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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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화 비평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문화비평 개관
(1)문화연구
(2)문화연구의 부상 지형
- 주요 비평가 소개
(3)문화연구 가능성

<실제비평>
Ⅱ. 오규원
(1) 들어가며
(2) 작품분석
(3) 나오며
Ⅲ. 이인화
(1)작품소개
(2)실제비평

본문내용

행복한 세상, 애초에 공부자께서 꿈꾸신 아득한 옛 시대의 이상이 실현되는 것이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대의, 성난 파도와도 같은 시대의 흐름이 여기에 있다. 나날이 강쇠해 가는 나라, 나날이 퇴폐해 가는 제도를 일으킬 황극의 길이 여기에 있다. 인몽은 품속에 아름다운 구슬을 감춘자의 여유와 불안을 느끼며 정춘교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두고 봐라. 이 요망하고 간사한 난신들아. 임금을 헐뜯고 임금의 목을 조르려는 적자들아. 스스로 하늘의 주책을 찾는 너희 같은 무리들은 성인의 교화로도 어쩔 수 없느니. 모조리 죽여 목을 베지 않고 어쩌리. 이제 아득한 옛 시대의 꿈이 돌아오리라. 위에는 성스러운 군왕이 계시고 아래에는 착한 백성
이 있는 그런 단순한 세상이.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역사의 흐름이란 무엇인가. 정조가 시해되고 일제에 의해 망하기 까지 100년간의 우리 역사는 성왕이 사라진 뒤의 난세 바로 그것이었다. ....... 우리는 ‘진보적’이라는 입헌 정치를 못해서 망한 것이 아니라 홍재 유신, 즉 정조의 절대왕정을 수립하지 못해서 망한 것이다. ....... 후진적인 여건에서 분발하여 자주적인 민족국가를 수립했던 모든 나라는 절대주의 국가의 시기를 거친다. 대내적으로 강력한 통치원리로 무장하고 대외적으로 자국의 국익을 배타적으로 주장하는 과도기가 필요한 것이다. 메이지 유신이 있기에 근대 일본이 있을 수 있었다.
정조대왕의 홍재유신이 실패함으로써 우리 민족사는 1백 60년이나 후퇴했다는 설정, 영 정조 시대 우리 역사는 세계사적 선진성을 달성하고 있었다는 이런 주장은 말할 바도 없이 작가가 의식적으로 취한 포즈에 불과하다. 이 소설은 그럴 듯한 현실정합성을 가진 복고적 국수주의이다. 93년도 『영원한 제국』에서 차마 박정희 만세를 부를 수 없었던 그는 일단 선의의 독재(왕권 주의)야 말로 이상적인 정치제도라는 정도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몇 가지 예에서 살펴 볼 수 있듯이 작가는 소설 속에서 숱한 무리들을 무릅쓰고 근왕주의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물론 이 근왕주의는 ‘박정희 만세’이다.
정조의 문체반정은 무엇이었던가? 올빼미 부시를 정적 타도의 증거로 삼기 위해, 그래서 왕권이 하늘의 이치라는, 있지도 않고 또 믿지도 않는 하늘 운운해 가며 권력을 다지기 위해, 김일성이나 어떤 독재자들이 고안해 낸 문화 혁명의 논리 이외에 다른 어떤 숭고한 뜻이 있었을까? 개발 독재의 논리는 단순히 독재를 사후에 합리화하는 노리인 것만은 아니다. 합리화 하는 순간 논리의 독재로 다시 반복되려고 한다. 박정희의 20년 독재가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이 불가능 했으리라는 기가 막힌 착각은 논리의 독재가 이미 시작되었고, 뿌리깊게 퍼져 있음을 일러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가 없었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고, 또 다행이었다는 듯이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는가?
이 표현들은 결과를 그것 자체로 평가하려는 대신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이격되어 있는 두 상태 사이에 일정한 필연성이 있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의존하게 된다. 과거를 돌아볼 때 운명처럼 느껴지지 않는 계기나 관계들은 사실 드물다. 이 운명처럼 느껴지는 것이 여전히 어떤 필연성으로 현재와 미래를 지배한다고 믿을 때, 이 믿음 속에 설 땅을 잃게 된 인간의 의지는 필연의 논리를 주관하는 절대적인 존재에게 의지의 자유를 의탁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 과정 속에서, 그 자체로 의지의 산물인 절대적 존재는 역설적이게도 선험성을 부여 받게 된다. 모든 거짓된 종교는 이 전도에서 그 폭력성을 얻게 된다. 정치의 차원에서는 독자재가 운명의 주관자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 추종자들은 그들의 의지를 의탁했었던 독재자를 선험적 존재로 만들어 놓은 전도된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며 과거와 현재의 관련을 그리고 역사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개발된 현재는 독재라는 과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주장을 넘어서서 추종자들의 의식 속에 독재는 운명으로, 개발은 그 운명의 현현으로 보는 망상이 자리잡고 있다.
이 망상 속에서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합성어인 개발 독재라는 말은 그것 스스로도 선험성을 부여받기에 이른다. 마치 그러한 관념이나 통치 형태가 현상을 떠나 하나의 완결되고 독립적인 논리로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언어가 사물을 떠나 독자적으로 의미 생성을 주도하게 될 때 언어는 사물을 지배한다. 사물의 현상과 구체성들은 이 지배 속에서 왜곡된 해석과 조작을 받게 된다.
‘조국 근대화’를 구실로 행해진 끔찍한 민중 수탈, 최소한의 민주주의마저 압살한 파시즘적 독재, 재벌 중심의 경제개발로 인한 구조적 정경유착과 부의 양극화, 정권유지를 위해 조작한 지역갈등, 무분별한 개발에 따른 환경파괴 등 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부패와 모순의 터를 닦은 장본인이 누구인가. 작금의 박정희 신드롬에는 이에 대한 객관적 비판이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신화와 환상으로 메우면서 신보수화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한껏 드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인화도 이 작품에서 슬쩍 내비친 그의 마음을 『인간의 길』이란 소설에서는 박정희를 ‘위대한 인간’으로 만드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게 된다.
국가는 국민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권력층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국민이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연구를 출범시킨 원초적 욕망은 제도권의 관심에서 배제된 소외집단의 억압된 목소리를 되살리려는 정치적 저항의식이었기 때문에 작품에 문학 비평을 하게 되면 권력에 대해 부정적이고 도전적일 수밖에 없다. 특정 인물을 비판하기 위한 의도는 아니었음을 밝힌다. 우리를 억압하고 구속하는 이데올로기(어떠한 이데올로기라도 좋다.)에 대한 저항이라는 시각으로 문학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그저 감상만 하는 수동적인 독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주체적인 독자가 되게 할 것이다.
★참고 자료
《문화산업시대의 글쓰기와 날이미지》
《문학에서 문화연구로 - 안토니 이스트호프》
《문학비평의 방법과 실재 - 이선영 엮음》
《문화연구와 문화이론 - 존 스토리》
《오규원 깊이 읽기 - 이광호 엮음》
《바흐친과 문화 이론 - 이홍상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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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06.02.27
  • 저작시기2006.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7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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