들어진 장소에는 이 행사에 불참한 나폴레옹 어머니와 가족들이 보인다. 다비드가 나폴레옹 부탁으로 이 그림에 참석시킨 것이다.
<작품.5>http://www.imoon21.com/modern/classic/david/davidimg/recamier.jpg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
1800년, 캔버스 유채
파리, 루브르 미술관
레카미에 부인은 1800년 당시 23세로 파리 사교계에 이름높은 여성이었다고 한다. 이 초상화는 신고전주의 양식을 교과서처럼 보여주는 작품으로 수직선과 수평선이 강조된 아담한 구도, 그리스풍의 여인의상, 배경을 단순화하고 갈색을 주조로 색채를 차분하게 표현한 점이 인물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작품.6>http://www.imoon21.com/modern/classic/david/davidimg/savis.jpg
사비니 여인들
1799년, 캔버스 유채
파리, 루브르 미술관
고대로마 건국에 얽힌 이야기를 소재로 한 것이다. 초기 로마는 무인만의 남성세계로 후세대가 문제가 되었어었다. 그래서 근접 마을의 사비니족을 로마축제를 구실로 초청하여 그 여인들을 약탈했다. 여인들을 약탈당한 사비니 남자들은 그 후 실력을 길러 복수하고자 로마에 쳐들어 갔을 때 로마사람들의 처가 되어 가정을 이루고 있던 사비니여인들이 싸움에 끼어들어 싸움을 중재하고 있는 장면이다.
<작품.7>http://www.imoon21.com/modern/classic/david/davidimg/socra.jpg
독배를 드는 소크라테스
1787년, 캔버스 유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청년들을 현혹시키고 독재에 반론을 제기했다는 죄명으로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을 받았다. 독배를 받는 순간까지 그는 우인과 제자들에게 진리를 전하고 있다.
(사진출처 : http://www.imoon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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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9.13
  • 저작시기2004.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6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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