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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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른가’라고 말하자 그가 골똘히 생각하고 나서, ‘흑백으로 논하면 희중(윤휴)은 흑이고 음양으로 논하면 희중은 음이네’라고 말하므로, 내가 ‘공이 이제야 비로소 크게 깨달았네. 이는 사문(성리학)의 다행이자 친구 간의 다행이네’라고 말했습니다. 윤선거는 일이 있다고 먼저 돌아갔습니다.”그러나 이것은 노론과 소론의 분당을 예고했다. ‘주자가 옳은가 윤휴가 옳은가’라고 묻는데, ‘윤휴가 옳다’고 답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랬다가는 윤선거 자신이 사문난적으로 몰려 매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선거가 일이 있다며 먼저 돌아간 것은 마음속으로는 송시열의 이분법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논쟁은 송시열과 윤선거의 논쟁이지만 그 배경에는 조선의 정치체제, 사상체제에 대한 체제갈등이 내포되어 있었다. 윤휴와 윤선거는 주자학 유일사상 체제를 폐기하고 다원 사상체제로 조선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견해인 반면 송시열은 주자학 유일사상 체제를 더욱 강화해 조선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견해였다. 조선의 방향에 대한 갈등이었던 것이다. 이 논쟁에 내재한 갈등의 싹은 숙종 때 서인이 송시열 중심의 노론과 윤선거의 아들 윤증 중심의 소론으로 분당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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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4페이지
  • 등록일2007.03.20
  • 저작시기2006.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99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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