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극의 개념과 특징 및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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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결하여 그것을 당기거나 놓으면서 조종했다고 한다. 그러나 광무대 시절에 유행했던 발탈의 주인공인 박춘재에 따르면 노끈을 꿰어 조종한 것이 아니라 직접 손에 한삼을 끼고 연희하였으며, 꼭두각시놀음 예능보유자 남형우는 양팔 끝에 노끈을 연결하여 그 노끈을 위로 올린 뒤 대나무에 연결하고 그 나무를 양손으로 조종하면서 발탈놀이를 했다고 전한다.
초대 발탈 보유자였던 이동안은 노끈에서 변화된 대나무로 조작하는 방식과 박춘재가 하던 손에 한삼을 꿰어 하는 두 가지 방법을 모두 해왔으나 손에 한삼을 꿰고 하는 것은 손놀음이 불편할 뿐 아니라 장기간 연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요즘은 포장을 치고 그 안에 누워서 발만 관중에게 내놓고 대나무로 팔을 움직여서 연희한다.
발탈의 춤은 어깨춤과 좌우치기, 목놀이 등 3가지의 춤사위가 등장하는데, 표출방법은 발의 움직임으로 하는 경우와 대나무나 실로 하는 경우 그리고 손으로 춤추는 경우도 있다.
3. 발탈놀이 전승무대
발탈을 연행하는 탈판의 구조는 가로 2m, 세로 약 1m의 크기로 검은 포장막을 4각으로 짜고 탈을 조종하는 연희자가 그 속에 누운 채 발만 포장 앞으로 내놓은 채 진행된다. 연희자가 포장 밖으로 내놓은 발에 탈을 씌우고 상의를 입혀 그 속에 대나무를 꿰어서 양손에 잡고 조종하는 것이다. 탈꾼은 발의 움직임과 손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하여 노래와 춤, 재담을 늘어놓고 포장막 밖에서는 어릿광대가 탈꾼을 상대해준다. 그 옆에는 삼현육각이 반주를 맡는다.
4. 발탈놀이의 구성과 내용
발탈놀이의 등장인물은 조기장사와 그 상대역인 어릿광대, 그리고 조기를 사러 나온 여자 등 모두 3인이다. 주인공은 조기장사이며, 어릿광대가 그 상대역을 담당한다.
발탈놀이는 비교적 간단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공연시간도 다른 민속극에 비해 상당히 짧은 편이다. 심우성이 1972년에 채록한 발탈의 연희본(<발탈 연희고>, 민속문화론서설, 심우성, 동문선, 1998)에 따르면 발탈놀이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번째 대목 어릿광대가 발탈의 생긴 모습을 놀리는 대목. 연희본에 따라 이 대목은 빠지 기도 한다.
두번째 대목 어릿광대가 발탈과 재담을 나누며 발탈에게 팔도유람을 해야 한다 하고는 발 탈에게 ‘만고강산’,‘개성난봉가’ 등을 부르게 하며, 타령곡에 맞추어 춤을 추게 한다.
세번째 대목 먹는 이야기 대목
발탈은 버섯, 도토리, 대추, 술, 안주, 숭어 등 온갖 고기, 꿩, 비둘기. 맹꽁이. 개구리, 고래, 상어 등도 잡아먹고 영감과 할미의 성기까지 다 먹고, 이제 할 것이 없어서 조기장사를 한다고 한다. 이는 오광대와 야유에서 영노가 비비가 온갖 것을 다 먹는다고 하면서 양반을 위협하는 대목과 유사하다.
네번째 대목 - 조기장사를 하며 고기를 헤아리는 내용의 재담이다. 조기장사 왈 하날기라 대하, 둘이라 대하, 셋이라 대하, 넷이라 대하, 다섯이라 대하, 한뭇이오 두렁, 두뭇두렁, 세뭇두렁, 네뭇두렁, 다섯뭇두렁 등 조기를 헤아리는 내용이다.
다섯째 대목 발탈이 ‘고사덕담풀이’, ‘진도아리랑’을 한 다음, 덧뵈기춤을 추다가 탈꾼이 탈을 벗어서 손에 쥐고 구경꾼들에게 인사를 한다. 끝으로 ‘파연곡’, ‘신난봉가’ 등을 악사의 반주에 맞추어 부른다.
발탈에는 ‘만고강산’, ‘개성난봉가’, ‘신난봉가’, ‘진도아리랑’ 등의 노래들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를 토대로 유추해보건대, 이 노래들이 주로 19세기 중엽 이후부터 유행한 잡가의 목록이라는 점에서 발탈놀이의 형성을 최대한 예전으로 소급하여 잡아도 19세기 이전으로는 소급되기 어려울 듯 하다.
발탈에 나오는 재담의 내용은 주로 무엇을 잡아먹는 이야기와 조기를 헤아리는 이야기 그리고 약 먹는 이야기 등인데, 이 이야기 속에는 잔재주나 장난기, 거기에다 사회를 보는 비판력과 관찰력이 반영되어 있다. 발탈은 풍자적이고 해학적이고 추하기까지 하나 한편으로는 인간적이고 속임없이 폭로하는 등 짓눌렸던 당시의 서민들의 애환을 꾸밈 없이 담고 있다는 면에서 여타의 각 지역 탈놀이에 담긴 내재적 성격과 일치하고 있다.
발탈은 조종형식과 장대인형극의 조종형식 등 두 가지 인형극적 양식을 갖추고 있으나 탈춤으로서의 성격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발탈은 규모가 작은 판놀음의 하나로 광대들의 예능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른바 발탈꾼과 어릿광대의 어울림에서 전승되는 재담 이외에는 거의 현장성이 우세한 것으로 볼 때 대단히 즉흥적인 연희라 할 수 있다.
1)전승자
발탈이 남사당패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면 그 전승계보는 김덕순, 조갑철, 박춘재, 오명선 씨(꼭두쇠) 등의 류파를 시점으로 하여 김덕순, 조갑철, 박춘재씨 계의 발탈이 이동안씨에게로 이어졌고, 오명선씨의 발탈은 계승자인 남형우씨(꼭두쇠)가 작고한 뒤 명맥이 끊어졌다. 초대 발탈 기능보유자 이동안씨의 발탈은 박해일, 김응수, 김경원 등에게 전승되었다.
☞ 이동안(李東安, 1906~1995)
경기도 화성 출생이며, 이 시대의 마지막 재인(才人), 민속예술의 증인 이라고 불렸던 전통춤꾼이다. 태평무, 승무, 진쇠춤, 신칼대무, 한량춤 등 30여 가지에 달하는 전통춤의 원형을 보존해왔으며, 줄타기의 명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발탈꾼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인정을 받았다. 이동안은 조선시대 전문 예인을 관리하는 재인청의 수장 도대방(都大房)을 세습해 오던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나 예인의 되는 것을 반대하는 집안의 뜻을 어기며 13세에 가출하여 남사당패를 따라다니면서 연희를 배웠다. 그는 광무대와 원각사를 거쳐 춤의 명인인 김인호에게 ‘신칼대신무’, ‘진쇠춤’, ‘태평무’ 등을 전수받았으며, 1922년에는 박춘재로부터 발탈을 배웠다.
☞ 박해일(1923~ )
1942년 조하소 선생으로부터 화술과 재담을 사사받았으며, 1953년 대한담우협회 창립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96년 발탈의 예능을 인정받아 이동안의 뒤를 이어 발탈 보유자 인정을 받았다.
<참고문헌>
이병혁, 김승찬 <한국문학개론>
김청자, <한국전통인형극의 새로운 접근> <한국연극학>
서연호, <꼭두각시놀음>
임재해, <꼭두각시놀음의 이해>
김재철, <조선연극사>
심우성 <남사당패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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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3.17
  • 저작시기20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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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55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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