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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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비평>개화기의 윤치호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본론
1. 내용요약
1)근대변혁사상
2)근대변혁방법론
3)친일협력의 논리
2. 비평
1) 저자의 연구시각
2) 책에 대한 비평
결론

본문내용

좀더 세밀하게 다루었으면 하는 점이다. 한 명의 인간을 심층심리학적으로 연구할 때 가장 중요하게 관찰해야 될 시기는 유년기이다. 윤치호의 아버지가 서얼출신의 무관이라는 점은 그가 개화사상을 쉽게 받아들이게 된 원인 중 하나이다. 윤치호란 신동이 권세있는 양반관리의 자손으로 태어났다면 그가 그토록 유교논리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을 것이고, 쉽게 기독교를 수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염세적인 가치관도 유년시절 성장과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거라고 추측된다. 물론 자료가 한계로 인해서 그것이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나중에라도 이러한 연구가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론]
윤치호는 그의 일기에서, 힘이야 말로 곧 정의이고 세계의 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최소한 위선자는 아니었다. 결국 해방 후 윤치호는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못 이겨 자살하게 된다.
그의 대한 연구를 통해서 당대 유학파 지식인의 전형적 정서를 살펴볼 수 있다. 한마디로 윤치호는 흑도 백도 아닌 회색인의 삶을 살았다. 좋게 말하면 주어진 현실상황에서 최선책과 차선책을 동시에 생각하는 자였고, 나쁘게 말하면 우유부단하고 유약한 지식인이었다. 그에게는 3. 1운동이 순진한 민족주의자들의 무모한 행동이었으며, 땅을 팔아 독립운동에 자금을 대주는 것보다 일본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땅을 사들이는 것이 더 필요한 애국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윤치호는 차가운 현실주의자였다. 그의 양비론적 사고는 결국 친일의 논리를 따르게 된다.
친일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가 앞선 세대의 잘못을 비판할 때 ‘나중에 태어난 자의 특권’을 가지고 비판해서는 안 될 것이다. 흔히 있는 일이지만 당시의 상황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이유 때문에 자기 자신을 절대적 정의와 동일시하는 일은 의미 없는 짓이다. 따라서 과거에 살았던 한 개인에 대하여 평가를 내린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다. 하지만 윤치호의 의식의 특징인 민족패배주의 · 대세순응주의 · 개화지상주의는, 역시 비판받아 마땅한 논리이며 지식인들이 빠질 수 있는 위험한 덫이다. 다만 우리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종합적이고 총체적으로 관점을 유지하는 일이다. 힘의 논리에 순응해야 할지 반항해야 할지는 각자의 판단에 따른 몫이며, 이것은 많은 이들이 인생을 살면서 계속 갈등하게 될 문제일 것이다.
[감상문]
우리사회에서 친일파는 지탄의 대상이다. 개화파 지식인 윤치호도 결국 친일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사회진화론의 신봉자였기 때문에 제국열강들의 식민지지배를 인정하였고, 전통적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조선인들을 경멸하였다. 하지만 그의 내면세계의 대한 연구없이 그를 단순한 민족반역자로 몰고가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인간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평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굉장히 복잡하고 모순적인 동물인 인간은, 단순히 분해와 조립이 가능한 기계가 아니다. 따라서 단순한 논리로 역사와 인물을 설명하는 것은 구시대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수학도 아니고 자연과학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모르는 게 약”이란 말이 있듯이, 지배자의 입장에서는 단순무식하고 애국심으로 무장된 사람들이 많을수록 효율적인 통치가 가능하다.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 동방예의지국”이란 민족주의적인 역사관은 어느 정도 가질 필요도 있다. 그러나 객관적이고 세계사적인 입장에서 솔직히 봤을 때, 우리나라가 그렇게 자랑스러운 나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TV나 신문에서 나오는 정치면 하나만 봐도 과연 동방예의지국이었는지 민족성이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차라리 자신의 단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는 것이 속편한 것이 아닐까 한다.
친일파의 문제로 다시 넘어가자. 무자비한 억압과 공포 속에서 끝까지 저항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단지 일제시대에 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을 마음대로 욕하고 있을 뿐이다. 필자가 당시 윤치호와 같은 개화파 지식인이었다면 그보다 더 빨리 친일의 길로 들어섰을 것이다. 어차피 제국주의도 내셔널리즘에서 발달한 것이며, 제국주의를 거부하기 위해 내셔널리즘을 강조하는 것은 모순이다. 윤치호가 항상 주장했듯이 힘이 곧 정의이고 인간의 본성은 악한 것이다. 그것을 부정하는 자는 위선자이거나 힘과 권력을 이미 소유하고 있는 자일 것이다. 세상의 부조리를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스스로 노력해서 힘을 소유하는 방법과 자살하는 방법, 이 두 가지뿐이다. 현실에 대해 불평불만만 하고 노력하지 않는 무능력 불만세력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약함을 깨끗이 인정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위로부터의 억압과 폭력이 싫어서, 폭력이란 방법으로 가진 자에게 반항하는 일 또한 모순이라고 생각된다. 폭력으로 일을 처리하는 방법은 모든 노력을 해 본 후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때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세상에 순종적인 사람들이 없이 반항적인 인간들로만 이루어졌다고 생각해보자. 그것 또한 끔찍한 일이다.
우리는 왜 일본이란 나라한테 그토록 분노의 감정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가? 물론 아직까지 일제시대의 잔재들이 청산되지 않았고, 일본이란 나라와 국민이 그렇게 착한 족속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반일감정을 가지고 살아야하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치 자해공갈단이 끈질기게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꼴이다. 한국인들은 과연 일본인들보다 덜 잔인하고, 더 도덕적인 민족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가? 한민족은 다만 그들의 잔학성을 시험해 볼 공간이 없었을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 같이 청개구리 같은 생각을 가진 인물이 19세기에도 있었다는 사실에 힘을 얻게 되었다. (윤치호의 아버지가 서얼출신이라는 점은 그가 세상에 냉소적인 것에 큰 작용을 하는 것 같다.) 결론지어 말해서 윤치호는 죄인이다. 그러나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그는 자신이 약자이며 죄인이란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리고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가장 안전하고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민족을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다. 위선자들이 존경받는 세상,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 차라리 힘의 논리를 철저히 신봉하는 죄인들이 더 깨끗하다.
  • 가격2,0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4.12.22
  • 저작시기2004.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79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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