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영화속의 이데올로기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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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쟁영화속의 이데올로기 진단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이데올로기 개념(더글라스 켈러의 개념을 중심으로)

2. 레이건 시대의 정치,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의 특징

3. 「탑건」속의 이데올로기 형상화 작업

4. 「플래툰」 속의 이데올로기 형상화 작업

5. 「플래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계점

6. 「풀 메탈 쟈켓」속의 이데올로기 형상화 작업

본문내용

말이다.
2) 전쟁에 관한 하나의 우화 「풀 메탈 재킷」
스탠리 큐브릭은 여기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베트남전을 보여준다. 베트남전이라면 대부분 정글을 떠올리지만 여기서는 단 한장면도 정글이 나오지 않는다. 스탠리 큐브릭이 보여주는 베트남전은 정글전이 아니라 시가전이다.
여기서 스탠리 큐브릭은 영화를 세부분으로 나눈다. 그래서 첫부분은 입대하고 훈련소에서 '살인병기'로 교육받는 과정이 비정하리만큼 자세하고 친절하게 다루어진다. 두번째 부분은 베트남에 도착하여 변해가는 해병대 '용사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부분은 시가전 에피소드이다.
그가 여기서 베트남전을 다루는 아이디어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50년대 B무비 전쟁영화의 장르로 베트남을 그려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베트남을 아메리칸 드림의 통과제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스탠리 큐브릭은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반전 메시지를 갖고 이 무모한 전쟁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마지막 세번째 부분은 (다소 도식적이긴 하지만) 어떤 영화보다도 베트남전의 성격을 명확히 드러낸다. 시가전을 벌이던 해병대 대대가 기어이 찾아낸 것은 단 한명의 여자 베트콩이었다. 미국과 베트남 사이의 이 잔인무도한 전쟁을 이처럼 아이러니하고 풍자적으로 묘사한 장면은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탠리 큐브릭은 거듭해서 자신의 무대를 '탈 베트남'화 시키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이것은 전쟁영화이며, 전쟁에 관한 하나의 우화일 뿐이지, 결코 베트남전에 관한 영화일 필요도 없다는 태도가 시종일관 유지된다.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 영화의 무대가 베트남전이긴 하지만, 그러나 큐브릭 자신이 다루려는 문제의식에서 베트남은 그 외부에 있는 것이다. 「폴 메탈 재킷」을 끌고 나가는 내부적인 논쟁의 중심에 있는 것은 오히려 큐브릭이 끈질기게 관심을 가져온 제도와 관리 속에서 인간성이 변모해가는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그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그의 일관된 관심의 연장에 다름 아니다.
3) 전쟁에 관한 철학적 관심, 「풀 메탈 쟈켓」- 영화 선정 이유
기존의 전쟁영화에서 살펴볼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은 보수와 자유의 진영사이에 놓인 대립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여기 반전의 메시지를 담고있는 전쟁영화 아닌 전쟁영화가 있다. 전쟁이라는 물리적 폭력의 사건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정체성과 실존에 대해 고민하는 반전 영화인 「풀 메탈 쟈켓」이 그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는 기존의 다른 영화들에서 채택했던 플롯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쟁터 내지는 시가지를 묘사하고 있다.(아니 전혀 없다) 그러면서도 가장 강력한 구조를 가지며 반전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나로하여금 숨막히는 긴장을 자아냈던 영화, 이 영화의 고민에 대한 관심은 감독의 철학적인 사색으로부터 시작한다.
큐브릭의 세계관은 단순명쾌하다.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는 투쟁의 역사이며, 패배의 역사(!)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영화속에서 언제나 싸운다. 고대 로마의 권력과, 섹슈얼리티와, 핵폭탄과, 컴퓨터와, 18세기 권력의 구조와, 미국의 역사와 그리고 군대와 싸운다. 그는 패배하는 자들의 수호천사이며, 결코 피흘리는 댓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도대체 큐브릭의 준비론적 패배주의는 무슨 목표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그는 패배를 통해서 야만을 본다. 그는 야만을 통해서 권력을 본다. 그리고 권력을 통해서 폭력을 본다. 패배하는 자들은 폭력으로 항거하고, 지배하는 자들은 폭력으로 다스린다. 두개의 폭력 사이에서 큐브릭은 멸종의 위기에 놓인 휴머니즘을 아슬아슬하게 뒤쫓는다. 그러나 여기에 와서 그는 어느 때보다도 침통하게 대답한다. 휴머니즘이 사망선고를 받은 다음의 폭력과 폭력의 싸움은 도대체 무엇일까? 큐브릭의 예언언 점점 더 지금 여기에서 실천적(!)으로 싸우고 있다. 우리의 세기는 계몽주의의 패배에 관한 시대였다고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큐브릭은 종종 우리를 체스판의 상대방으로 내버려둔다. 그래서 너무나 뻔한 말의 이동이 우리들로 하여금 함정이 아닌지 두렵게 만든다. 큐브릭의 예술적 전략이 담고 있는 가장 위대한 장점 중의 하나는 영화에 대해 아무런 존경심이 없는 관객들조차 무언가 생각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마치 우연한 말의 이동이 승리로 이끌리자 갑자기 그 말이 중요한 의미를 생성해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큐브릭의 영화에서 기표와 기의가 서로 부유한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언제나 의도한 편지는 엉뚱한 사람에게 배달되는 것과 같은 유희로 가득 차 있다.
말하자면 큐브릭에게서 질서는 카오스이다. 그래서 거기에 자신의 해석을 덧붙이게 만들고 싶은 유혹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은 함정이다. 큐브릭의 이미지들은 이미 해석되어져 있는 기능주의적 아이코노그래피들이며, 그 사이에 자신의 예술적인 고유방식으로 리듬과 개념을 부여하면서 임의적인 지시관계의 체계들을 필연적인 하나의 질서인 것처럼 다룬다. 큐브릭의 이미지들은 한편의 영화 속에서조차 독립변수들의 집합이다. 그것은 그 안에서 하나의 원칙을 갖고 위계질서를 세운 것은 아니다.
스탠리 큐브릭은 과학의 관념과 철학의 개념 사이에서 결코 넘을 수 없는 카오스를 알고 있다. 이제 카오스는 큐브릭의 문제계이다. 그에게서 카오스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장한다. 우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난데없이 등장한 모노리스이기도 하다. 폭력이지만, 동시에 권력이다. 시대이면서, 운명이다. 그리고 전쟁이면서, 또한 역사이다. 그는 그 사이를 아주 느린 속도로 유영한다(큐브릭의 영화 장면들 중에서 이상할 정도로 물리적으로는 빠르게 보이지만 정서적으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장면은 거의 없다. 그건 위기의 순간조차 마치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풀 메틀 자켓」에서 의도적으로 점점 느려지는 편집). 그가 의도적으로 느린 속도를 택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과학은 사물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큐브릭에게서 영화예술의 리듬과 개념은 슬로우 모션과 점프 컷이다. 또는 그의 영화는 실제로 그렇게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그 상태에 멈추어 선 다음에 비로소 철학에 대해 질문한다. 당신은 이데올로기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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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5.03.08
  • 저작시기2005.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87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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