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조약을 통한 현재 돌아보기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 여행 준비
1) 을사조약의 배경과 전개
2) 을사조약의 체결 결과

2. 여행 시작
1) 여행하기 - 1차 답사
2) 한규설 대감가 재답사 - 2차 답사

3. 여행 마무리 - 을사조약을 통한 현재 돌아보기

<참고문헌>

본문내용

다. 답사 신청을 하고 둘러보니 주변에 행랑채와 부엌 등이 보였다. 안채의 방을 살펴보고 마당에 있는 건물들도 이리 저리 둘러보았다. 그리고 따로 부탁을 하여 외부의 귀빈들이 올 때만 쓴다는 사랑채의 안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조선 후기에 만들어 진 병풍, 다기들은 매우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사랑채를 다 구경하고 그 뒤에 자그마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연못이 나왔는데 번잡한 서울 속의 한가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3. 여행 마무리 - 을사조약을 통한 현재 돌아보기
역사가 가치 있는 이유는 과거의 사실이 현재의 우리에게 미래의 이정표를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최근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김훈의 <남한산성>이란 소설을 살펴보자. 소설은 병자호란 때 인조와 조정대신들이 청나라 군을 피해 남한산성에서 47일 동안 칩거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산성에서 주전파와 주화파 사이의 갈등은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 명분이 우선인가, 실리가 먼저인가. 이 근원적 문제는 당장 내 자신의 문제로 환원되고, 우리 가족, 내가 속한 조식의 문제로 환원되며, 이 나라의 외교문제로도 환원된다. 역사 속 사건은 우리의 삶속에 그대로 용해된다.
그러나 역사의 교훈을 아전인수 식으로 찾는다면 문제가 있다. 예컨대 지난 4월 3일 한미 FTA가 체결된 후 일부에서는 ‘제2의 을사조약’이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강대국과 불리한 조약을 체결하면 다 을사조약인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을사조약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국권침탈이라는 뼈아픈 기억은 민족의 ‘트라우마(PTSD)’ 그 자체다. 그러므로 어떠한 사건도 일단 을사조약과 연결고리가 생기고 나면 기필코 반대해야하는 것이 돼버린다. ‘한미FTA=을사조약’이란 도식 속에서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무조건’ 반대라는 감정적 판단을 내리게 된다. 선동가들은 불에 기름 붓듯 여론을 부추긴다.
1905년 대한제국과 2007년 대한민국의 상황이 같을 수 있을까. 더구나 외교권 박탈이라는 을사조약과 경제 종속 문제인 한미FTA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건지. 그저 을사조약의 상징을 끌어와 반대여론을 키워 보겠다는 ‘정치적 의도’만이 엿보일 뿐이다. 득과 실을 이성적으로 분석해야할 토론의 자리에 무조건 반대와 같은 비이성이 자리 잡는다면 발전적 대안은 나올 수 없다.
을사조약은 이제 1905년에 일어난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국권침탈의 아픔을 보여주는 기호이자 상징이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허나 을사조약에서 얻어낼 수 있는 교훈은 이 나라의 국력과 외교능력 강화지 여론 선동의 아이템은 아닐 터이다. 을사조약을 조사하면서 외교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남한산성의 인조와 조정대신들처럼 명분과 실리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현대의 우리에게 고민거리를 던져준 것만으로도 ‘을사조약’은 역사로서 소명을 분명히 했다.
<참고문헌>
1) 시일야 방성대곡(장지연, 황성신문, 1905년)
2)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년(김삼웅, 시대의 창, 2005년)
  • 가격1,5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8.12.24
  • 저작시기2007.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08626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