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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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모든 사조와 역사의 변화는 결국 당대의 위기와 문제에 대한 해답이다. 포스트모던도 결국 근대의 문제에 대한 답이다.

서론 모던과 포스트모던 사이에서
지성의 시대는 가고 감성이 춤을 추며,영성이 너울거린다.
1)포스트(Post)시대
2)포스트모던
3)포스트모던의 어원

포스트(post)시대 

포스트모던 

포스트모던의 어원

포스트모던 운동

개념규정의 어려움

두 가지 질문: 이 주제를 왜, 그리고 지금에서야 논하는가?

근대화의 두 얼굴

미진한 연구

어느새 우리 곁에

\"터\"가 무너진 시대

루이스와 비이쓰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

깨어지는 제국

세계관 전쟁

그렌츠의 충고: 포스트모더니즘을 논의해야 할 이유

아방가르드 신드롬을 경계하라

실천적 관심으로 접근하라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기독교인의 시대적 사명

본문내용

피상적 이해에 근거하여 비판하려 하지도 말아야 한다. 알지 못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비판할 수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한 때 피상적 찬반논의로 달구어졌었다. 흔히 기독교인들은 새로운 사상에 대해 거의 본능적으로 비판적 시각을 갖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한다.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이 널리 유행한다고 해서 그것에 큰 기대를 가질 것도 아니다. 사상은 사상일 뿐이고, 문화도, 시대도 오고 또 지나가는 것이지 거기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사상, 철학, 문화는 상대화적 가치를 가질 뿐이므로 늘 비판적 자세를 가지는 것이 좋다. 사상이나 문화추세 자체에 목숨을 걸고 매달릴 만한 것이 없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지나친 기대와 관심으로 인해 이 사상을 기독교화하려는 어설픈 시도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포스트모더니즘의 "탈"이나 해체를 기독교적 개혁과 구속과 동일시하는 자세는 조심스럽지 못한 것이다. 또 조심스럽고 깊이 있는 연구를 걸치지 않은 논의는 아무런 경고도 유익도 얻지 못하는 시간낭비에 그칠 가능성이 많다. 이런 잘못을 피하는 가장 좋은 태도는 실천적 관심에서 연구하는 것이다. 즉 지적 호기심에서 보다 그것이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게될 것인지를 주목하는 실천적 자세로 임하는 것이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이 우리 사회가 거의 맹목적으로 지향해온 근대화의 이상에 대한 어떤 반성을 촉구하는지를 살펴보는 것 같은 방식이다.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이 뒤에서 상세히 살펴볼 것과 같이 근대 문화의 붕괴에서 오는 불안과 방황이요, 객관주의와 상대주의의 양극의 분열증상이라면 그것은 이미 희랍시대, 중세, 근대철학 위기들에 여러 형태로 존재하던 해묵은, 그러나 해결 없는 문제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히 포스트모더니즘을 해묵은 문제, 새로울 것 없고 해결도 없는 식자의 놀음이라고 간과할 수는 없다. 특히 그것이 복잡하고 이해가 어렵기 때문에 지나쳐서도 안된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이 변화에 대한 영향으로부터 면제될 수 없기 때문이다. 피하는 한가지 방법은 실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이 큰 일은 실체가 부정될 수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르몽드지의 말처럼 실체가 있는 유령이다. 이런 유령은 결코 쉽게 물러가지 않는다. 마치 공산주의 유령은 결코 떡 하나 먹고 물러가지 않고, 수많은 피를 마시고 제물에 넘어졌을 듯이 말이다. 또 과학이 제거한 귀신이 과학공상 또는 심령소설과 영화 등을 통해 뒷문을 통해 다시 삶으로 돌아오는 것과 비슷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서양에서 수입한 유행이며, 저절로 시들어버릴 것으로 낙관할 수 없다. 또는 서양 선진국이 자신들의 문화를 전파하기 위한 지배이데올로기의 하나로 너무도 쉽게 매도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가 이 사조, 문화적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그것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변화이기 때문이다. 저항적 노래와 가사로서 1960년대를 풍미했던 팝 가수 밥 딜런(Bob Dylan)은 이렇게 노래한다.
Come mothers and fathers throughout the land 이 땅의 부모님들이시여 오소서.
And don't criticize what you can't understand... 이해 못하시는 것을 비판은 하지 마시길...
Your old road is rapidly agin' 당신들의 낡은 방식은 빠르게 낡아지니
Please get out of the new one 만약 도울 수가 없거들랑
If you can't lend your hand 제발 새 길을 막지나 마세요
For the times they are a-changin' 세월이 변하고 있으니까요.
딜런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모르는 것에 대해 바로 비판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좋던 싫던 이런 문화 속에 피할 수 없이 살게되었고, 더 심화될 것이다. 이런 중요한 변화에 대해서는 성경이 지시하듯 예 또는 아니오로 분명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용을 알고있어야 한다.
기독교인의 시대적 사명
포스트모더니즘에 접근하는 기독교인에게 필요한 또 한가지는 문화의 영성에 대한 각성이다. 기독교인 결코 문화에 대해 중립적 자세를 견지할 수 없다. 그것은 문화가 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이 커다란 문화의 흐름은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이겨야할 책임이 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고후10:5, 3-5)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떤 문화에 있어서건 손님이 될 수 없다. 왕이신 그리스도는 언제나 새로운 문화에 대한 심판자와 구속주로 임하신다. 기독교인은 그것을 선포할 임무를 가진 자들이다.
급변하는 오늘의 문화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갖는 일은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기독교인과 심지어 신학자들조차 여전히 근대에 눈길을 두고 그 도전에 대응하는 일에 주로 힘을 쏟고 있다. 이 글의 목적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이 시대의 문화적 향방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형성을 위한 노력이 오늘날 절실하게 요청된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즉 포스트모던 시대에 필요한 기독교 세계관 정립의 필요를 역설하기 위한 것이다.
이 작업을 위해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뿌리를 살펴보는 일에서 부탁 시작해야 할 것이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을 불러온 근대의 위기의식의 실체를 파헤치는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근대 그리고 전근대에 대한 고찰을 통해 그 뿌리를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작업이 필요한 것은 포스트모던을 두부 자르듯 따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근대 400년의 사상과 문화의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 이 시대를 알 수는 없다. 전통과 과거의 문화는 무서운 영향력으로 우리를 지배한다. 근대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넘어간다고 해서 그 영향이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것 아니다. 역사는 언제나 과거의 유산의 산물이고, 현재는 미래의 씨를 뿌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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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1.23
  • 저작시기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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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2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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