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본론
1.한국관의 원점
2.황국사관
3.교과서 왜곡의 실태
1)1982년 교과서 왜곡
2)2001년 교과서 왜곡의 방향(후소샤 교과서를 중심으로)
4.만드는 모임
5.네트 21
6.이에나가 '교과서 재판'
7.국내교과서의 문제
1)세계사 교과서
2)국사 교과서
3)국내 역사 교과서의 교육 방향
결론
본론
1.한국관의 원점
2.황국사관
3.교과서 왜곡의 실태
1)1982년 교과서 왜곡
2)2001년 교과서 왜곡의 방향(후소샤 교과서를 중심으로)
4.만드는 모임
5.네트 21
6.이에나가 '교과서 재판'
7.국내교과서의 문제
1)세계사 교과서
2)국사 교과서
3)국내 역사 교과서의 교육 방향
결론
본문내용
있는 것이다.
2)국사 교과서
。『중학교 국사(하)』, 국사편찬위원회ㆍ1종 도서 연구 개발 위원회, 1998, 178쪽, 「대한민국의 수립과 발전」
<5ㆍ16 군사정변>박정희 정부는 조국의 근대화를 표방하고, 공업화를 우선 과제로 삼는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갔다. 이에 따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여러 차례 추진되어 수출이 증가되고, 소득도 향상되었다.
또, 박정희 정부는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전개하여 민주 우방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한편, 중립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에 노력하였다. 오랫동안 숙제로 남아있던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여, 한ㆍ일 협정을 조인하였다. (1965). 그리고 공산 침략을 받고 있는 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 국군을 파병하기도 하였다.
。『고등학교 국사(하)』, 국사편찬위원회ㆍ1종 도서 연구 개발 위원회, 1997, 205~206쪽, 「민주주의의 시련과 발전」
<5ㆍ16 군사정변과 박정희 정부> 박정희 정부의 경제성장 정책은 공업화의 급속한 추진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외국으로부터 공업화에 필요한 자본을 도입하였다.
또,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위해 한ㆍ일 회담을 추진하였는데, 이는 시민과 대학생들의 대일 굴욕외교 반대에 부딪혀 이른바 6ㆍ3시위를 유발시켰다(1964). 이에 박정희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여 시위에 참여한 시민과 학생들을 억압하였다. 야당과 대학생들은 박정희 정부의 억압통치에 반대하였으며, 여ㆍ야 대립은 점차 골이 깊어갔다. 특히 1969년에는 박정희의 장기 집권을 위한 3선 개헌이 강행되자, 여ㆍ야 국회의원들 사이에는 극심한 대립과 갈등의 양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동상 209쪽
<적극외교의 추진> 정부는 일본과의 국교를 정상화함으로써(1965) 한국ㆍ미국ㆍ일본의 3국 관계에 새로운 협력체제를 이룩하였고, 공산주의의 침략을 받고 있던 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서 국군을 파병하였다(1965). 그리고 1970년대부터는 비동맹 국가들과의 교섭을 통해서 국제사회에서 공존과 번영을 추구하려는 실리외교를 전개하였다.
중학교의 한국사 교과서에는 한일조약(한ㆍ일 협정)의 조인을 일본과의 관계개선이라는 시각에서 한 줄로 서술하고 있다. 반면에 고등학교의 한국사 교과서는 박정희 정부가 굴욕외교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한일회담을 추진하였다는 것과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함으로써 한ㆍ미ㆍ일 협력체제가 구축되었다는 것을 서너 줄로써 서술하고 있다.
3).국내 역사 교과서의 교육 방향
13일 교육부의 제7차 교육과정 개편안을 보면 2002학년도 이후 입학하는 고교생은 1학년때만 기본교과로 국사를 공부하고, 3년 간 주마다 1시간씩 모두 102시간 동안 공부했던 기존의 국사수업은 1학년때 주 2시간씩 68시간으로 줄었다. 특히 내년부터 고교 2·3학년생들은 한국 근·현대사를 기본과정이 아닌 선택과목으로 이수하도록 한 것은 근·현대사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더 빈약하게 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또 기본국사교육 교과과정도 근대 이전을 중점적으로 다루기로 해, 일제 강점기 민족 수난사에 대한 기술은 10쪽 분량인 현행 교과서보다도 더욱 줄어들 것이 확실시된다.
게다가 고교 2학년 때부터는 국사 관련 과목인 `한국 근·현대사'가 독서, 한국지리, 공업기술 등 53개 선택과목 중 하나에 포함돼 있어 학생들이 다른 과목을 선택할 경우 국사 교육은 아예 이뤄지지 않게 된다. 중학 교과과정에서도 현재는 주 4시간씩 국사 수업이 이뤄지고 있으나 내년부터는 국사가 사회교과의 일부로 편성되는가 하면 수업시간도 주 3시간으로 줄어, 중·고교 교육체계 전반에 걸쳐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한 국사교육의 축소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결론
이 교과서는 일본의 생각을 담은 하나의 책이 아니라 오늘의 일본 속에 숨어있는 무서운 생각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만약 새 교과서가 많이 채택되어 역사 교육이 이루어졌다면, 그 파장은 우선 일본을 비롯한 당시 제국주의의 제 3세계에 대한 침략을 정당화하게 된다는 것이며, 결국 이것은 이후 국가 간의 정상적인 관계를 이어갈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될 것이다. 또한 역사의 진실을 왜곡한 역사 교과서를 인정한다는 것은, 앞으로도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하고 왜곡하는 것이 합리화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일본의 교과서 파동은 그 기세가 한풀 꺾였다. 애당초 '만드는 모임'측이 목표했던 채택률10%에는 턱없이 모자란 수만이 채택되었으니, 이는 일본내의 양심 있는 목소리와 국제사회의 꾸준한 관심과 항의가 그 성과를 거둔 것이라 할 것이다.
일본은 분명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맡은바 책임이 지금보다는 커져야 한다. 하지만 그 책임의 바탕에는 반드시 과거에 대한 진실된 반성이 바탕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무책임한 행동과 사고로 일관되는 일본의 자리는 국제사회에서 생겨날 수는 없는 것이다.
일본의 교과서 파동을 지켜보며 우리의 책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일본의 양심 있는 목소리가 그 소리를 높일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일장기를 태우고, 불매운동을 하자는 목소리 외에 과연 필요한 우리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우리는 노력을 했었던가.
이제 올해의 교과서 파동은 1982년의 교과서 문제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분명 다시 그 고개를 치켜들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잘못된 점과 고칠점 들을 찾아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당면한 하나의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 고 문 헌
정일성, 2000. 『황국사관의 실체』 지식산업사.
한국 역사교과서연구회/일본 역사교육연구회(편), 2000. 『역사교과서 속의 한국과 일본』혜안
국회 도서관. 2001.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일본인의 건전한 역사의식형성을 촉구하면서』
홍진희, 1993. 『일본은 한국 역사를 왜 비뚜로 가르칠까』 소나무
서희건, 1986.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고려원
미야케 히데토시. 1990. 『역사적으로 본 일본인의 한국관』 풀빛
유네스코 한국위원회(편), 『21세기 역사교육과 역사교과서: 한ㆍ일 역사교과서 문제해결의 새로운 대안』 오름.
2)국사 교과서
。『중학교 국사(하)』, 국사편찬위원회ㆍ1종 도서 연구 개발 위원회, 1998, 178쪽, 「대한민국의 수립과 발전」
<5ㆍ16 군사정변>박정희 정부는 조국의 근대화를 표방하고, 공업화를 우선 과제로 삼는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갔다. 이에 따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여러 차례 추진되어 수출이 증가되고, 소득도 향상되었다.
또, 박정희 정부는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전개하여 민주 우방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한편, 중립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에 노력하였다. 오랫동안 숙제로 남아있던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여, 한ㆍ일 협정을 조인하였다. (1965). 그리고 공산 침략을 받고 있는 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 국군을 파병하기도 하였다.
。『고등학교 국사(하)』, 국사편찬위원회ㆍ1종 도서 연구 개발 위원회, 1997, 205~206쪽, 「민주주의의 시련과 발전」
<5ㆍ16 군사정변과 박정희 정부> 박정희 정부의 경제성장 정책은 공업화의 급속한 추진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외국으로부터 공업화에 필요한 자본을 도입하였다.
또,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위해 한ㆍ일 회담을 추진하였는데, 이는 시민과 대학생들의 대일 굴욕외교 반대에 부딪혀 이른바 6ㆍ3시위를 유발시켰다(1964). 이에 박정희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여 시위에 참여한 시민과 학생들을 억압하였다. 야당과 대학생들은 박정희 정부의 억압통치에 반대하였으며, 여ㆍ야 대립은 점차 골이 깊어갔다. 특히 1969년에는 박정희의 장기 집권을 위한 3선 개헌이 강행되자, 여ㆍ야 국회의원들 사이에는 극심한 대립과 갈등의 양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동상 209쪽
<적극외교의 추진> 정부는 일본과의 국교를 정상화함으로써(1965) 한국ㆍ미국ㆍ일본의 3국 관계에 새로운 협력체제를 이룩하였고, 공산주의의 침략을 받고 있던 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서 국군을 파병하였다(1965). 그리고 1970년대부터는 비동맹 국가들과의 교섭을 통해서 국제사회에서 공존과 번영을 추구하려는 실리외교를 전개하였다.
중학교의 한국사 교과서에는 한일조약(한ㆍ일 협정)의 조인을 일본과의 관계개선이라는 시각에서 한 줄로 서술하고 있다. 반면에 고등학교의 한국사 교과서는 박정희 정부가 굴욕외교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한일회담을 추진하였다는 것과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함으로써 한ㆍ미ㆍ일 협력체제가 구축되었다는 것을 서너 줄로써 서술하고 있다.
3).국내 역사 교과서의 교육 방향
13일 교육부의 제7차 교육과정 개편안을 보면 2002학년도 이후 입학하는 고교생은 1학년때만 기본교과로 국사를 공부하고, 3년 간 주마다 1시간씩 모두 102시간 동안 공부했던 기존의 국사수업은 1학년때 주 2시간씩 68시간으로 줄었다. 특히 내년부터 고교 2·3학년생들은 한국 근·현대사를 기본과정이 아닌 선택과목으로 이수하도록 한 것은 근·현대사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더 빈약하게 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또 기본국사교육 교과과정도 근대 이전을 중점적으로 다루기로 해, 일제 강점기 민족 수난사에 대한 기술은 10쪽 분량인 현행 교과서보다도 더욱 줄어들 것이 확실시된다.
게다가 고교 2학년 때부터는 국사 관련 과목인 `한국 근·현대사'가 독서, 한국지리, 공업기술 등 53개 선택과목 중 하나에 포함돼 있어 학생들이 다른 과목을 선택할 경우 국사 교육은 아예 이뤄지지 않게 된다. 중학 교과과정에서도 현재는 주 4시간씩 국사 수업이 이뤄지고 있으나 내년부터는 국사가 사회교과의 일부로 편성되는가 하면 수업시간도 주 3시간으로 줄어, 중·고교 교육체계 전반에 걸쳐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한 국사교육의 축소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결론
이 교과서는 일본의 생각을 담은 하나의 책이 아니라 오늘의 일본 속에 숨어있는 무서운 생각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만약 새 교과서가 많이 채택되어 역사 교육이 이루어졌다면, 그 파장은 우선 일본을 비롯한 당시 제국주의의 제 3세계에 대한 침략을 정당화하게 된다는 것이며, 결국 이것은 이후 국가 간의 정상적인 관계를 이어갈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될 것이다. 또한 역사의 진실을 왜곡한 역사 교과서를 인정한다는 것은, 앞으로도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하고 왜곡하는 것이 합리화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일본의 교과서 파동은 그 기세가 한풀 꺾였다. 애당초 '만드는 모임'측이 목표했던 채택률10%에는 턱없이 모자란 수만이 채택되었으니, 이는 일본내의 양심 있는 목소리와 국제사회의 꾸준한 관심과 항의가 그 성과를 거둔 것이라 할 것이다.
일본은 분명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맡은바 책임이 지금보다는 커져야 한다. 하지만 그 책임의 바탕에는 반드시 과거에 대한 진실된 반성이 바탕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무책임한 행동과 사고로 일관되는 일본의 자리는 국제사회에서 생겨날 수는 없는 것이다.
일본의 교과서 파동을 지켜보며 우리의 책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일본의 양심 있는 목소리가 그 소리를 높일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일장기를 태우고, 불매운동을 하자는 목소리 외에 과연 필요한 우리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우리는 노력을 했었던가.
이제 올해의 교과서 파동은 1982년의 교과서 문제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분명 다시 그 고개를 치켜들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잘못된 점과 고칠점 들을 찾아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당면한 하나의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 고 문 헌
정일성, 2000. 『황국사관의 실체』 지식산업사.
한국 역사교과서연구회/일본 역사교육연구회(편), 2000. 『역사교과서 속의 한국과 일본』혜안
국회 도서관. 2001.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일본인의 건전한 역사의식형성을 촉구하면서』
홍진희, 1993. 『일본은 한국 역사를 왜 비뚜로 가르칠까』 소나무
서희건, 1986.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고려원
미야케 히데토시. 1990. 『역사적으로 본 일본인의 한국관』 풀빛
유네스코 한국위원회(편), 『21세기 역사교육과 역사교과서: 한ㆍ일 역사교과서 문제해결의 새로운 대안』 오름.
추천자료
7차 교육과정 수학과 7-가, 7-나 교과서 분석 자료
7차 교과서 분석과 평가 세미나 자료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한국관련된 미국교과서의 평가
고구려사에 대한 중국의 왜곡
<대한민국사>를 읽고 - 왜곡된 ‘대한민국 史’ 와 ‘방송史’
자본통제와 경제의 관계-자본에 대한 통제와 관리는 경제를 왜곡 시키는가?- 말레이시아의 외...
매스컴의 이해- 일본 역사 왜곡에 대한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비교
[중국현대사]한, 중, 일 역사교과서의 현대사 시각차이 비교분석과 개선방안
국정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통해 살펴본 교육의 불평등
고등학교 정치교과서 분석
초.중.고 교과서에 내제된 이데올로기, 집단 의식, 관념 등
교육 내용 상세화 상상력의 교과서 적용 분석 [이어질 내용을 상상한다 학습지도안]
사건사, 지역사, 인물사로 보는 역사 교과서 (페르시아전쟁, 로마의 멸망 원인, 이슬람 세계...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