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의 이슬람 부흥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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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이슬람 부흥운동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2. 말레이시아의 상황
(1) 개발/근대화 이데올로기
(2) 자본주의적 개발정책
(3) 인종적 이분법

3. 대학의 `닥꽈` 운동의 출현
(1) `닥꽈`의 출현
(2) 제2세대 닥꽈운동
(3) 이후의 이슬람 학생운동 조직들과 PAS

4. 닥꽈 교육과 학교의 대응
(1) 이슬람으로의 `의식화` 과정
(2) 당국의 학생운동 탄압

5. 닥꽈 운동의 과제
(1) 사회적 양극화
(2) 여성문제
(3) `이슬람 정신`의 복원

본문내용

만드셨으며, 남성이 여성들을 부양하기 위해 재산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고답적인 해석이다. 이 구절의 핵심어는 아랍어 카왐 qawwam 인데, 이것은 '권위 (authority)', '보호자 (protector)', '담당하는 (in charge)', '부양자 (supporter)' 등으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카왐의 해석에 따라, 이 구절은 남성의 여성에 대한 우월성을 확고히 하는 증거로 쓰일 수도 있고 쓰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심지어 카왐이 '권위 (authority)'를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해도, 남성에게 이 권위가 주어진 까닭은 명백하다: 그들이 돈을 벌고 여성을 보살피기 때문이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그렇게 하듯이, 여성이 역시 돈을 벌고 가족의 생계에 이바지한다면, 남성은 더 이상 여성에 대해 권위를 갖지 못한다. 남성의 여성에 대한 우월성은 꾸란 신학으로 해결된 문제가 아니다. 일반적인 상황이 무엇이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또한, 꾸란에는 여성이 집 안에 있어야 한다거나 그들의 얼굴과 손을 가려야 한다고 규정하는 어떤 명시된 표현도 없다. 물론, 꾸란은 남편, 부모, 형제, 어린이 또는 성적 욕망을 지니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를 제외하고는, 여성들이 정숙한 복장으로 그들의 순결을 지킬 것과 장신구를 자랑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꾸란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
"그리고 예언자께서는 믿는 여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시선을 낮추고 정숙하게 행동하며, 장신구는 보이는 것만 착용하며, 베일을 뺨(일반적으로 믿듯이 얼굴이 아니라-필자) 위에 드리우며, 장신구를 내놓고 다니지 말 것이니, 단 다음 사람들은 예외이다: 그들의 남편, 아버지나 시아버지, 또는 아들이나 남편의 아들, 형제나 형제 자매의 아들, 또는 시녀나 노예, 거세한 남자 시종, 또는 여인의 나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
알라의 의도는 여성을 집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합당한 기품을 유지할 것과 도발적인 장신구를 공공연하게 자랑하지 않을 것을 요구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성적 착취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기품을 유지하고 정조를 지킨다면, 공적 영역에서 여성이 일하는 데에는 직업이 무엇이든지 아무런 제약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경우와 비교하여, 리비아의 카다피가 자국의 여성이 군에 입대할 것을 주장하는 근거를 검토한다면 흥미있을 것이다. 카다피는 심지어 제3세계의 여성을 종속시키는 것은 제국주의를 이롭게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모든 남성과 여성은 무기를 들어야 한다. 과학적이고 혁명적인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여성을 포함한 전 국민의 동원이 보증되었다. 과거의 예속과 여성 종속으로의 회귀란 없다… 우리가 서로를 마비시켜야 한다는 것은 제국주의의 이익에 부합하는 이야기이다. 만약 그 말에 따라 남성이 여성을 노예로 삼는다면, 그들은 아랍 국가가 결정적 국면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효용과 역량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말레이시아에서 여성의 닥꽈 운동이 억압적인 방식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의 자율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특수성은 인정되어야 한다. 스스로를 정숙한 여인으로 재정의하려는 여성들의 노력이 갖는 반제국주의적 의미도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또한 중요한 것은, 꾸란은 사회-정치적이고 사회-경제적인 문제에 있어서 최종 판결을 내림으로써 그 이상의 발전을 향한 문을 닫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말레이 여성의 닥꽈 운동의 의의는 인정되어야 하지만, 그 의의를 꾸란 해석으로 뒷받침하려는 시도는 반동적 이슬람 부흥운동으로의 선회일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닥꽈 운동은 교조적 여성관에 스스로 칼을 대야 한다.
(3)'이슬람 정신'의 복원
"그리고 하느님이 아닌(다른) 것에 호소하고 있는 자들을 욕하지 말라…… (6:108)"
위의 꾸란 구절이 말해 주듯이, 이슬람은 원래 관용의 종교이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이슬람 부흥운동은 인종·경제·종교적 요인이 착종된 상황에서 원래의 관용을 잃고 배타성을 띠게 되었다. 흑백논리에 기반한 이러한 배타적 이슬람 부흥운동은 원래의 목적과는 달리 기득권을 보호하는 결과를 낳는다. 경제 엘리트들, 스스로를 '믿음의 수호자'로 자처하면서 대학 안에서 명성을 쌓으려는 학자들, 예배와 희사에 충실함으로써 비리를 은폐하는 정치가들, 끊임없이 '이슬람적인 것'과 '비이슬람적인 것'의 불필요한 구분을 발명해 냄으로써 자신을 사회 지도층으로 올려 놓으려는 종교 지도자들 등, '반동적 이슬람 부흥운동'을 통해 이익을 얻는 자들은 기득권 계층이다.
말레이시아의 이슬람 부흥운동이 원래의 목표인 경제·사회 정의의 실현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슬람 부흥운동 내부의 이러한 반동적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배타적이고 반동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아래와 같은 평등과 정의를 추구하는 이슬람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때 닥꽈 운동은 현재의 문제들에서 벗어나 말레이시아의 정의를 위한 이념이 될 수 있다.
"오, 사람들이여! 그대들의 생명과 재산은 오늘과 같이, 이 달과 같이 지극히 신성하도다. 무지의 날들의 모든 악습과 관례, 과거의 이해와 관련된 모든 요구는 폐지된다… 그대들 아내들의 권리와 관련하여 알라를 두려워할지니라. 그대들은 알라의 보증으로 그녀들과 혼인하였고, 그의 법에 따라 합법적이 되었도다. 아내들은 그대들의 동반자이고 자신을 바쳐 그대들을 돕는자들이니 그녀들에게 옷과 음식을 제공해야 하며, 친절하고 관대히 대하라. 오, 사람들이여 들어라! 무슬림 한 사람 한 사람은 다른 무슬림 한 사람 한 사람의 형제이며, 모든 무슬림은 동포니라… 그러니 서로에게 불의를 행하지 말라. 오, 사람들이여! 그대들의 신은 한 분 뿐이고, 그대들의 조상도 한 사람이니 그대들은 모두 진흙으로 만들어진 아담의 후손들이니라. 그대들 가운데 신 앞에서 존경받을 자는 가장 신을 두려워하는 자이니라. 신앙심이 아니라면, 아랍인이 비아랍인보다 우월치 않고 비아랍인이 아랍인보다 우월치 않으며, 황인종이 흑인보다 우월치 않고 흑인이 황인종보다 우월치 않도다."
―'고별의 순례'에서 예언자 무함마드가 행한 마지막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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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1.23
  • 저작시기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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