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이해A)1950년대 한국경제에 관해 논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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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경제의이해A)1950년대 한국경제에 관해 논하시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1950년대 남북분단의 고착과 원조의 경제적 영향
2. 시장경제체제의 기반조성 및 혼란의 수습
3. 1950년대의 금융제도 및 금융정책
1) 금융제도
2) 금융정책
4. 1950년대의 노동시장 - 저임·대량실업
5. 1950년대의 무역 - 수입억제 및 수입대체산업의 구축
6. 1950년대의 산업정책
1) 자본주의 사장경제체제의 기반조성
2) 대기업중심 체제의 태동

Ⅲ. 결 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가장 절실했던 것은 식품 및 의약품 등 기초생필품과 파괴된 생산설비복구라 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결국 일정기간 해외원조에 의존하거나 자율적 생산에 맡겨두었다. 후자의 경우는 즉시 생산이 가능한 생산시설 보유기업 위주로 (원조 받은) 원료 및 복구용 시설재를 집중적으로 배정한다는 원칙이 적용되었다.
둘째, 이상과 같은 과정을 통하여 형성된 대기업 위주의 생산구조는 이후 더욱 강화되는 계기가 마련되는데 그 첫째 이유는 원조물자 배정시 적용된 환율이 실제시장환율의 50% 이하에 불과하여 100% 이상의 환차익이 가능했고 둘째는 이러한 특혜적 배정을 유지하기 위해 일종의 원료 독점용 카르텔이 조직되었으며(대한방식협회, 대한모방협회, 한국제분공업협회 등), 셋째는 이들 카르텔의 형성 및 유지를 정부가 국내시장보호를 위한 수입억제를 도모한다는 차원에서 규제하지 않은데 기인하는 것이다. 이들은 결국 정부는 협회에 그리고 협회는 각 회원 기업체에게 원조 받은 원료 등을 배정하되 기업별 시설보유능력에 따라 배분하였고 협회들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원료배정은 물론 가격 및 판매담합 그리고 신규기업 진입억제를 도모하여 한국산업의 주도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는데, 1990년대 10대 재벌 중 대우를 제외한 9대 재벌 모두가 그 주력기업을 이시기에 창업한 상태였다고 분석하였다. 상황이 이러했던 바 중소기업은 전근대적인 영세규모 사업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었으며 원료확보나 자금조달 등이 어려워 거의 수공업적 생산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결국 한국의 산업계는 건국초기부터 자생적인 경쟁의 결과나 효율성 위주의 기업 성장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정부의 원조물자배정 및 재정·금융지원 등의 배타적 혜택의 수혜로 성장하는 과정을 밟게 된다. 또 한 가지, 이 시기에 형성된 산업정책의 결과적 특징 중 하나는 대기업중심의 성장을 도모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물론 이러한 특성은 당시 열악했던 전후경제여건 및 기술수준에 주로 기인하는 것이고 장기적 산업구조계획이나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고려하여 선정한 산업정책은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이 시기 산업정책의 특성을 규정해야 한다면 격동이 열악한 경제여건탈피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수동적 산업정책추구기(defensive industrial policy period)라 할 수 있고 대기업 위주의 특혜(원료배정 및 차별적 환율적용 등)를 통한 생산설비확충과 소비재경공업 중심의 수입대체산업에 치중하되 수입억제정책을 도모한 시기라 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이미 이때부터 인위적 자원배분에 의한 대기업중심의 산업구조가 정착되었다고 규정할 수 있다.
Ⅲ. 결 론
지금까지 1950년대의 한국경제에 대하여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살펴보았다.
1950년대의 한국경제는 외국의 자본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러한 중심에는 미국의 경제적 원조가 한 가운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원조를 제공할 때에는 이를 한국경제의 자립화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 하였고, 1950년대 말 원조를 감축할 때에는 한국이 이미 자립경제의 단계에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1950년대 말 우리는 어떠한 기준에 의해서도 자립경제의 단계에 와 있다고 볼 수 없었으며 오히려 원조를 통해서 대외종속성이 더욱 심화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원조는 후진국 지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선진독점자본의 자본수출의 한 형태이며 수원국의 지배를 위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은 한국자본주의의 구체적 전개과정 가운데서 입증된다.
유전 이후 막대한 양의 원조가 제공됨으로써 한국의 생산능력을 넘는 소비가 이루어지고 또한 공업화가 진전된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최종소비재를 중심으로 한 공업화에 한정되었으며 원자재의 해외의존은 점차 심화되고 이것이 한국경제의 구조적 특성의 하나로 정착되었다. 또한 잉여농산물원조는 농업을 정체시키고 농민을 영세소농으로 몰락시킴으로써 농업과 공업간의 국내적 분업관련을 파괴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내적 빈곤과 불평등을 가중시켰다.
Ⅳ. 참고문헌
1. 박현채외 3명, 한국경제론, 까치, 1987.
2. 김정식, 한국경제의 역사적 이해, 유풍출판사, 2003.
3. 최배근 외 7명, 한국경제의 이해, 법문사, 1997.
4. 김기태 외 3명, 한국경제, 한울아카데미, 1998.
5. 이종원, 한국경제론, 율곡출판사, 2002.
6. 주성환 외 2명, 한국경제의 이해, 무역경영사, 2005.
7. 이근영, 한국경제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개혁, 다산출판사, 2006.
  • 가격3,0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9.09.25
  • 저작시기2009.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5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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