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시대 경제의 명과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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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1. 10월 유신

2. 박정희시대 경제의 명과 암(석진우 논설위원)

3. 박정희 개발독재는 시장경제 발전의 암세포...(이필
상 고려대 교수 인터뷰[신동아])

4. 박정희 정권을 역사적으로는 어떻게 볼 것인가...(강
만길고려대 교수)

5. 읽을 거리...

본문내용

하는 걸 들으면, 나처럼 소심한 사람은 가슴이 다 덜컥 내려앉는다 . 그 후 지금까지 더디지만 그래도 쉬지 않고 발전시켜 온 민주화를 세상이 온통 살얼음판 같고 사람 목숨이 파리 목 같던 절대권력시대로 되돌려 놓고 싶어하는 소리처럼 들려서다.
박대통령이 개인적인 치부를 안했다는 게 그 시대를 그리는 향수의 핵심인가 본데, 그때도 정보계통을 비롯해서 그분의 권력을 확실하게 뒷받침하는 세력들은 얼마나 엄청난 재산을 축적했는지는 왜 잊어버리나. 그 시대를 분기점으로 우리가 비로소 굶주림에서 벗어났다는 공(功) 도 인정해야 한다는 소리에는 나도 동감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박대통령이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고, 그 정권을 보필하기도 하 고 아부하기도 한 세력들이 한번도 척결되거나 도태됨이 없이 지금까지 능력 껏 꾸준히 고위공직에 머물러 있거나 정치 일선에서 뛰고 있으면 됐지 어떻게 그 시대를 인정하고 용서하란 말인가. 용서와 망각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용서는 하되 잊어버리지는 말자.
-추억속에서도 끔찍한 박정희
이름 : 유시민 작성일 : 2001/06/26 오후 12:09:00
"자유를 주고 빵을 산다. ""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 대체관계 ' 를 상정하는 '개발독재'의 논리는 일견 타당한지도 모른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다수 국민이 절대빈곤에 시달리는 사회에서는 '빵'의 한계효용이 매우 크다. 그래서 국민들은 '자의반타의반' 자유와 인권의 제약을 수용하고 묵인한다. ' 박정희 시대'가 18년이나 계속된 것은 중앙정보부의 공포정치와 군경의 ' 폭력' 때문만이 아니라 많은 국민들에게 ' 빵' 의 한계효용 이 너무 컸던 탓이 기도 하다.
그러나 '성공한 개발독재' 역시 몰락의 운명을 피하지는 못한다. '개발독재' 덕분에 경제적 풍요가 찾아오면 '빵' 의 한계효용은 감소하는 반면 ' 자유 ' 의 한계효용은 더욱 커진다. 다수 국민이 거꾸로 '빵' 을 주고라도 ' 자유' 를 갖고 싶다고 느끼는 순간, 또는 둘 다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고 믿는 순간, 개발독재에는 종말이 찾아 든다. '서울의 봄'과 6월항쟁은 그렇게 온 것이다.
'문민정부 2기'를 여는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만나는 '박정희 현상 '은 그래서 더욱 놀랍다. 전쟁과 보릿고개를 견디고 살아 남은 노년세대 가, 특히 박정희가 ' 빵 '이 풍요한 시대를 열었다고 믿는 이들이 ' 박정희 향수' 에 젖는 것은 이해할 수 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지식인들이 ' 박정희의 지도력'을 추켜세우는 것은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다.
내가 학창시절에 경험한 ' 박정희의 지도력 '은 실로 ' 끔찍한 추억 ' 이다. 35 도가 넘는 한 여름 먼지 구덩이 ' 연병자 ' 에서 목총을 들고, 교련시간 50분 내 내 ' 엎드려 쏴 '를 반복한 뒤의 비참함. 경찰관이 길가는 처녀 총 각을 불러 세워 치마와 머리카락 길이를 재고 , ' 허용치' 가 넘는 다고 가 위질을 하고 구류를 먹이는 나라에 사는 창피함, 박정희와 유신체제를 비판하면 긴급조치 위 반으로 잡아다 중형을 때리고, 긴급조치 위반 사 건을 보도하는 것도 긴급조치 위반으로 만들어 놓은 그 완벽한 시스템 앞에서 느낀 절망감 이런 것 들이다.
나는 박정희 시대를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젊은 지식인들에게 권하고 싶다. 오늘 당장 한강변에 나가서 한 낮의 땡볕 아래서 30 분 동안만 쉬지 말고 '엎드려 쏴'를 해보라. 그래서 ' 내 아들도 이렇게 살게 하고 싶다 ' 는 확신이 선다면 박정희의 ' 위대한 지도력' 을 예찬하고 그를 ' 복제 '하 자고 외쳐도 좋다. 그러나 ' 이렇게는 살 수 없다' 는 생각이 든다면 이번 대선에서 '박정희식 지도력 ' 과 가장 거리가 먼 후보에게 당신의 한 표를 주라.
'박통 기념관'을 지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 기념관 속에 전태일의 분신, 부마항쟁의 현장이 담겨 있고, 사상의 자유와 인권을 무차별 탄압한 그 살벌한 고문실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면 말이다. 국민의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전쟁을 찬양하기 위한 것으로서가 아니라 반성하기 위한 것으로서만 '전쟁 기념관'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박통 기념관' 역시 타산지석의 교훈을 위해 건립될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을.
-전태일열사가 박정희와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편지
대통령과 근로 감독관에게-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존경하는 대통령 각하
옥체 안녕하시옵니까? 저는 의류 제품 계통에 종사하는 재단사입니다.… 저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쌍문동 208번지 2통 5반에 거주하는 22살 된 청년입니다. 직업은 의류 계통의 재단사로서 5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직장은 시내 동대문구 평화시장으로서 의류 전문 계통으로선 동양 최대를 자랑하는 것으로 종업원은 2만여 명이 됩니다. …
2만여 명을 넘는 종업원의 90% 이상이 평균 연령 18세의 여성입니다. 근로기준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어떻게 여자에게 하루 15시간의 작업을 강요합니까? … 또한 2만여 명 중 40%를 차지하는 시다공들은 평균 연령 15세의 어린이들로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기에 있는 이들은 회복할 수 없는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타격인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전부가 다 영세민의 자녀들로서 굶주림과 어려운 현실을 이기려고 하루에 90원 내지 100원의 급료를 받으며 1일 16시간의 작업을 합니다. …
저희들의 요구는
1일 14시간의 작업 시간을 단축하십시오. 1일 10∼12시간으로
1개월 특(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희망합니다.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주십시오.
시다공의 수당 현 70원 내지 100원을 50% 이상 인상하십시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기업주측에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항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여러분께서 안정된 기반 위에서 경제 번영을 이룬 것이 과연 어떤 층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십니까? … 내심 존경하시는 근로 감독관님. 이 모든 문제를 한시바삐 선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1969년 12월 19일 전태일
(전태일기념사업회 엮음,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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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2.04
  • 저작시기20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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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3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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