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비저널리즘]텔레비전 저널리즘(TV저널리즘)의 양상과 질, 텔레비전 저널리즘(TV저널리즘)과 정치냉소주의, 텔레비전 저널리즘(TV저널리즘)과 사회위기, 텔레비전 저널리즘(TV저널리즘)의 질적 향상을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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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저널리즘]텔레비전 저널리즘(TV저널리즘)의 양상과 질, 텔레비전 저널리즘(TV저널리즘)과 정치냉소주의, 텔레비전 저널리즘(TV저널리즘)과 사회위기, 텔레비전 저널리즘(TV저널리즘)의 질적 향상을 위한 제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저널리즘의 세 가지 위기
1. 기사의 위기
2. 기자의 위기
3. 공론장으로서의 저널리즘의 위기

Ⅲ. 텔레비전 저널리즘(TV저널리즘)의 양상
1. TV 뉴스의 시작(1956˜1970)
2. TV뉴스의 개척(1970˜1979)
3. 공영체제와 컬러시대의 TV뉴스(1980년 이후)

Ⅳ. 텔레비전 저널리즘(TV저널리즘)의 질

Ⅴ. 텔레비전 저널리즘(TV저널리즘)과 정치냉소주의

Ⅵ. 텔레비전 저널리즘(TV저널리즘)과 사회위기 - 이라크전쟁보도 분석

Ⅶ. 텔레비전 저널리즘(TV저널리즘)의 질적 향상을 위한 제언

참고문헌

본문내용

내용에 기인하는 것인지, 혹은 시·청각에 호소하는 매체의 속성에 기인하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텔레비전 뉴스의 영향력이 점증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지만 텔레비전 뉴스가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조차 아직 없다. 모든 사람이 뉴스에 대해 각기 다른 정의를 갖고 있는 상태에서, 뉴스 제작자가 뉴스라고 말하면 그것이 곧 뉴스라는 개념정의가 우문현답처럼 보일 정도이다.
프로그램 장르간의 혼성모방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텔레비전 뉴스 혹은 텔레비전 저널리즘 관련 프로그램 역시 갖가지 변형이 나타나고 있다. 덧붙여 뉴스를 취재·보도하는 기자의 고유 영역에 PD뿐만 아니라 비디오 저널리스트(VJ)까지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이 때문에 텔레비전에서는 (방송) 기자(reporter)보다 저널리스트(journalist)라는 용어가 보다 실용적이라고 생각된다. 이럴 경우 저널리즘 관련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들(특히 PD와 VJ)의 입지가 강화될 뿐만 아니라, 이들이 더욱 책임감 있게 프로그램을 만드는 활력소가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물론 용어를 일치시키거나, 유사 부서간의 통합만으로 이런 효과가 곧바로 창출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방송 저널리스트로서의 전문성이 그 기반을 받쳐주어야 한다. 여타의 전문직과 달리 저널리스트는 공인된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독립적으로 자신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다. 이 때문에 저널리스트의 전문성은 오래 전부터 도마에 오르내린 이슈이기도 하다. 따라서 저널리스트는 고유의 직업윤리와 함께, 사회를 비판하는 데 필요한 전문 지식과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겸비하여야 한다. 또한 학자나 연구자와 달리 전문 분야에 대한 대중적인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기본 요건도 갖추지 않은 채, 유사한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해서 방송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현재 저널리즘 관점에서 방송에 대한 수용자들의 일반적인 평가는 신문보다 우월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객관성과 신뢰도 측면에서 그러하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특정 이슈나 사건에 대한 개별 신문과 개별 방송에 대한 조사가 아니라, 신문과 방송이라는 전체 덩어리에 대한 평가라는 점에서 온당치 않다. 그러므로 방송 저널리스트들은 현재의 평가에 자족하기보다 저널리즘적 가치 추구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런데 방송 저널리스트가 빠지기 쉬운 가장 큰 함정은 시청률로 대표되는 상업주의이다. 인쇄매체는 기사 내용과 광고의 연관성이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 즉 신문은 동일 지면의 기사가 광고 열독에 영향을 미치기 힘들다. 다시 말해 신문에서는 기사와 광고가 동일 지면에 실리더라도 거의 구분되어 있고, 기사와 광고를 읽는 목적도 독자에 따라 각각 다르다. 아울러 신문은 절대적인 구독시간이 기사 선택에 영향을 미칠 뿐이다. 즉 신문독자는 주어진 시간 내에 자신이 보고 싶은 기사나 광고를 얼마든지 취사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특정 프로그램의 전·후 광고마저 해당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일반적 통념(인접 효과)이 자리 잡고 있다. 즉 시청자는 신문 구독자와 달리 특정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 원치 않게 광고를 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아울러 전체 편성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되지만 시청자가 볼 수 있는 시간대에 제공되는 프로그램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이 때문에 텔레비전은 개별 시청자가 방송 시간대나 프로그램 선택을 하는 데 있어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주된 수익이 광고에서 유래할 경우 시청률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방송사는 극히 드물다. 이 때문에 시청률 경쟁 혹은 상업주의는 텔레비전 제작자가 안고 있는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사들은(수익성이 떨어지더라도) 가치 있는 프로그램을 더 많이 만들고(수익성이 높더라도) 가치 없는 프로그램은 줄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한국의 방송사들에게 이와 같이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방송광고 수익이 시청률 연동제가 아닌 시급제에 의해 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오락 프로그램이 아닌 방송 뉴스(저널리즘) 프로그램마저 가벼워지고 오락 지향적으로 변해 가는 경향에 대해서는 시청자들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 즉 양질의 저널리즘은 공중(public)이 무엇을 볼 것인가를 선택하는 데 달려있다는 지적처럼 공중이자 소비자인 시청자들도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시장을 순화시킬 의무가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가치 있다고 평가하는 프로그램을 적게 보고, 가치 없다고 평가하는 프로그램을 더 많이 보는 역설적인 현상을 시청자 스스로 해소해야 한다. 물론 소비의 외부효과가 발생하는 재화의 경우, 긍정적인 외부효과가 발생하는 생산 및 소비활동은 사회적 최적에 비해 과소하고, 부정적인 외부효과가 발생하는 생산 및 소비활동은 사회적 최적에 비해 과다한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공동체 관점에서의 방송시장 순화는 소비자로서의 시청자와 생산자로서의 방송사가 공동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다.
신문과 방송을 포함한 언론 자유의 역사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에서 출발하여 현재의 당면 과제는 주로 경제적인 자유와 연관된다. 그러나 전자의 자유와 달리 후자의 자유는 개별 언론사의 생존권과도 결부되기 때문에 이상과 현실의 적절한 조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저널리즘적 가치(공익적 가치)와 시장의 가치(상업적 가치)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가치가 아니라, 시멘트와 모래처럼 적절히 섞여야만 튼튼한 집을 구축하는 것과 같은 가치이다. 그 적정치를 찾는 작업은 지속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주요 과제이다.
참고문헌
강상욱(1996), 미디어 영상학: 이진출판사
강준만, 세계의 대중매체1 미국, 인물과 사상사
공용배, 영상 콘텐츠 산업론, (주)나남
안정임(2002), 텔레비전 저널리즘: 저널리즘 가치와 시장 가치의 융합, 10월 발간 예정
피에르 부르디 외, 텔레비전에 대하여
한국방송공사(1998), TV저널리즘과 미디어 비즈니스, 서울:KBS
한국언론학회(2002), 한국 방송저널리즘의 현주소와 개선방안, 세미나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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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0.11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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