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들의 삶 [고대 수학자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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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수학자들의 삶 [고대 수학자 생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머 리 말

▲본 문

■고 대

∙탈레스

∙아르키메데스

∙유클리드

■중 세

∙바스카라

∙피보나치

■근 대

∙뉴튼

∙가우스

▲맺 음 말

본문내용

소개한 볼테르라고도 한다. 뉴턴의 동역학연구는 1664년경 데카르트의 《철학원리》, 갈릴레이의 《신과학대화》 등의 연구에서 시작되었다. 데카르트호이겐스랜훅 등에 의해 확립된 탄성충돌론의 성과에 따라 비탄성충돌의 이론적 연구로 나아갔으며, 계속하여 구에 내접하는 다각형의 각 꼭지점에서 반발하는 운동의 극한으로서 원운동을 들어 원심력의 이해로 나아가, 이들과 케플러의 제 3 법칙을 결합하여 역제곱법칙의 도출에 성공했다.
2.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1777~1855)
1)생애 및 일화
어릴 적 가우스는 양친과 그의 친구들을 졸라서 알파벳의 발음을 익혀 혼자서 읽는 법을 습득했다. 알파벳과 함께 아라비아 숫자 1,2,3,4,....의 뜻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되는데 그것도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다. 후년에 가서 그는 "나는 말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계산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는 말을 자주 농담으로 했다고 한다. 가우스가 신동임을 전해주는 이야기가 또 있다. 초등학교 때 1부터 100까지 더하도록 시키자 다른 학생은 열심히 하고 있는데 팔짱을 낀 채 앉아 있는 가우스를 본 선생님은 나이는 제일 어리지만 학급에 둔한 놈이 한 놈 들어 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석판을 보니 가우스의 석판에는 숫자가 하나밖에 써 있지 않았다. 가우스는 후에 그 하나 뿐인 숫자가 바른 답이었고 다른 학생 것은 모두 틀렸다는 것이다. 다른 학생들이 1+2+3+…9+…를 계산하는 동안 가우스는 1+100, 2+99, 3+98, …, 50+51와 같은 식으로 하여 101*50=5050의 정답을 구했던 것이다. .아르키메데스, 뉴턴과 더불어 3대 수학자로 꼽히는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 1777-1857)는 고집세고 난폭한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그가 수학의 왕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 데는 이런 아버지로부터 아들을 보호해주고 북돋아준 어머니의 힘이 컸다. 가우스의 어머니는 아들에게서 어떤 위대한 것이 생겨 나온다는 희망과 기대를 갖고 있었다. 마치 에디슨의 어머니처럼. 또, 가우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외삼촌인 프리드리히가 있다. 그는 베짜는 일을 직업으로 했지만 아주 총명하고 온화한 사람이었다. 그는 누님의 아들에게서 자기와 닮은 성향을 발견해내고는 사물을 꿰뚫어 보는 방법을 가르치는 등 소년의 머리를 단련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였다고 한다.
10세 때, 또 다시 수학 시간에 그의 재능을 발휘한 가우스에게 뷰트너라는 그의 선생은 자기 돈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학 교과서를 사다 주었다. 그러나 가우스는 한꺼번에 이 책을 읽어버렸다. 뷰트너 혼자로는 이 어린 천재를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그의 조수 요한 마르틴 바르텔스는 수학에 정열을 가지고 있는 17세의 청년이었다. 바르텔스와 가우스 사이에 따뜻한 우정이 자라게 되었고, 이것은 바르텔스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함께 공부했다. 어려운 문제는 바로 서로 도와가며 풀고, 수학 책을 같이 보면서 그 안에 있는 것들의 증명을 자꾸 해나갔다고 한다.
가우스가 14세가 되자 바르텔스는 가우스를 평생의 후견인인 브라운 슈바이크 공작에게 소개시켜 주었고, 가우스는 이 후 학비와 생활비 걱정 없이 수학에 정진하게 되었다.
수학의 왕이라는 가우스는 이처럼 타고난 재능과 그의 재능을 아낀 주변 사람들의 보살핌으로 키워진 것이다.
3) 업적
그의 업적은 현대수학과 이론 물리학 외에, 오늘날의 과학 기술 분야의 발전에도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 브란시마이크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불과 10세때 등차 급수의 합을 구하는 공식을 알아내어 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한다. 나중에 브린시바이크 공의 도움으로 괴딩겐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학생시절인 19세때 유클리드 이래 2000년간 삼각자와 컴퍼스만으로는 그릴 수 없다고 생각해 왔던 정 17각형을 그릴 수 있음을 증명해, 대수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또,최소 제곱수를 발견하여 복소수평면을 발표하였으며, 1799년에는 이른바 대수학의 기본 정리를 증명함으로써 학위를 받았다. 그는 정 14각형 그리는 방법을 정수론 에서 얻었는데, '수학은 모든 과학의 여왕이며, 정수론은 수학의 여왕이다.' 라고 말함으로써, 정수론을 가장 높이 평가하였다. 또한1801년에는 <수론연구> 를 발표하여 정수론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는 획기적인 업적을 쌓았다. 1801년 이후로는 괴팅겐 대학 교수로 평생을 보냈는데, 그는 정수론 이외에도 또한 곡면론, 허수론, 방정식론 등을 깊이 연구해 수학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 그리고 타원함수의 발견과 최초로 완전한 정의를 내린 복소수등은 그가 죽은 후, 그의 유고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의 증명은 이전의 뉴우튼, 오일러 시대의 수학과 그 이후의 수학을 수학 사상적으로 구분하게 되었다. 복소수란 말도 그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자기 유도의 단위인 '가우스'란 말도 그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3.맺음말
수학이라는 왕국은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불 수 있는’사람들, 즉 수학적인 직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 힘으로‘불 수 없는’같은 시대의 사람들에 비해서 훌륭한 우위의 입장이 될 수 있다. 그들이 수학자가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 느끼는 감각은 제트기의 조종사가 지상 근무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 느끼는 감각이나 예전부터 영국이 유럽대륙의 사람들에 대해서 느끼는 감각과 같다고 한다.
수학은 일종의 지능의 요가와 같아서 요구가 많고 엄밀하고 금욕적이다. 수학자라면, 그 사람이 진정한 수학자라면, 그러한 기술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 많은 투자를 하게된다. 그 결과로 수학자의 머리 속에는 달라진 개념과 진기한 관련성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수학자들의 삶을 엿보면서 같은 인간이라도 어딘가 색다른 데가 있는 종족이 되어버린다는 그들 수학자들의 삶을 통해서 어느 하나에 빠져버리면 헤어나올 수 없는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열정이 곧 삶이자 일 이였던 것이다.
※ 참 고 문 헌 : 이태규(1989), 이야기 수학사, 백산출판사
강후경(2000), 생활수학, 형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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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9.23
  • 저작시기2014.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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