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문명과 인간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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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술문명과 인간발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신재생 에너지
<근래에 새롭게 부각된 에너지>
2.지구온난화 문제
3.저장용기로써 옹기가 갖고 있는 특징
4.GMO의 정의와 잠재적 위험
5.온돌난방의 원리 및 장.단점
6.GPS의 정의와 원리
7.생명복제의 정의&현재 생명복제 방법과 의미
8.gas hydrate(가스하이드레이트)-미래연료
9.광 우 병
10.무령왕릉에서 발견된 국보급 문화재

본문내용

증상을 나타내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며 정식 병명은 “소 해면상뇌증” 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 병에 걸린 소의 뇌세포가 변형된 프리온이란 감염성 단백질에 의해 파괴되어 스펀지 모양의 병변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는 1986년 영국에서 처음 보고되었으며 소에게서 발생하는 치명적인 신경 퇴행성 질환이다. 이 질병은 소의 뇌와 척수가 스펀지 모양으로 변질되며 눈이 붉어지는 증상이 있다. 구제역과 같은 가축 질병 정도의 대량 발병 사태가 발생한 적은 없지만 인간에게 감염될 우려 때문에 관심을 끌고 있는 병이다.
2. 인간이 광우병에 걸리는 과정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vCJD)은 소해면상뇌증과 증상이나 병인체가 유사하기 때문에 소에게서 인간으로 전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추정 될 뿐 증명되지는 않았으나, 증상이나 병인체의 유사성이 높아 광우병은 소의 고기(뇌, 척수, 내장 등 포함), 또는 그 가공물을 먹은 인간에 전염될 수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사람에게 발병하는 병은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의 새로운 변종으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영국에서는 쇠고기의 육질이 부드러워진다는 이유로 도살하고 남은 양의 잔해(뇌, 내장 등)를 가공하여 소에게 사료로 공급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 스크래피로 죽은 양들의 잔해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0 여년 후 소에게서 광우병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또 10 여년 후 사람에게서도 동일한 증상이 발견되자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입니다.
이 병은 잠복기가 10~20 년으로 길기 때문에 초기에 진단되지 않지만 발병 초기에는 밤에 잠이 안오고, 식용저하, 우울증 등을 보이다가 점차 언어장애, 기억력 상실, 그리고 경련을 일으켜 결국 혼수상태에 빠지고 사망하게 된다.
인간도 소처럼 자연발생적인 CJD가 생긴다. 이러 산발성 CJD에 걸리는 100만 명 중 한 명은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결코 소고기를 먹지 않았고, 인생을 그리 나쁘게 산 것도 아니고, 완전한 채식주의자라 해도 상관없다. 확률적으로 100만 명이 있다면 그중에 한 명의 뇌에서는 잘못 겹쳐진 프라이온 단백질이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예방할 수도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묻는다면 정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다.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국보급 문화재
무령왕릉은 1971년 7월 5일 배수공사중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묘실 전체를 벽돌로 쌓은 전축분(塼築墳)으로 입구통로에 해당하는 연도와 시신(屍身)을 안치하는 현실(玄室)로의 두 부분으로 만들어졌다. 연도의 길이는 길이 2.9m, 너비 1.04m, 높이 1.45m, 현실은 길이 4.2m, 너비 2.72m, 높이 2.93m의 크기 인데 모두 장방형(長方形)의 평면(平面)에 무지개형 천장을 하고 있다. 벽돌은 대부분 연꽃무늬가 있는 것을 사용하였고, 동ㆍ서ㆍ북 3벽에 감(龕)을 만들어 5개의 등잔을 놓았다. 왕과 왕비의 두 분을 합장(合葬)한 이 무덤은 왕 서쪽에 왕비의 시신을 모셨는데 머리를 남쪽으로 두고 있었다.
이 왕릉에서 발견된 가장 중요한 유물로 지신(地神)에게 무덤의 터를 사는 기록을 새긴 지석(誌石)이 발견 되었는데 이 지석에 의하면 왕은 523년 5월 7일에 돌아가셨고 3년째 되는 523년 8월 12일 왕릉에 안장하였으며, 왕비는 526년 12월 돌아가시고 529년 2월 12일에 왕릉에 안장하였다. 이 왕릉에서는 관장식(冠裝飾)ㆍ귀걸이ㆍ목걸이팔찌 등 금으로 만든 각종 장신구를 포함하여 도합 108종, 2906점이라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고, 그 중에는 국보(國寶)로 지정된 것만도 12건에 달하고 있다. 이 왕릉의 발견은 백제문화 및 미술의 높은 수준과 그 확실한 연대를 증명하는 역사적 계기가 되었으며 동양문화사에 찬연히 빛나는 백제문화의 위치를 드높혔다.
무령왕릉은 전축분으로 1971년 배수로 공사 중 발견되었고 국보로 지정된 것만도 12종 17점에 달하고 있다.
무령왕릉 1971년 7월 5일 발견되어 조사된 이 왕릉은 한국 발굴사상 최대의 학술적 의미와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본 왕릉에서는 왕의 지석을 비롯하여 108종 2,906점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왕 금제관식
국보 제154호 이 관식은 한 쌍으로서 순금판 위에 문양 윤곽을 선각하여 예리한 조각도로 도려낸 것이다. 관식의 각 부위에 127개의 영락들을 금사로 꼬아 매달았다.
왕비 금제관식
국보 제155호 왕 관식처럼 한 쌍이 발견되었는데 역시 금판을 오려 내었다. 좌우 대칭을 이룬 인동문으로 구성되었으며, 영락이 달려있지 않아 간결한 인상을 준다.
왕비 금제귀걸이
국보 제157호
청동거울
국보 제161호 무령왕릉에서 나온 3개의 청동거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뒷면의 거울걸이를 중심으로 4각의 구획이 있고 그 주위에 신수를 표현한
방격규구신수문경이다.
금제뒤꽃이
국보 제159호
단룡환두대도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이 칼은 왕의 시신 왼손 위치에서 발견되었으며 전체 길이가 82cm, 칼자루의 길이가 22cm이다. 고리안에는 한 마리 용머리가 조각되어 있다.
왕 금제귀걸이
국보 제156호
왕비 은제팔찌
국보 제160호 왕비(王妃)가 왼쪽 팔목에 끼었던 이 은팔찌 안쪽에는 그 제작 연유(緣由)에 대한 글씨가 새겨져 있다.
석수
국보 제162호 석수(石獸)는 왕릉(王陵)을 수호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았던 상상의 동물(動物)이다.
왕지석
국보 제163호 왕릉에 들어가는 연도 중앙에 왕비의 지석(誌石)과 함께 나란히 놓여 있었으며 삼국시대의 지석이 왕릉에서 발견된 초유의 금석문(金石文)이다.
왕 나무발받침
국보 제165호 왕의 두 발목을 오려 놓을 수 있도록, 족좌(足座)의 중간부를 W자형으로 파내었다.
왕 나무머리받침
두침은 시신의 머리를 올려 놓도록 큰나무토막의 중간부분을 U자형으로 파낸 것이다.
왕비 나무발받침
왕비의 두 발목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족좌(足座)의 중간부를 W자형으로 파내었다.
왕비 나무머리받침
국보 제164호 두침은 시신의 머리를 올려 놓도록 큰 나무토막의 중간부분을 U자형으로 파낸 것이다
금동신발
내측판, 외측판, 바닥판의 3판을 서로 붙여 만들었다.

키워드

지구온난화,   옹기,   GMO,   온돌,   GPS,   생명복제,   무령왕릉,   광우병
  • 가격2,000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09.11.22
  • 저작시기2009.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62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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