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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역사적 중요성,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인지적 예술론, 성 토마스 아퀴나스 복지이념, 성 토마스 아퀴나스 공동선 사상, 성 토마스 아퀴나스 유추에 대한 신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
1. 출생
2. 가정환경
3. 나폴리 대학에서 수학
4. 도미니코회와의 만남
5. 파리 대학에서 수학
6. 활동
7. 임종

Ⅲ.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역사적 중요성

Ⅳ.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인지적 예술론

Ⅴ.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복지이념

Ⅵ.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공동선 사상

Ⅶ.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유추에 대한 신조

참고문헌

본문내용

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곤궁한 이웃을 구하기 위하여 타인의 것을 취하여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인간의 생존권과 소유권이 충돌할 때는 생존권이 우선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오늘날 소유권 사상이 자본주의 사회에 와서 격심한 빈부의 격차를 초래하여 현대사회에 있어서 갈등과 분쟁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의 재산 중에는 자기와 자기 가족의 생계에 절대 필요한 것과, 신분에 상응하는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것과, 더 나아가서 그 이상의 잉여에 속하는 것이 있다. 물론 재화가 모든 사람의 공용으로 제공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성에 따라 질서를 밟아서 그 사용을 결정하여야 하는 것이다. 재물을 관리 분배하는 소유자와 재물의 사용을 수락 받는 자와 쌍방의 사정을 참작하여 완급(緩急)을 고려하여 최선의 방법에 의해서 최선의 용도에 충당하여야 한다. 남들은 생활유지에 필요한 것도 없는데 자신에게 필요한 이상의 재화까지를 자신을 위해서 독점해 둔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부당한 일이다. 그래서 교황 바오르 6세는 공공복지에 해를 끼치면서까지 사유재산권이 구사(驅使)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하면서 개인의 기득권과 공동체의 기본요구 사이에 충돌이 생긴다면 개인과 사회단체들의 협력을 얻어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국가 권력의 책임이라고 했다. 이러한 국가책임 아래 공동선을 구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사회보장제도라고 할 수 있는데 현대 교회도 이러한 제도를 적극 지지하고 권장하고 있다. 즉 교황 요한23세는 1961년 5월 15일에 반포한 유명한 회칙「어머니와 교사」(Mater et Magistra)에서 사회보험과 사회보장제도는 한 국가의 전체 수입을 정의와 공평의 기준에 의하여 재분배하는데 유효한 공헌을 회복하는 도구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와 같은 국민의 복지를 위한 국가의 책임은 토마스도 인정했는데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하여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정치학은 그 목적이 올바른 행동이라고 하는 실용적 기술이 되었고 그 안에서는 사회의 복지가 개인의 주장을 무시하는 것이 덕스러운 사회생활로서 규정되었다. 이러한 사회에서 법은 그 주요 형태가 평화로서 나타나는 공공의 복지를 추구하기 위하여 존재하였다. 그러므로 제왕은 공익을 확대하기 위하여 하느님으로부터 임명되었으므로 그들은 그것을 수호할 의무가 있다고 하였다. 토마스가 말하는 제왕의 책임은 오늘날 국가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공동선은 사회나 국가의 책임일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 있어서도 의무이며, 또 개인의 공동선에 대한 이해와 협조가 없이는 국가나 사회도 이를 잘 수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개인적인 공동선 수행은 자선이라는 형태로 나타났고, 초대교회 때부터 자선을 권장한 많은 교부들의 설교를 들을 수 있지만 교부들은 자선을 강조한 나머지 자선은 죄를 보상 할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는 효과를 얻는다고 했다. 그래서 자선은 그 자체로서 의무라는 면보다 공을 세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사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에 대해서 토마스는 \"이웃을 기쁘게 해 주는 것이 곧 자선이요 자선을 행함으로써 자기 죄를 보상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자선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할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선 때문에 행해야 한다고 하여 자선의 의무성 또한 강조하고 있다.
Ⅶ.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유추에 대한 신조
유추에 대한 아퀴나스의 가르침은 언어에 뜻과 성격 특히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도덕적인 언어에 그것에 대한 맹렬한 논란과 관계가 있다. 불가지론적 철학자들은 그들이 종교에 관한 글을 읽을 때 그들이 세속적인 언어에서 발견하는 의미를 그 안에서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종교적인 말은 의미가 없는 것이거나 혹은 희망적인 관측을 변질시킨 단편들이라고 일반적으로 불평해 왔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라고 말할 때 다리가 네 개이고 털이 난 짐승을 생각하며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 하면서 자연적인 생식에 의해 이 세상에 어린아이를 생기게 하는 인간임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종교적인 언어는 유추에 언어라고 단순히 주장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언어와 그것이 나타내는 사물 사이에 진정한 상응성이 있음이 나타나야 한다. 우리가 언어와 틀에 박힌 사상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을 직접보고 그 다음 우리에 언어와 생각을 평가할 수 없는 것이 이 문제를 더욱 첨예하게 만들고 있다. 성경에 작가들은 자신들이 선포한 말이 인간에 경험에 빛과 의미를 가져다 주었다고 믿고 있다. 그들에 복음은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도구다. 복음을 받은 자는 스스로 그 복음에 진리됨을 증명할 것이다. 하나의 선언이 문자적인 선언이 아니라 유추적인 언어를 사용해서 삶에 실험을 통하여 증거된 것에 의해서만 충분히 증명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말할 때 문자적 진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언어는 비유적이거나 유추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분은 이 세상에 뛰어들지만 이 세상 저 넘어에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적 경험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성격상 하나님의 진리는 인간의 말과 유한한 영상으로 굴절되고 표현되어야 하지만 의미가 담긴 용어로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참고문헌
강영계(교수) 저(2006), 토마스 아퀴나스가 들려주는 신앙 이야기, 자음과모음
장욱 저,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 동광서
정의채(1975), 토마스 아퀴나스의 有와 本質에 관하여, 가톨릭대학 신학논문 1집
편집부 저, 이재룡 역(2000), 쉽게 쓴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 가톨릭대학교출판부
A.케니, 강영계·김익현 공역(1984), 토마스 아퀴나스, 서광사
Copleston F·C. AQUINAS, 강성위 역(1982), 토마스 아퀴나스, 서울 : 성바오로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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