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론, 수난의 역사에서 길러낸 인간에 대한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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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부제 - 황석영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Ⅱ. 본론
1. 황석영, 그 역정의 삶
2. 작품론
1) 제 1시기 - 1970년대 중, 단편의 시기 --- 객지, 삼포가는길
2) 제 2시기 - 1980년대 장편의 시기 --- 장길산, 무기의 그늘
3) 제 3시기 - 2000년대 장편의 시기 --- 오래된 정원, 손님
3. <오래된 정원> 감상 정리

Ⅲ. 결론
부제 - <오래된 정원> 작가의 말

본문내용

사는’ 이들과, 지식인이지만 정치운동으로 수배중인 학생들이다. 오현우가 임사장에게 몸을 의지할 때 만난 ‘박’과 명순,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세상이 불합리하고 공정치 못하다는 것을 머리로 알진 못해도 가슴으로 알고 있는 그들을 대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장 옥상에서 분신한 미경의 모습도 그려보았다. 오현우의 주변 인물들은 하나같이 가련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다. 한현우가 복역 중 거쳤던 교도관에 관한 내용마저도.
작가가 「오래된 정원」을 통해 풀어낸 반백년의 역사(80년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와 한윤희와 오현우의 설명하기 벅찬 사랑,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 저마다의 사연과 가련함이 나를 마지막까지 이끌던 힘이었다. 그리고 황석영의 ‘짐’은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져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 ‘짐’은 앞으로 점점 더 무거워지겠지만 우리는 또 나누고, 나누고를 반복해야 한다. 끊임없이. 그럼 언젠가는 ‘오래된 정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Ⅲ. 결론
#작가의 말- 오래된 정원#
'장길산'을 출판한 것이 1984년의 일이고 '무기의 그늘'이 나온 때가 1987년이었지만 사실은 그 작품을 드문드문 쓰기 시작한 게 이미 칠십년대 초반의 일이고 겨우 끝마무리만 해놓은 것도 팔십 년대 초반이었다. 따져보면 이번의 '오래된 정원'을 쓰기까지 거의 십오 년 동안을 딴 짓으로 세월을 보낸 셈이다.
감옥에 있을 때 후배들이 찾아와 요즈음 젊은이들은 이미 선생의 이름을 잊었거나 이름도 모르더라고 했을 적에도 나는 별로 초조하다거나 섭섭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세상에 나온 뒤에도 혹자는 황아무개가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를 염려하더란 소문도 들렸고 사실 어느 기자는 인터뷰를 하면서 내게 묻기도 했다. 그런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도 모르게 예전보다 훨씬 담담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마치 쥐고 있는 패가 신통치 않은데도 새벽까지는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느긋해하는 노름꾼처럼 말이다. 하여튼 뭔가 빛나는 물건을 만들어보려고 애달케 하던 조급증이 가셨다. 전처럼 감정을 아낀 문장을 갈고 다듬기보다는 그냥 수수하게 마음을 열자는 기분이 들었다. 나이 들어서야 평상심으로 글을 대하게 된 것만 같다.
군사독재 시절에 고향도 아니면서 전라도에 내려갔다가 수많은 인연도 생겼고 광주에서의 유혈은 내내 짐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복 받은 일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운 나쁜 일이기도 했다. 작가로서는 겪을 만한 일이었겠지만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자기 그릇에 넘치는 일도 감당을 해야만 했다. 이제 나의 반생을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인 듯한 생각이 든다. 곡절 많은 세월이었지만 나는 글을 쓰든 쓰지 않든 '문학을' 오롯이 살아냈다. 어쨌든 죽는 날까지 작가는 자신의 문학을 온몸으로 사는 것이다. 나의 산전수전은 작가로서의 마음바탕이 되었으리라.
이 작품은 베를린 망명시절, 작곡가 윤이상 선생 댁에서 떠올랐던 구상이 기초가 되었다. 그때에는 아직 장벽이 무너지기 전이었고 아마도 그해 여름이었을 것이다. 나는 저녁을 먹고 나서 선생과 함께 거실에서 사모님이 깎아주는 과일을 들고 있었는데 그가 내게 말했다. 저것 좀 보아, 어떤 때에는 고향집에 돌아온 것 같아.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문 대신 중국식당에서나 볼 수 있는 주렴이 드리워져 있었다. 색색가지의 작은 구슬을 엮어 먼데서 보면 수양버들과 강물과 나룻배가 떠 있는 그림이 비쳤는데 그것이 바람에 잔잔히 흔들릴 때면 그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가구점에 갔다가 동양풍이라 얼른 사왔다고 한다. 선생은 그렇게 망향의 마음을 드러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곳은 또한 현재 실재하는 남쪽 바다와 통영이 아니었다. 그는 영원히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우리네 민요 성주풀이에 보면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아' 하는 첫구절이 나오지만 그의 관현악 조곡 '뤄양'은 이 낙양의 중국 원어 발음이다. 아시아와 인도와 아프리카의 타악기를 동원한 이 음악은 대단히 명상적이고 적막감이 드는 곡인데 내가 그에게 왜 낙양인가를 물었다. 그는 지금과 같은 전쟁의 폭려과 굶주림과 억압의 공포가 없던 태곳적 평화로운 아시아 저편을 그리면서 곡을 썼다고 했다. 한 사람의 디아스포라로서 그의 고향은 바로 그곳이었던 셈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구 사회주의가 일제히 몰락했을 때 나는 이십세기가 끝나는 현장을 보면서 이러한 이행기를 냉전과 분단의 시대를 살아온 작가로서 뿐만이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도 삶을 통하여 기록해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1993년에 귀국하자마자 구치소에 있던 무렵 운동시간에 나가 하염없이 시멘트 담벽 안의 비좁은 공간을 맴돌면서 문득 무릉도원 이야기와 샹그릴라 전설이며 하는 것들을 생각하던 중 '오래된 정원'이라는 제목이 떠올랐다. 세상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섬인 유토피아까지도. 그러나 나와 내 벗들의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우리가 겪은 일들을 미래나 예견에 사로잡힌 과정으로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제는 시대나 역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 물결 속에 휩쓸리며 헤엄쳐가던 하찮고 가냘픈 개인의 나날을 통해서 세계를 보아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에른스트 블로흐의 말투로 얘기하자면 '오래된 정원'은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을 추구한 세대의 초상이 될 것이다.
새로운 세기에 지난 세기의 암울한 고통과 상실과 좌절을 되새기면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해왔던 질문을 다시 던져본다. 아직도 희망은 있는 것일까? 질문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언제나 다시 출발할 것이다.
내가 사랑한 사람들, 나의 벗들에게도, 오늘 우리 같이 가자고 오랜만의 인사를 전하면서.
2000년 4월 덕산에서 황석영
참고문헌
<분단의 형이상학을 넘어서 - 황석영론>, 하정일, 실천문학사, 2007
<황석영의 소설과 근대성, 그 극복의 서사>, 김종회, 작가세계, 2004
<황석영 소설에 나타는 근대적 공간 연구>, 오태호, 한국현대소설학회, 2006
<황석영 소설에 나타난 탈식민주의 고찰>, 김미영, 한국어문화학회, 2004
<미래를 꿈꾸는 서사의 지난한 역정, 황석영론>, 서영인, 문예미학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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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3.28
  • 저작시기20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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