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배경
그 뒤에 난리를 피하여 강(江)가의 숯화로[炭 ] 거리로 이사하여 거기서 눌러 살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 천(泉)은 주나라의 대재(大宰)로 나라의 부세(賦稅-세금을 매겨서 부과하는 것)를 맡았었다.
공방의 조상의 생활 과정
방(方)의 위인이 밖은 둥글고 안은 모나며(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인 측면을 아울러 지닌 공방의 모순적 성격을 드러내고자 함) 때에 따라 응변(應辯)을 잘하여, 한(漢)나라에 벼슬하여 홍려경(鴻 卿-한의 관직 이름 외국의 빈객(賓客)을 접대하는 벼슬)이 되었다.(처세에 능하여 관직에 오르게 되었다) 그 때에 오왕의 비(妃)가 교만하고 참월(僭越)하여 권세를 도맡아 부렸는데 방(方)이 그에게 붙어 많은 이(利)를 보았다. 무제 때에 천하의 경제가 궁핍(窮乏)하여 나라의 창고가 텅 비었으므로 위에서 걱정하여 방(方)을 벼슬시켜 부민후로 삼아 그의 무리 염철승 근과 함께 조정에 있었는데 근이 매양 형님이라 하고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방(方)의 성질이 욕심 많고 더러워 염치가 없었는데(공방의 성품) 이제 재물과 씀씀이를 도맡게 되니 본전 이자(利子)의 경중(輕重)을 다는 법을 좋아하고 나라를 편하게 하는 것은 반드시 질그릇, 쇠그릇을 만드는 생산(生産)의 술(術)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여 백성과 더불어 분리(分厘-돈.저울.자 다위의 단위인 분(分)과 리(厘))의 이(利)라도 다투고 물건값을 낮추어 곡식을 천하게 하고, 화(貨)를 중(重)하게 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근본 농업을 버리고 끝(상업, 장사)을 쫓게 하여 농사(農事)에 방해를 끼치므로(돈이 한 번 쓰이게 되자 그로 인해 폐해가 속출하게 되었는데,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농사보다는 장사에 매달리게 하는 경향을 낳은 것임을 말하고 있다)
공방의 품성
간관(諫官-사건원.사헌부의 벼슬아치를 통틀어 이르는 말)들이 많이 상소하여 논했으나 위에서 듣지 않았다. 방(方)은 또 재치 있게 권귀(權貴)를 잘 섬겨 그 문에 드나들며 권세를 부리고, 벼슬을 팔아 올리고 내침이 그 손바닥에 있으므로 공경(公卿)들이 많이 절개를 굽혀 섬기니, 곡식을 쌓고 뇌물을 거두어 문권(文券)과 증서(證書)가 산(山) 같아 이루 셀 수가 없었다
그는 사람을 접하고 인물을 대함에도 어질고 불초(不肖-못나고 어리석음)함을 묻지 않고 비록 시정(市井) 사람이라도 재물만 많이 가진 자면 다 함께 사귀고 통하니 이른바 시중의 사귐(공방의 세속성)이란 것(이해 관계에 가장 초점을 두고 행하는 공방의 부덕(不德)을 풍자)이다. 때로는 혹 거리의 악소년들과 어울려 바둑두기와 투전하기로 일로 삼아서, 자못 연낙(然諾(-쾌히 허락하는 것)을 좋아하므로 그 때 사람들이 말하기를 "공방의 말 한 마디면 무게가 황금 백 근만 하다(공방의 권세가 그 누구도 따르지 못 할 정도에 이름을 말한다.)." 하였다.
공방의 권세
(4) 竹夫人傳(죽부인전)
.작가: 이곡 .주제: 절개 또는 지조
.감상: 죽부인은 대로 엮은 통발 모양의 것으로 여름에 이것을 안고 있으면 바람이 잘 통하여 시원하므로 남자가 안고 자는 것이므로 '부인'이라 부른다. 그러나 여기서는 대[竹]과 소나무[松]의 절개를 주제로 하여 사대부의 절개를 강조한 것이다.
죽씨는 대개 문무(文武) 두 줄기가 있어, 대대로 변.궤.생.우와 같은 예악(禮樂)의 소용으로부터, 활 쏘고 고기 잡는 작은 연모에 이르기까지 전적(典籍)에 실려 있어, 마디마디 볼 수 있다. 오직 감은 성질이 지극히 둔하여 속이 막혀 배우지 못하고 죽었으며, 운에 이르러 숨어 벼슬하지 않았다. 한 아우가 있었으니, 이름은 당으로 형과 이름을 가지런히 하여 가운데를 비우고 저를 곧게 하였는데, 왕자유와 친하게 지냈다. 자유가 말하되, "하루도 이 군(君)이 없이는 살 수 없다." 하였으므로, 호(號)를 차군(此君)이라 하였다. 대저 자유는 단정한 사람으로, 벗 취하기를 단정한 사람으로 할 터인즉, 그 위인을 알 만하다.
당이 익모의 딸과 결혼하여 한 딸을 낳으니, 부인이 바로 그이다. 처녀 때에 정숙한 자태가 있어 이웃에 사는 의남(宜男)이란 자가 음사(淫詞)를 지어 떠보니, 부인이 노하여 말하되,
"남녀가 비록 다르나 그 절개는 하나인데, 한 번 사람에게 꺾인 바되면 어찌 다시 세상에 서리요."
하매, 의생이 부끄러워 달아났으니, 어찌 소 끄는 무리의 엿볼 바이랴 ?
이미 자라나자 송대부(松大夫)가 예로써 청혼하였다. 부모가 말하되,
"송공(松公)은 군자(君子)이다. 그 평소의 조행(操行)이 우리 집과 짝이 된다."
하고, 드디어 아내로 보내었다.
부인의 성질이 날로 더욱 굳고 두터워 혹 일에 당하여 분별할 때에는 민첩하고 빠름이 칼날로 쪼갬과 같으며, 비록 매선(梅仙)의 신(信)이 있음과 이씨(李氏)의 말 없음으로써도 한 번도 일찍 돌아보지 않았거니. 하물며 귤노(橘老)와 행자(杏子)이랴. 혹 안개 낀 아침과 달 밝은 저녁을 만나 바람을 읊고 비를 휘파람할 제는 그 말쑥한 태도를 무엇으로 형용하기 어려워 호사자(好事子)들이 슬그머니 그 얼굴을 그려 전하여 보배로 삼으니, 무여가와 소자첨 같은 이가 더욱 그것을 좋아하였다.
송공이 부인보다 나이 18세가 위인데, 늦게 신선을 배워 곡성산에 노닐다가 돌로 변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부인이 홀로 살며 이따금 위풍(衛風)을 노래하매 그 마음이 스스로 흔들흔들하여 지탱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성질이 술 마시기를 좋아하며, 역사에, 그 해는 잊었는데, 5월 13일에 청분산으로 집을 옮겨, 취하여 고갈(枯渴)의 병을 얻어 드디어 고치지 못하였다. 병을 얻은 뒤로부터 사람을 의지하여 살았고, 만절(晩節)이 더욱 굳어 향리의 추칭(推稱)한 바 되었다. 삼국 절도사 유균[箭竹]이 부인과 동성(同姓)이라, 행장(行狀)으로써 위에 들리니, 절부(節婦)의 직함을 주었다.
사씨(史氏)가 말하기를
"죽씨(竹氏)의 조상이 크게 상세(上世)하여 공이 있었고, 그 묘예(苗裔)들이 다 재능이 있어 절(節)을 항(抗)하여 세상에 일컬음이 되었으니, 부인의 어짊이 마땅하다. 아, 이미 군자를 짝하고 남의 의지함이 되고도 마침내 후사(後嗣)가 없었으니 천도(天道)가 무지(無知)하다 함이 어찌 헛말이랴." 하였다.
그 뒤에 난리를 피하여 강(江)가의 숯화로[炭 ] 거리로 이사하여 거기서 눌러 살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 천(泉)은 주나라의 대재(大宰)로 나라의 부세(賦稅-세금을 매겨서 부과하는 것)를 맡았었다.
공방의 조상의 생활 과정
방(方)의 위인이 밖은 둥글고 안은 모나며(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인 측면을 아울러 지닌 공방의 모순적 성격을 드러내고자 함) 때에 따라 응변(應辯)을 잘하여, 한(漢)나라에 벼슬하여 홍려경(鴻 卿-한의 관직 이름 외국의 빈객(賓客)을 접대하는 벼슬)이 되었다.(처세에 능하여 관직에 오르게 되었다) 그 때에 오왕의 비(妃)가 교만하고 참월(僭越)하여 권세를 도맡아 부렸는데 방(方)이 그에게 붙어 많은 이(利)를 보았다. 무제 때에 천하의 경제가 궁핍(窮乏)하여 나라의 창고가 텅 비었으므로 위에서 걱정하여 방(方)을 벼슬시켜 부민후로 삼아 그의 무리 염철승 근과 함께 조정에 있었는데 근이 매양 형님이라 하고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방(方)의 성질이 욕심 많고 더러워 염치가 없었는데(공방의 성품) 이제 재물과 씀씀이를 도맡게 되니 본전 이자(利子)의 경중(輕重)을 다는 법을 좋아하고 나라를 편하게 하는 것은 반드시 질그릇, 쇠그릇을 만드는 생산(生産)의 술(術)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여 백성과 더불어 분리(分厘-돈.저울.자 다위의 단위인 분(分)과 리(厘))의 이(利)라도 다투고 물건값을 낮추어 곡식을 천하게 하고, 화(貨)를 중(重)하게 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근본 농업을 버리고 끝(상업, 장사)을 쫓게 하여 농사(農事)에 방해를 끼치므로(돈이 한 번 쓰이게 되자 그로 인해 폐해가 속출하게 되었는데,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농사보다는 장사에 매달리게 하는 경향을 낳은 것임을 말하고 있다)
공방의 품성
간관(諫官-사건원.사헌부의 벼슬아치를 통틀어 이르는 말)들이 많이 상소하여 논했으나 위에서 듣지 않았다. 방(方)은 또 재치 있게 권귀(權貴)를 잘 섬겨 그 문에 드나들며 권세를 부리고, 벼슬을 팔아 올리고 내침이 그 손바닥에 있으므로 공경(公卿)들이 많이 절개를 굽혀 섬기니, 곡식을 쌓고 뇌물을 거두어 문권(文券)과 증서(證書)가 산(山) 같아 이루 셀 수가 없었다
그는 사람을 접하고 인물을 대함에도 어질고 불초(不肖-못나고 어리석음)함을 묻지 않고 비록 시정(市井) 사람이라도 재물만 많이 가진 자면 다 함께 사귀고 통하니 이른바 시중의 사귐(공방의 세속성)이란 것(이해 관계에 가장 초점을 두고 행하는 공방의 부덕(不德)을 풍자)이다. 때로는 혹 거리의 악소년들과 어울려 바둑두기와 투전하기로 일로 삼아서, 자못 연낙(然諾(-쾌히 허락하는 것)을 좋아하므로 그 때 사람들이 말하기를 "공방의 말 한 마디면 무게가 황금 백 근만 하다(공방의 권세가 그 누구도 따르지 못 할 정도에 이름을 말한다.)." 하였다.
공방의 권세
(4) 竹夫人傳(죽부인전)
.작가: 이곡 .주제: 절개 또는 지조
.감상: 죽부인은 대로 엮은 통발 모양의 것으로 여름에 이것을 안고 있으면 바람이 잘 통하여 시원하므로 남자가 안고 자는 것이므로 '부인'이라 부른다. 그러나 여기서는 대[竹]과 소나무[松]의 절개를 주제로 하여 사대부의 절개를 강조한 것이다.
죽씨는 대개 문무(文武) 두 줄기가 있어, 대대로 변.궤.생.우와 같은 예악(禮樂)의 소용으로부터, 활 쏘고 고기 잡는 작은 연모에 이르기까지 전적(典籍)에 실려 있어, 마디마디 볼 수 있다. 오직 감은 성질이 지극히 둔하여 속이 막혀 배우지 못하고 죽었으며, 운에 이르러 숨어 벼슬하지 않았다. 한 아우가 있었으니, 이름은 당으로 형과 이름을 가지런히 하여 가운데를 비우고 저를 곧게 하였는데, 왕자유와 친하게 지냈다. 자유가 말하되, "하루도 이 군(君)이 없이는 살 수 없다." 하였으므로, 호(號)를 차군(此君)이라 하였다. 대저 자유는 단정한 사람으로, 벗 취하기를 단정한 사람으로 할 터인즉, 그 위인을 알 만하다.
당이 익모의 딸과 결혼하여 한 딸을 낳으니, 부인이 바로 그이다. 처녀 때에 정숙한 자태가 있어 이웃에 사는 의남(宜男)이란 자가 음사(淫詞)를 지어 떠보니, 부인이 노하여 말하되,
"남녀가 비록 다르나 그 절개는 하나인데, 한 번 사람에게 꺾인 바되면 어찌 다시 세상에 서리요."
하매, 의생이 부끄러워 달아났으니, 어찌 소 끄는 무리의 엿볼 바이랴 ?
이미 자라나자 송대부(松大夫)가 예로써 청혼하였다. 부모가 말하되,
"송공(松公)은 군자(君子)이다. 그 평소의 조행(操行)이 우리 집과 짝이 된다."
하고, 드디어 아내로 보내었다.
부인의 성질이 날로 더욱 굳고 두터워 혹 일에 당하여 분별할 때에는 민첩하고 빠름이 칼날로 쪼갬과 같으며, 비록 매선(梅仙)의 신(信)이 있음과 이씨(李氏)의 말 없음으로써도 한 번도 일찍 돌아보지 않았거니. 하물며 귤노(橘老)와 행자(杏子)이랴. 혹 안개 낀 아침과 달 밝은 저녁을 만나 바람을 읊고 비를 휘파람할 제는 그 말쑥한 태도를 무엇으로 형용하기 어려워 호사자(好事子)들이 슬그머니 그 얼굴을 그려 전하여 보배로 삼으니, 무여가와 소자첨 같은 이가 더욱 그것을 좋아하였다.
송공이 부인보다 나이 18세가 위인데, 늦게 신선을 배워 곡성산에 노닐다가 돌로 변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부인이 홀로 살며 이따금 위풍(衛風)을 노래하매 그 마음이 스스로 흔들흔들하여 지탱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성질이 술 마시기를 좋아하며, 역사에, 그 해는 잊었는데, 5월 13일에 청분산으로 집을 옮겨, 취하여 고갈(枯渴)의 병을 얻어 드디어 고치지 못하였다. 병을 얻은 뒤로부터 사람을 의지하여 살았고, 만절(晩節)이 더욱 굳어 향리의 추칭(推稱)한 바 되었다. 삼국 절도사 유균[箭竹]이 부인과 동성(同姓)이라, 행장(行狀)으로써 위에 들리니, 절부(節婦)의 직함을 주었다.
사씨(史氏)가 말하기를
"죽씨(竹氏)의 조상이 크게 상세(上世)하여 공이 있었고, 그 묘예(苗裔)들이 다 재능이 있어 절(節)을 항(抗)하여 세상에 일컬음이 되었으니, 부인의 어짊이 마땅하다. 아, 이미 군자를 짝하고 남의 의지함이 되고도 마침내 후사(後嗣)가 없었으니 천도(天道)가 무지(無知)하다 함이 어찌 헛말이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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