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표 33인의 역할과 민족대표성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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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민족대표 33인의 역할과 민족대표성 평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3 .1 운동 연표
1. 3 .1 운동 시작의 출발점
2. 3 .1 운동의 전개
3. 3 .1 운동의 결말

Ⅲ. 민족대표의 역할과 자질 문제
1. 폭력과 비폭력의 문제
2. 민중의 역할과 주도층 문제 (3.1운동의 대중화 문제)
3. 민족대표의 역할에 대한 평가 문제
4. 민족대표의 대표성 부여 문제

Ⅳ. 결말

본문내용

피폐해진 생활로 절감하고 민중봉기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으며 조선 전래의 민에 대한 간접적 통제 방식인 자치적인 향촌질서는 헌병경찰제, 면리 통폐합과 조선면제의 시행, 각종 법령과 규칙의 강제를 통해 식민지 권력의 직접적 통치하에 놓이게 됨으로써 일제의 압제를 벗어나가기 위해 또한 그것을 파괴하기 위해 중앙의 운동계획에 호응하여 참여가 가능하게 된 것 위의 글, p. 24 (11-17)
이지 민족대표의 의도대로 명분 있는 운동에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민족대표라는 칭호는 3.1운동의 과정에서 민중에게 별다른 영향을 발휘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Ⅳ. 결론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 때의 일에 대해 알고 있다. ‘민족대표’로서 존경을 받은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을 한일, 파고다 공원에서 학생들과 시민들이 용감하게 “독립만세”를 부르고 유관순 열사가 독립을 오치다 순국한 일등, 이미 수십년전의 일이지만 3.1운동에서 보여진 민족해방의 의지는 아직도 분단된 채 살고 있는 한국민의 가슴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3.1운동의 전체상과 성격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지 못하다.
결국 3.1운동에서 온 민족이 염원했던 민족자주화와 민주주의의 정신을 잘 계승하기 위하여 3.1운동의 여러 부문에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3.1운동은 비록 연구 편수는 많을지 모르나 충분히 연구된 것이 아니며 연구주제로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주제도 아니다. 이정은, 위의 글, p. 38 (15-18)
그중에서도 특히 민족대표에 관한 연구는 더욱 중요하다. 민족대표의 역할과 민족대표로서의 자질을 잘못 오인해서 평가하게 되면 3.1운동 전체를 평가할 때 많은 오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민족대표에 대한 문제를 연구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민족대표와 민중을 분리해서 보는 시각이 아니라 이것을 통합해서 보려는 시각으로 전환하여 운동전체가 우리 근대사에서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혀야 한다. 위의 글, p. 39 (3-7)
3.1운동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민족해방운동으로서 더 이상의 도전을 받을 수 없는 확고한 역사성과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3.1운동이야말로 전 민족이 대동단결하여 식민통치로부터 독립과 자유를 얻기 위해 감행한 항일민족운동이며 이러한 이념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계승 발전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지원, 「‘민족대표’ 33인은 왜 비폭력을 주장하였나」 p. 53 (1-7)
이러한 3.1운동을 설명할 때 민족대표와 민중을 분리해서 설명하기는 민족모순을 낳을 수 있다. 민족대표는 3.1운동을 계획하여 이 운동이 실질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역량을 불어넣었지만 거족적인 민족운동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그 힘이 역부족이었다. 민족대표의 부족한 부분을 바로 민중들이 채워주어 3.1운동이 전 민족적인 운동으로 일어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이처럼 민족대표와 민중은 동전의 앞, 뒷면과 같이 항상 같이 존재하며, 같이 생각해야 한다.
민족대표 33인은 ‘비폭력’방침을 채택하여 3.1운동을 전개하려 하였다. 이것은 33인이 주창한 독립운동원칙에서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폭력노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민족대표 33인 또한 비판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비폭력 방침을 채택하였다는 것만으로 비판해서는 안 될 것이다. ‘비폭력’ 자체는 ‘폭력’과 함께 주요한 운동방법의 하나이며 이 선택은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폭력 방법이 민족대표의 문제가 되는 것은 비폭력을 채택한 점이 아니라 그 비폭력이 일제와의 타협을 전제로 채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폭력적인 운동방침은 폭력성을 강조하는 상대의 잔학성과 부도덕성 앞에 운동의 도덕성과 방벙의 정당성을 부각시켜주기는 하지만 결국 33인이 주장한 비폭력운동방침은 일제와의 타협이며 자신들의 책임회피를 위한 안전판에 불과한 것이다. 위의 글, p. 53-57
그래서 민족대표의 비폭력노선을 강조하여 평가하는 기존의 인식은 하루빨리 바꿔야할 우리의 과제이다.
그리고 민족대표는 운동의 주도체로서 여러 가지 결점과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우리의 독립을 타협적, 외세의존적 독립방법론에 입각해 있었으며 그리고 이러한 외세의존적 성향에서 비롯된 국제정세에 대한 몰이해 김성보, 「3.1운동에서 33인은 ‘민족대표’인가」p. 43-45
등으로 조선도 요청만 하면 독립을 선사받을 수 있으리라 오해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들에 의해 3.1운동이 주도되지 못하였고 민중이 독립운동의 지도자로써 활약하게 된 것이다.
또한 3.1운동에서 민족대표의 역할도 3.1운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그 계기를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3.1운동 발발시점부터 이 운동의 지도를 포기하여 민족대표로서 불리기에는 나약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명분 있는 운동을 만들어 민중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들 스스로 민족대표라 칭한 것도 새롭게 우리가 인식해야할 일이다.
33인을 ‘민족대표’라 한다면 그들의 사상과 지도활동이 바로 3.1운동의 정신이어야 한다. 그러나 3.1운동의 전 과정에서 보여준 ‘3.1운동정신’은 33인의 나약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비타협적 투쟁이었다. 결국 이들이 마치 ‘민족대표’로서 3.1운동을 지도한 것처럼 인식한다면 오히려 3.1운동에서 보여 진 전 민족의 숭고한 정신마저 손상시켜 버릴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민족대표의 역할과 대표성을 평가하는 이유이다.
# 참고문헌
이정은 ,「3 .1 운동 연구의 현황과 과제」-『한국사론 』26, 국사편찬위원회, 1996.
김형석 편저, 『일제하 김병조의 민족운동』, 남강문화재단 출판부, 1993.
민족사바로찾기국민회의, 『독립운동총서』2, 「3.1운동」.
『쟁점과 과제- 민족해방운동사』, 역사비평사, 1990.
F. 볼드원 「윌슨 ,민족자결주의, 3.1운동」-『3.1운동 50주년 기념 논집』, 동아일보사, 1969.
고정휴, 「3.1운동과 미국」-『3.1민족해방운동』, 1989.
강만길, 「남북한 역사인식의 같은 점과 다른 점 」-『창자과 비평』63,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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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5.21
  • 저작시기20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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