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대중음악 C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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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새로운 대중음악 CCM

CCM의 기원
1. CCM이란?
2. CCM의 목적
3. 가스펠뮤직의 간단한 역사
4. 미국 CCM의 역사 개관
5. 한국 CCM의 역사CCM의 역사와 비전

본문내용

으로."
5. 한국 CCM의 역사
1902
* 찬미가 - 미국 북감리교 선교부의 선교사들이 편찬
1905
* 찬송가 - 감리교, 장로교 모여 통일찬송가를 만듦(155-미국 장로교 찬송가, 84-부흥회용 노래)
1950
* 6.25 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하며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가스펠 송 전파
- 내게 강 같은 평화, 주 예수 사랑기쁨 내마음속에.. 등
1963
* 원주 청년관 음악사절단 (미국 선교사)
- 여러가지 스타일의 가스펠 음악을 잘 보여줌 우리나라 가수들에게 영향을 줌
1969
* 서울의 경동 교회 "조영남, 최영희, 트윈 폴리오" 음악 모임
- 교회에서 대중가요 가수가 기타를 치며 찬송을 부른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고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이런 시도는 우리나라에 컨템퍼러리의 물결이 시작되는 신호탄과 같았다. 경건과 은혜의 모습으로만 여겨지던 교회 음악이 젊은이들의 취향과 어울려 그들의 언어로 표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1971
* 조영남 성가앨범 발표 시작
* 빌리 그레이엄 전도집회 때 연인원 300만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이 참여한 이 대회에서 조영남은 기타반주로 찬송을 불렀다. 당시로서는 '저게 무슨 찬송가야...'할 정도로 파격적인 창법으로 노래했다. 그의 노래를 두고 한국 기독교계에서는 찬반양론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대중적인 스타일로 기독교적인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정서가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1960-70
* 기독교적 내용들의 팝송들은 사람들에게 컨템퍼러리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전할 수 있었다.
- Amazing Grace(주디 콜린스) 빌보드 1위, "주기도문(자넷 미드)" 우리나라 가수들의 애창곡이 됨
* 합창단과 모임을 통한 가스펠 보급
- 예수 전도단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우리에게 향하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 YMCA
* 활발한 복음성가집 활동들
- 부산 양정교회 산하 한국 복음 선교회 「복음성가집」
- 정신여고 노래 선교단 「노래할 이유있네」 매년 복음성가집 출간
- 「새노래」 예수 전도단
- 「우리들의 노래」 생명의 말씀사
- 「영감의 제창」 CCC 후에 찬미로 발전
- 「만남의 성가」 영락교회
- 「복음 성가」 순복음 교회
1975
* 윤용섭(색소폰 성가 연주)
* 한국 대학생 선교회(CCC) 갈릴리 중창단 결성
1976
* 부산 늘노래선교단 창단
- 악기와 편곡에서 록 스타일을 시작한 거의 최초의 밴드
1979
* 노문환 "잊으라시네"를 시작으로 창작곡들을 발표
* 국내 최초 록 오라토리오 "삼십 삼십 은 삼십" 발표
1978
* '빛소리'라는 이름으로 보컬 그룹 앨범 제작
- 전국 순회공연
* 대구 굿 라이프 선교단 창단(CCC)
- 대학가요제 입상한 최미와 성악을 전공하던 최명자가 합류한 굿 라이프 선교단은 기존의 가스펠송들을 가지고 전국대학을 돌며 공연활동
1980
* 기독교 방송(CBS) '새롭게 하소서' 간증 프로그램 시작
- 복음성가 방송
- 당시 방송할 음원인 가스펠 음악 테이프가 없어서 방송사 스튜디오에 가서 가수들의 노래를 직업 녹음하여 음악 자료를 만듦 (남궁옥분, 어니언스, 김세환, 이연실 등)
- 80년대 초반엔 한국 복음성가가 일반 레코드 업계의 주목을 받을 만큼 외적인 성장을 거둠
* 일반 대중 음악인들의 복음성가 활동 활발
- 윤형주, 현미, 봉봉 4중창단, 이용복, 방주연 등
1981
* 최성욱, 최안순 "사랑"
- 새롭게 하소서의 청취자들의 폭팔적인 반응으로 텔레비젼 드라마에도 등장하여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당시 가요계에서드 드물던 10만 단위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가요 차트에도 오르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전국적인 히트를 기록한 최초의 순수 복음성가.
- 80년대 초에 부흥한 복음성가는 "은혜와 간증", "회계와 구원"에 밀접하게 연관된 곡이 많음
이 때는 대중문화 자체가 정식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을 때였다. 대중음악, 나아가 대중적인 기독교 음악은 목회자나 신학자의 연구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복음성가에 대한 바람직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신학적, 문화적 바탕 위에 선 복음성가 문화가 체계적으로 형성될 수 없었다. 그저 "이러 이러한 악기는 안된다, 된다... 이런 음악 스타일이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것은 말도 안된다...'라는 단순한 얘기들이 제기된 논의라면 논의였다. 복음성가를 천박한 가요 스타일이라고 여기는 일이 많았고, 유명한 가수들이 회심하여 복음성가를 부르는 모습을 대견해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70-80년대는 체계적인 바탕이 없이 나름대로 제각각 뿌리를 내렸고, 음악성을 내세운 음반활동 위주가 아닌 현장 간증을 동반한 집회 활동 위주의 환경 때문에 음악 문화로서의 정체성을 세우기가 힘들었다.
간증과 연결된 노래와 가수들이 주류를 이룬 90년대 초반의 복음성가 문화는 교회 안팎으로 꽃을 피웠지만 음악을 위주로 하는 음반 판매는 갈수록 저조해졌다. 결국 복음성가 문화는 교회 집회를 중심으로 영역이 줄어들게 되었다. 자연히 일반 레코드사는 가스펠 앨범 출판을 중단했고 80년대 후반까지 일반 레코드점을 대상으로 한 LP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다.
1981
<창작복음성가의 시작>
* 주숙일 "주님 곁으로"
* 김민식 "저 어둠 속이면 어때",
* 김석균 "사랑의 종소리""예수 믿으세요""주를 처음 만난 날"
* 전용대 "주여 이 죄인이" 80년대 초중반 은혜와 간증이라는 집회 중심의 복음성가 문화에서 전용대의 노래는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그의 테이프는 백만 단위의 판매고를 기록
* 최용덕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가서 제자 삼으리라""나의 등 뒤에서"
- 이들의 노래는 창작곡이 많지 않던 시기에 곧바로 널리 알려졌고, 한국인의 정서에 맞닿아 80년대 이후 교회를 중심으로 대표적인 복음성가로 자리잡음.
* 최초 복음성가 경연대회 열림
- 1회:조호선, 주찬양 선교단, 2회:손영진, 4회:다윗과 요나단, 6회:박종호, 8회:송정미, 옹기장이
(80년대 중반 이후를 이끌어간 대표적인 CCM 아티스트들로 성장)

키워드

CCM,   찬양,   예배,   찬양사역,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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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4.05
  • 저작시기2005.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4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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