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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성서(성경)의 예언

Ⅲ. 성서(성경)의 초청
1. 구약에서의 배경
2. 신약에서의 배경

Ⅳ. 성서(성경)의 경제법

Ⅴ. 성서(성경)의 토지법

Ⅵ. 성서(성경)의 문학적 분석
1. 저자의 차원
2. 본문의 차원
3. 독자의 차원

Ⅶ. 성서(성경)와 진화

Ⅷ. 성서(성경)와 욥기서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8:21-22)이다. 조직화된 것으로부터 덜 조직화된 것으로 변화하는 것이 자연의 보편적인 성향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조직의 복잡성이 증가하는 쪽으로는 절대 변화하지 않는다. 저주 이전의 엔트로피는 에너지와 같이 증가와 감소가 평형을 이루어 보존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부패가 지배적인 성향을 이룬다.
생물학에서는 진화를 야기한다고 생각되어지는 중요한 요소로 유전자 돌연변이를 들고 있다. 그러한 변화는 해롭거나 기껏해야 중성적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배(배)세포의 고도로 조직화된 유전자배열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대에 살아있는 대부분의 생물들이 과거의 화석기록에 나타나는 가장 발전된 종을 많이 닮은 사실에서 이것이 설명된다. 또한 수많은 종들이 소멸되었고 진화론자들이 진화의 증거로 주장하는 흔적기관 및 불완전적응(어느 정도의 흔적기관 및 불완전 적응은 존재한다)이 있다는 사실도이를 증명한다.
진화론자들은, 생물계는 개방계이고 태양으로부터 상향적 진화를 가능케 할 만큼의 충분한 에너지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 진화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열역학적 방정식에 의하면 지구와 같은 개방계에 태양으로부터의열에너지가 그대로 유입되면 폐쇄계일 때보다 더 빨리 엔트로피가 증가됨이분명하기 때문에 옳지 않다.
그것을 진화라 할 수는 없겠지만, 특별한 조건하에서는 개방계의조직도가, 외부의 조직화된 에너지 또는 정보의 유입으로 잠깐 동안 증가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씨앗으로부터의 식물의 성장이나 여러 가지 건축 자재로부터의 건물의 건설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성장 과정에는 특별한 에너지변환기구뿐 아니라 씨앗의 DNA에 있는 유전 암호나 건물의 청사진 같은 지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생의 화학물로부터의 원시 세포 또는 원시 세포로부터의 복잡한 식물과 동물의 진화론적 성장에는 지시 프로그램도 없고 그것을 수행할 변환기구도 없다. 그것은 시간과 우연에만 의존하는데 시간과 우연은 사물을 파괴할 뿐이지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진화하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고 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아는 사람도 없다. 화석기록들은 진화론적 전이가 일어났음을 보이지 못하며, 과학의 기본법칙도 그것이 불가능함을 보였다. 그러나 아직도 진화론자들이 이것을 과학이라고 주장하고 증명된 사실인 양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슬픈 일이다.
Ⅷ. 성서(성경)와 욥기서
욥은 고난을 통하여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 모든 인간 문제들에 대해 지적으로 완전한 대답이란 있을 수 없다.
· 그는 도덕적으로 완전한 자라고 생각했으나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죄사함을 받고 화해를 필요로 한 죄인이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신앙을 토대로 의롭다 인정함을 받았다.
· 욥은 이제 하나님을 인격의 관계 속에서 알게 되었다.
우리는 욥기에서 제기된 3가지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자.
· 인간은 그가 지은 죄에 정비례해서 고난을 받는 것인가?
욥기는 분명히 아니라고 강조하며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신다. 어떤 사람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가지고 그 사람의 죄를 측량할 수는 없다.
· 인간은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이(꼭 축복해 주시지 않아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가? 욥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욥은 하나님을 섬겼다.
· 왜 의인들도 고난을 당하는가? 그 이유는 모른다. 또 그 이유를 알아야만 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요구에 넉넉할 뿐이다.
Ⅸ. 결론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7-40). 자기와 자기 몸을 사랑하라는 말은 자연법칙이다. 이는 동물에게도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위에 있는 하나님과 우리 곁에 있는 이웃에 대한 명령뿐이다. 이와 같은 계명의 목적은 사랑, 즉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이중의 사랑이다. 여기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것을 생각하면 우리 자신에 대한 사랑이 무시되지 아니한 것을 알 수 있다.
공정하고 거룩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사물을 평가할 때 사랑해야 할 것과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하는지를 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되 하나님을 위해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자신을 위해서 사랑해야 하며, 또한 우리는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어떤 사람을 기뻐할 때 우리가 즐기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하나님을 즐기며 그 앞에 기쁨이 있다고 기대하는 하나님께로 온 것을 기뻐하기 때문이다.
“기쁨을 얻는다.” 즉 “즐긴다는 것”은 “기쁘게 사용한다.”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을 거기서 얻으며 영원한 거처로 삼는다면, 그 때에는 우리가 그것을 즐긴다는 말이 옳다. 그리고 우리는 불변하는 최고의 선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때가 아니면 이렇게 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리스도가 왜 육신이 되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만유를 지으신 진리와 말씀이 우리 사이에 居하기 위하여 육신이 되셨지만, “주께서 나를 그의 길의 처음으로 만드셨다”(잠 8:22, 70인역) (여기서 말하는 ‘나’는 지혜를 뜻한다)라는 말씀은, 하나님께로 가려는 자들은 그 길을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의 길을 완전히 마친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려는 것 뿐 아니라, 길을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 길이 되고자 하셔서 육신을 입기로 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주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 14:6)고 하셨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김용옥 - 기독교 성서의 이해(국판), 통나무, 2007
김종서 - 두 눈으로 본 성서의 진실상(성경성서가 거짓인 1000가지 이유), 한국학연구원, 2008
대천득 - 토지와 자유: 성경적 경제관, 서울 : 도서출판 무실, 1990
마샬 D. 존슨 - 문학 장르로 본 구약신학 성서와의 만남
클라우스 베스터만 - 구약 성서의 맥, 한국, 신학 연구소, 1993
G.W.Bromiley - 킷텔단권원어사전 신약성서신학사전, 성 : 요단출판사, 1990

키워드

성경,   성서,   토지법,   경제법,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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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4.16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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