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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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본론

3. 결론

본문내용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구서독인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구동독사회에 대해 구서 독인들이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구동독인들을 자기가 편한 방식으로 적당히 이해하는데 도 움이 되는 말이 '동쪽 것들'이란 단어다. 적당한 편의주의적 사고는 그 끝을 모른다.
구동독에는 서독 '벤츠'와 적나라하게 대비되는 '트라비'(우리의 '새나라 차'와 비슷한 모양의 차)만 있었기 때문에 '동쪽 것들'은 차 운전도 잘 못할 뿐 아니라 마력이 높은 서쪽 차를 잘 몰지도 못하는 사람들로 생각된다. 구동독에서는 해고당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동쪽 것 들'은 일도 잘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여겨진다. 구동독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고통당하지 않은 구동독 주민들은 의심해 볼 여지가 있는 사람들, 즉 '슈타지'(구동독의 비밀정보사)에 협조한 사람들 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기까지 하는 것이다.
'장벽'이 있는 분단 상태에서 구동독인들에게 구서독인들은 "자신들에 비해 무엇이든 잘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여겨 졌었다. 구동독인들의 대부분은 자기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 은 상을 구서독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었다. '장벽'이 무너진 바로 그 상태에서 구동독인들은 구서독인에 대해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장벽' 너머 서쪽의 '형제자매들'을 만났다. 따라서 구동독인들은 무엇이든지 구서독인들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배우려 노력했다. 자기 들은 구서독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구서독인들은 자기들의 사회제도를 그대 로 구동독에 옮겨 왔다. 구서독인들과 구동독인들은 마치 '스승과 제자' 처럼 행동했다. 구동 독인은 자기들의 것을 가능하면 잊으려 노력했다. 잘못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머리는 그렇게 편리하지 않다. 잊으려 한다고 잊혀지지 않는다. 자신들이 구서독인들 보다 나은 것이 없기 때문에 배워야 한다고 믿고 자신의 약점을 들춰내면 낼수록, 이 약점 이 구서독인들에 의해서 이용당하는 현실에 직면하면 할수록,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 나곤 했다. "구서독인들이 법체계의 섬세한 부분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서독인들이 갈 등을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으로부터 무언가 그릇되게 배운 것은 아닐까?"라는 의혹이 들게 만들었다.
이러한 의혹을 스스로 정리하기 위해서 이들 구동독인들은 '경쟁이라는 현실의 냉혹함'이라 는 말을 떠올리 수 밖에 없었다. "일상(日常)은 이상(理想)의 적이다. 일요일에 맺었던 관계 와 달리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일상은 책임감, 구속감, 파기된 약속, 실망 등을 내포하고 있 다." 구동독 출신의 사회학자 볼프강 엥글러는 이렇게 정리할 수 밖에 없다. "이전에 눈에 들어 오는 것이 차별성 뿐이었다면, 이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가 가장 세속적인 유사성 뿐이다."
3. 결론
'세속적 유사성'이 강하다는 의혹은 특히 구서독 정치인 및 각 분야의 책임적인 지위에 있는 전문인들의 행동에서부터 더 강하게 일기 시작했다.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어 냈던 '독일 모 델'은 구동독에 그대로 이식되었다. 구동독의 제도는 일고의 가치도 없이 폐지되었다. 서독 에서는 원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철썩같이 믿던 구동독인들은 구서 독체제로의 통일을 스스로 선택했었다.
구동독 사회 전체가 이루어 놓은 자산은 언젠가 구서독 자본의 수중에 다 들어가 있고, 자 신들은 일자리도 잃어 버린 상태에 처하게 되어 버렸다. 살고 있던 집에서 갑자기 쫓겨나는 사태도 발생했다. 주민의 약 1/5~1/4이 실직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구동독 인은 '현실적인 무기력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시계추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강하게 이동한다. '현실적인 무기력감'은 '상징적인 저항'으로 변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 "전적으로 잘못했으니 이해해달라"는 관계는 이제 '전면적인 비판'으로 나타나고 있다.
"구동독인들이 분단되어 있던 상황에서 가지고 있던 통일에 대한 장미빛 미래상에서 벗어나 는 모든 것들을 '서쪽 것들(Wessis)'이라고 규정한다."
사회학자 슈펠러베르크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구동독인들은 남녀 구분없이 가족과 일(노동) 에 대한 정향성(定向性)이 강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절제·절약성 및 사회적으로 보장된 안 정성이 서독에 비해 상당히 중요한 것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구동독인들에게서 문화적 관심 이란 간접경험 및 흥미 혹은 '통속(대중정서)적이면서도 민속적인'(volkst?lich) 것들에 많 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구서독인들은 물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생활을 누리고 있었고 '교양을 갖추려는 소시민 적'(bildungsb?gerlich) 문화양태들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른바 근대적 삶 의 목적들이랄 수 있는 창조성, 쾌락주의 및 집 밖에서의 여가활동 등이 중요한 비중을 차 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상문화의식적 차별성은 사회적 참여에서도 차별성을 보여, 구서독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반면 구동독인들은 대부분 소극적 태도를 보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상태에서 '동쪽 것들'이니 '서쪽 것들'이니 하는 식의 정확하게 반성되지 않은 편의주의 적 상호예단(預斷)과 '의식적 차별화 내지 서로 선을 그으려는 전략들'은 이들이 서로 접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통일 후 전개되는 사회경제적 현실은 차별 성을 가지고 있던 구동독인과 구서독인 개인들에게 이런 상호예단 및 배타적 '차별화전략'을 강화하게 하는데 크게 일조(一助)하고 있는 것이다.
'통일'된 독일은 '통합'의 과정에서 여전히 진통을 겪고 있다. 서로 상대에 대한 이해라는 측 면에서,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기점으로 동서독일은 부단히 노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서로에 대한 이해는 아무리 깊이 진행 되더라도 부족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과 자신의 현재에 대한 부단한 반성적 고찰을 진행하 는 동시적인 노력을 통해서 만 '통합'은 가능하다는 것을, '장벽'이 무너진 지 7년을 맞는 오 늘, 통일 독일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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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5.07.14
  • 저작시기2005.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07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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