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가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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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향가의 특징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향가

향가(鄕歌, 문화어: 사뇌가)는 신라 때에 불리던 민간 노래로서 보통 향찰로 기록되었다. 보통 신라 때부터 고려 초기까지의 것을 말한다.

2. 향가의 형태 및 표기

향가의 구조적 형태는 4구체, 8구체, 10구체로 나누어지며, 한자로 지은 노래도 있고, 이두로 지어진 노래도 있다. 삼국시대 때는 4구체 향가가 많았으나, 남북국 시대 전기와 고려 초기로 가면서 8구체와 10구체 향가들이 다양하게 지어졌다. 향가의 내용적 형태는 다양하며, 노동요나 민요로 추측되는 풍요, 귀신이나 액운을 막기 위한 주요(呪謠)로 부르기도 하며, 또는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고 싶어하거나,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들도 있다. 향가는 모두 한자를 빌어서 우리말을 표기한 것으로 이두(吏讀)와는 달리 각수의 가사 전체를 한자로 기록하였으므로 순수하고도 고유한 고대 한국어인 것이 주목할 점이다.

3. 명칭

향가란 명칭은 삼국시대에는 ‘우리나라 노래’란 뜻이다.

“ 釋永才性滑稽不累於物善鄕歌 ”
— 《삼국유사》, 영재 우적조(永才遇賊條)
“ 十一首之鄕歌詞淸句麗… ”
— 《균여전(均如傳)》,
“ 王素與角于魏弘通至是常入內用事伋命與大矩和尙 條集鄕歌 謂三代目… ”
— 《삼국사기》, 진성왕 2년 춘 2월조(二年春二月條)

미루어 보아, 당시 중국을 당(唐)이라 한 데 대해 신라를 향(鄕)이라 일컬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로써 생각할 때 중국의 사장(詞章)에 대해 신라의 노래를 향가라 하였을 것이다.

4. 향가의 풀이

일찍이 이 노래의 부분적인 어학적 주석은 일본인들이 시도하다가 25수 전반에 걸친 주해는 오구라 신페이가 처음으로 이루었다. 그 뒤로 양주동이 더 나은 해독을 하게 되었다. 해방 후에는 지헌영(池憲英)을 비롯한 이탁(李鐸), 김준영(金俊榮), 이숭녕(李崇寧), 김동욱(金東旭), 김선기, 서재극, 홍기문, 정렬모, 김완진 등이 계속 연구·발표하고 있다.

본문내용

습니다
다짐 깊으신 부처님께 우러러
두 손 모두어 사뢰어
원왕생 원왕생
그릴 사람 있다 사뢰고 싶습니다
야으, 이몸 남겨 두고
사십팔대만 이루실까”
14. 서동요
서동요에 관한 설화 나오는 향가로, 설화에는 서동(백제 무왕의 아명)이 신라 진평왕의 선화공주와 인연을 맺기 위해 일부러 퍼뜨린 노래라고 나와 있다.
15. 모죽지랑가
신라 효소왕 때에 만들어진 8구체 향가로서, 화랑가이다. 화랑 죽지랑의 낭도였던 득오곡(得烏谷, 또는 득오랑)이, 그의 스승 죽지랑을 사모하고 찬양하여 지은 8구체 향가로서, 노래의 주인공은 화랑 죽지랑이므로 노래의 이름이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이며, 일명 득오곡모랑가(得烏谷慕郞歌)라고도 부른다. 죽지랑은 김유신(金庾信)의 부원수로서 삼국 통일에 공이 컸다. 득오곡은 그의 낭도로서 풍류와 도술로 이름이 높았다. 노래는 이두문으로 되어 있다.
16. 혜성가
혜성가(彗星歌)는 신라 진평왕 때 융천사(融天師)가 지은 10구체 향가이며, 혜성이 심대성(心大星)을 범하였으므로 이 노래로써 물리쳤다는 설화가 전한다.
17. 풍요
풍요(風謠)는 신라 선덕여왕 때 지어진 4구체 향가로서 지은이를 알 수 없다. 양지(良志)가 영묘사(靈廟寺)의 장육존상(丈六尊像)을 만들 때 부역 온 성내 남녀가 불렀다는 민요이며, 일명 양지사석가(良志使錫歌)라고도 한다.
18. 원가
원가(怨歌)는 신라 효성왕 때 신충(信忠)이 지은 8구체 향가로서, 연군가(戀君歌)이다. 효성왕이 등극 전 신충과 잣나무를 두고 후일을 언약하였으나, 등극 후 그 일을 잊으매 이 노래를 지어 잣나무에 붙이니 그 나무가 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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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0.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0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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