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전래와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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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본론
1. 수용의 시기(1876-1896)
2. 교회형성과 첫번째 성장기(1896-1919)
3. 교회의 비정치화와 성장둔화기(1919-1932)
4. 바벨론 포로와 성장침체기(1932-1953)
5. 교회의 재건과 두번째 성장기(1953-1960)
6. 각성의 시기와 세번째 성장기(1960-현재)

Ⅲ. 결론

본문내용

속적인 교회의 성장을 위한 전환점이었다.
6. 각성의 시기와 세번째 성장기(1960-현재)
성장의 침체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한국 개신교는 이제 새로운 역사적 국면을 맞이한다. 교회는 1960년 4 19 학생의거를 기점으로 한국 사회 속에서의 기독교의 정체성을 다시금 자각하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민중과 괴리되어 있던 개신교는 다시금 민중과 함께 하는 교회의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특히 1965년의 한 일 외교정상화에 따른 비판적 교회의 입장을 필두로 시작된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한 교회의 노력은 기독교를 한국 사회 속에 민족종교로서 인식시키게 했으며, 민족의 역사와 무관했던 교회에서 민족역사와 함께 하는 모습으로 되돌아 왔다.
이와 같은 변화는 신학의 사조에 있어서 두드러지는데, 1960년대의 토착화 신학에 대한 논쟁과 1970년대의 민중신학의 태동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기독교화의 과정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들이며, 적어도 복음과 복음의 토양의 상관관계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 나라 운동의 단계나 복음화의 단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 개신교가 이 때부터 비로소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로 하려고 노력했으며, 그러한 이해 위에서 선교를 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서 이제 교회는 선교현장에 좀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해야 한다.
이러한 교회의 자리 매김은 선교초기에 있었던 "하나님 나라 운동"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며, 이것이 세번째 맞이하는 교회성장의 결정적인 요인일 것이다.
하지만, 50년대의 교회성장의 한 요인이었으며, 여전히 한국 개신교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교파분열의 양상이 교회의 양적인 성장을 가져왔다는 기현상은 이미 언급한 바 대로이다. 이것은 결국 일시적인 성장은 가져올지 모르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교회가 사회로부터 외면 당하는 요인이 될 것이며, 이미 이러한 현상들이 심화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점이 90년대 이후의 성장둔화를 낳는데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 밖의 성장 요인들로는 사회 정치 경제적 요인들이 있지만, 근대화에 따른 도시화의 과정을 중요한 요인으로 설명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60년대말 전인구의 20%에 불과했던 도시인구는 불과 10여년이 지난 80년대 초에는 80%에 이른다. 이것은 이제껏 아무도 경험하지 못했던 "대혁명"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 많은 사람들은 삶의 신속한 안정과 정신적 위안을 위해 지연 또는 혈연을 따라 교회로 몰려들었고, 이것이 70-80년대의 폭발적 교회성장의 한 요인이 되었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점에서 한국교회 성장의 한 요인을 사회구조와 가족제도에서 찾고 있는 서명원의 분석은 어느 정도 타당성을 지닌다. 적어도 이제까지는 전통적인 사회구조와 가족제도가 교회성장의 중요한 한 요인이었지만, 차츰 전통적인 구조와 제도가 붕괴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에는 더 이상 교회성장의 결정적인 요인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또한 70-80년대에 일어난 급속한 교회성장에는 교회 자체의 선교적 열정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흔히들 1907년의 대부흥운동에서 그 뿌리를 찾으려고 하는 부흥운동 등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대형 부흥집회들도 있었다. 이것이 전도의 열을 고취시켰다는 점에서 한국 개신교의 성장요인으로 들 수 있겠으나, 앞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대형부흥집회들의 성격은 개종자들의 획득이라는 근본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고 기존의 신자들만의 부흥을 위한 일종의 "종교적 축제"에 머물고 말았다는 지적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1907년의 대부흥운동이 신자들의 철저한 신앙훈련으로 이어지면서, 초기 교회형성에 초석을 놓았던 반면에, 아직은 이러한 대형부흥집회은 기독교의 자기과시를 겸한 "잔치"였다면, 교회성장에 무슨 영향이 있었겠는가?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종종 이러한 집회들을 통해 심화되어 가는 기복적인 신앙, 타계적인 신앙 등은 교인들로 하여금 개인의 구원을 만족하도록 함으로서 한국교회를 다시 탈민족적 또는 몰역사적 자세를 갖게 한다는 점에서 부정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 운동"이나 진정한 "복음화"는 개인주의적 신앙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내적 성숙을 목표로 하지 않는 부흥집회는 지양해야 될 것이다.
그리고 경쟁선교가 개신교의 급속한 교회성장의 요인이 였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교파나 개교회 간의 과다한 경쟁을 낳았고, 여기에서 파생된 극심한 개교회주의는 대도시 여러 지역의 개척교회의 난립현상을 만들어 냈으며, 이것은 사회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와 함께 현재 한국 개신교가 세계적으로 자랑하고 있는 교회의 물량주의, 대형교회 제일주의 등도 많은 문제점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대형교회 성장의 주 원인은 새로운 신자들의 입교보다는 수평이동을 통한 성장에 의존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성장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교회의 기형적인 성장은 궁극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교회의 선교 대상인 사회에 부정적인 시각으로 비친 교회란 선교의 장을 잃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결국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 한국교회의 성장은 기형적인 성장을 했다고 볼 수 있겠다.
Ⅲ. 결론
기독교가 지금까지 남아있는 과정을 여섯 과정으로 나누어 보았는데 단계마다 어렵고 절망적이고 핍박받는 부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렇게 기독교에 대해 공부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생활하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이 여섯 과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더욱 발전시켜서 더욱 더 부흥되는 기독교가 되길 소망한다. 핍박이 많은 기독교지만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 크리스챤이 되어 하나님 보시기에 더욱 아름다운 기독교가 되었으면 한다.
참고문헌
민경배, 『한국민족교회형성사론
전택부, 『한국교회발전사』(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7),
이장식, 『한국교회의 어제와 오늘』(서울 : 대한기독교출판사, 1977),
주재용, "한국기독교백년사
한국기독교사연구회, 『한국기독교의 역사 I』
서명원, 『한국교회성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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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6.01.27
  • 저작시기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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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35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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