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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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근대국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문헌 자료

2. 문자체계, 정서법

3. 음운

4. 문법

5. 어휘

본문내용

예로 '다만 누구(몽산법어 20)'의 '누구'가 있다. 근대어에도 '이 벗은 누고고'(노걸대언해 下 5)와 같은 것이 있지만, 결국은 '네 뉜다'(삼역총해 8.1)와 같이 변하는 것이다.
근대어의 문장은 중세어와 마찬가지로 복잡한 구조를 가진다. 언해 자료는 물론 근대 소설을 보아도 단문은 드물고 복합문과 합성문이 뒤얽혀 있다. 이것이 현대에 와서야 단순화 된다.
5. 어 휘
근대어의 어휘는 초기에서 후기로 내려오는 동안 소멸, 생성의 많은 변화가 나타난다.
⑴ 순수한 국어 단어들의 소멸
① 한자어로 대체된 경우 : 고대로부터 있어 온 한자어의 침투가 심각하게 된 증거. 그 예로 '뫼(山), 까링(江, 湖), 아힝(親戚), 오래(門)' 등이 있다.
② 한자어에 대체되지 않고 폐어된 경우 : 그 예로 '외-' (穿鑿), '외하-' (刻), '혁-' (小) 등이 있다. 용비어천가의 '입더시니' (迷, 19장), '혀근' (小, 82장)이 1659년 중간본에 '업더시니', '져근'으로 고쳐진 예가 명백한 문헌적 증거. 훈몽자회에도 임진란 이전 간본의 '刻 외하까'(上 1)이 1613년 중간본에 '刻 사길까'으로 고쳐진 예가 보이는데, 이는 '외하-'란 단어를 당시에 이해할 수 없었던 증거가 된다. <참고> '외하-'는 '외-'와 '하-'(掘)의 합성 어간. '외-'는 몽산법어(28)의 "穿鑿잎 욀씨라" 참조.
⑵ 새로운 단어 추가
① 서양문물의 유입에 따른 새로운 단어 추가
선조 말년에 무렵에 유럽 지도가 처음 유입되어 일부 식자층이 지리적 지식 가지게 되었고, 인조 때부터 본격적인 서양 문물의 도래와 서양인과의 직접 접촉으로 서양에 대한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북경을 통해 자명종(自鳴鐘), 천리경(千里鏡) 등의 기계와 지도, 천문 지리서, 기타 과학과 종교에 관한 서적 등이 유입되면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지식이 제공되었고, 인조 8년 때의 화란인 朴淵이나 효종 때의 화란인 하멜 일행 표착 등으로 서양인과 직접 접촉도 가지게 되는데, 이러한 서양 문물의 유입은 우리 나라에 적지않은 새로운 단어를 가져온 것이다. 그 예로 '담배(煙草)'도 이 시기 실물과 함게 들어온 것이다.
② 한자의 영향에 따른 새로운 단어 추가
'뉴'(輩, 동문유해 下 51)는 한자어 '類'(류)에서 나온 말로 추측. 그 예로 '좌우편 뉴들을(삼역총해 1.10)'이 보인다.
'싶심이나'(敢히)는 '焉敢生心'(언감생심)에서 온 표현으로 추측. 그 예로 '싶심이나(不敢, 역어유해 上 31), 싶심이나 그러힝리잇가(박통사언해 上 58)' 등이 보인다.
⑶ 한자어의 소멸과 의미 변화
한자어에도 오늘날에는 아주 쓰지 않게 되었거나 그런 뜻으로는 쓰지 않게 된 것이 매우 많다.
① 소멸의 예
'原情'(陳情), '人情'(賂物), '放送'(釋放), '下獄'(投獄), '等待'(미리 준비하고 기다림), '發明'(辯明), '政體' (다스리는 형편) 등이 보인다.
② 의미 변화의 예
'어엿브-'가 중세의 '憐悶'의 뜻에서 근대의 '美麓'의 뜻으로 변한다.
'어리-'가 '愚'의 뜻에서 '幼少'(16세기 말)의 뜻으로 변한다. 원래 '졈-'이 '幼少'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가 '어리-'에 밀려 이후에는 그보다 연령이 좀 많음을 뜻하게 된다. 그 문헌적 예로 '어린 아힝( 兒 소학언해 4.16)'가 보인다.
'싶랑힝-'가 중세인 15세기에 '思, 愛'의 의미를 공유하다가 뒤에 '愛'의 뜻만 가지게 된다. <참고> 15세기의 '딪 -'(愛), '괴-'(寵)는 차례로 폐어가 된다.
'즛'은 '용모'의 뜻에서 품위가 떨어져 현대어의 '짓'이 된다.
'힘'은 훈민정음 해례(용자례)에서 '爲筋'이라 밝히듯이 중세에 '筋(힘줄)'을 의미한 것이 뒤에 추상적인 개념 '力(힘)'으로 변한다.
중세어의 '빌'은 현대어의 '값'과 '빚'의 뜻을 공유하다가 근대어에 '빚'의 뜻만 지니게 된다.
중세의 '빌아다'는 현대어의 '빗싸다'로 되어 '價高'의 뜻으로 쓰이나, 그 '빌아다'의 '아다'는 '値'(그만한 가치가 있음)의 뜻이 현대어의 '매맞아 싸다'의 예와 같이 그 의미의 격이 떨어지게 된다. 한편, '싸다'의 의미 변화는 흥미로운 현상. 원래 중세에서 '빌디다'가 '價廉'의 뜻이고, 17·18세기의 '갑아다'는 '값이 적당하다'의 뜻으로 쓰인 것(價値 갑아다, 동문유해 下 26)으로 보아 '싸다'가 '價廉'의 뜻이 된 것은 19세기 정도가 아닌가 추측.
⑷ 차용어
① 중국어 차용
근대에도 중국어가 차용어의 가장 중요한 공급원. 황윤석(黃胤錫)의 이수신편(理藪新編)과 정약용(丁若鏞)의 아언각비(雅言覺非)는 18·19세기의 중국어 차용어에 대한 생생한 예증 자료. 그 예를 보면 '당지(當直), 다홍(大紅), 자디(紫的), 망긴(網巾), 던링(團領), 간계(甘結), 슈판(水飯), 비단(匹段), 탕건(唐巾), 무명(木綿), 보리( )' 등이 있다.
정약용 선생님께서는 '보리' 중국의 ' '(중국음 '보리')를 차용했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菩里'라 표기했으며, 국어로 麥을 '보리'라 하는 데서 ' 眠鏡'을 麥鏡이라고 하게 되었다고 지적하셨는데, 이로 미루어 취음자(取音字) 사용이 근대에 유행했던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중국어 차용어는 그 본래의 한자에 대한 지식으로 점차 그 한자의 우리 나라 발음으로 이행되는 일반적인 경향 가진다. 그것은 '보리'가 동문유해(下 23)에는 '버리', 화어유초(20)에는 '하리'로 되어 있는 것으로서 그 예증을 삼을 수 있다.
② 만주어 차용
종래에 만주어 차용으로 지적된 것은 대부분 몽고어로부터 만주어와 국어가 공동으로 차용한 것. 이것을 제외하면 그 수는 매우 적다. 그 예로 'nereku'가 '널쿠'(斗蓬, 동문유해 上 55, 한청문감 11.6)로, 'soforo'가 '소부리'(護 股, 역어유해 보편 46; 鞍座兒, 동문유해 하 下 19)로, 'kurume'가 '쿠리매'( 子, 동문유해 上 55, 한청문감 11.4)로, 'mahala'는 '마흐래'(冠, 동문유해 상 上 55)로 차용된 것들이 있다. 이 중 마지막 예는 중세 몽고어의 'ma alai'(帽)를 만주어와 국어가 공동으로 차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키워드

어휘,   문법,   음운,   문자체계,   정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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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2.10
  • 저작시기2004.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77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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