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과 농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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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머리말
Ⅱ노동자운동
1.노동운동
1)노동운동의 시초
2)일제치하 노동자들의 처참한 삶
3)노동운동에 관한 이념들
2.노동운동의 사례들
1)여성 노동자들의 파업
2)멈춰 선 서울의 전차
3)인쇄노동자들의 파업
4)원산 총파업
5)서울에서의 이재유그룹의 운동
3.1930년대 이후 노동운동
Ⅲ농민운동
1.1920년대 농민운동
2.1930년대 농민운동
3.1940년대 농민운동
Ⅳ맺음말
Ⅴ참고문헌

본문내용

식민지체제 내에서 변화와 발전을 도모하는 어쩌면 개량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천도교와 기독교 등 종교단체, 언론기관 그리고 협동조합운동사가 주축을 이룬 이 운동은 농민대중의 실력을 양성하고 의식을 개조하려는 목표를 가졌다. 다시 말하면, 공동경작계, 소비조합, 구매조합, 협동조합 등 각종 계와 조합을 설치, 운영하고 문맹퇴치운동을 통해 농민층의 권익을 보호하고, 농촌계몽, 생활개선, 농사개량을 통하여 농민의 복지향상을 도모하였다.
일제강점기 농민운동은 이 같은 변화과정을 거치면서 경제 권익투쟁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사회체계를 혁신적으로 바꾸려는 노력과 민족의 독립을 지향하는 민족해방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해방 이후에 박헌영의 재건 조선공산당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운동세력의 신국가 건설의 방향과 내용 그리고 이외에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건국강령 등 여러 민족세력의 신 국가 건설 방향을 보면 일제강점기 농민운동을 통하여 농민대중들이 요구한 사항들이 반영된 부분도 많았다. 즉, 한국민족의 절대 다수인 농민대중이 농민운동을 통하여 독립운동전선에 나섰던 역사적 경험인 만큼 이 사항들이 해방이후 민족국가 건설의 원동력이 될 요인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3. 1940년대 농민운동
1938년에 일제말기 전시체제를 총괄하는 가장 기본적인 골격을 이루고 있으며, 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인력과 물자의 동원을 위해 제정 공포한 국가총동원법이 실시되면서 소작쟁의는 1939년으로 끝이 났다. 특히 [국가총동원법] 정부는 전시를 당하여 국가총동원상 필요할 때는 칙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가격, 운송임, 보관료, 보험료, 임대료, 가공임, 수선료 기타 재산의 급부에 관하여 필요한 명령을 발할 수 있다.-일제하 농민운동사, 조동걸, 282~285쪽
제19조에 의거해 1939년 12월 18일 공포한 [소작료통제령]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소작관계를 통제하고 농산물의 물동량을 파악하여 효과적으로 농산물을 수탈하고 지주들의 이익을 보호하여 전시체제 아래서 군수식량을 확보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이 법안에 따라 소작문제를 쟁의의 대상으로 할 수 없기에 소작쟁의는 이로서 막을 내리고 말았다. 더군다나 1941년 태평양전쟁을 앞두고 더욱 강력한 전시 통제체제가 강요되면서, 농촌에 비밀 조직조차도 발붙일 곳이 없게 된다. 물론 학교에는 비밀 조직이 있어 반전 항쟁을 계속 하였지만, 그것은 학교라는 명분의 둘레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고 이외에 다른 농민단체의 활동은 불가능해졌다.
개별적인 항쟁 또한 징용과 징병 속에 주춤해졌다. 하지만 완전이 농민항쟁의 숨이 끊어진 것은 아니고 다만 표현방식이 달라졌다. 예를 들어 공출에 항거하는 농민항쟁은 곡물의 은닉, 농경의 포기, 집하물에 대한 방화, 공출 독려원에 대한 구타 등으로 나타났고 가혹한 미곡 공출에 잡곡 농사로 항거하기도 하였다. 징용에 대해서는 도주로 반대 의지를 표현하기도 했지만 일본 북해도나 만주로 끌려가 군수공장이나 탄광에서 적극적인 방법으로 항쟁하는 경우도 많았다. 여자정신대에 끌려가는 여인의 경우에는 기차에서 투신자살하거나 뒷산에서 목을 매 죽음으로서 항쟁을 한 경우도 있었다. 이렇듯, 때때로 널리 흩어져 발생한 항쟁들이 종전기 농민항쟁의 특징인데, 누차 강조하다시피 일제강점기 농민 운동은 독립운동의 성격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제가 [국가총동원법] 과 [소작료통제령]을 공포하고 1940년의 국민총력 조선연맹을 결성하여 소작쟁의를 비롯한 모든 농민운동을 전면적으로 봉쇄했던 것이다.
Ⅳ. 맺음말
지금까지 몇 가지 사례를 언급하며 소개한 노동 운동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농민 운동을 포함해 살펴보았다. 이 당시 노동자 및 농민 운동이 단순한 자신들의 권리 투쟁의 목적 이외에 항일 정신까지 내포되어 있었다는 점은 앞의 글에서 앞에 글에서 충분히 설명이 되었기에, 더 이상의 언급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앞의 파업에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아무리 노동자들이 파업에 성공 했다 하더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결국 자본가 측은 요구를 들어주기 이전 상태로 되돌리고 노동자들의 참혹한 현실에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조용히 연대하고 자각하며 법이 허용할 때 조합으로 모이는 것은 서로 단결하는 큰 힘이 될 것이다. 권력을 갖고 주인이 될 몇 명의 게으른 자와 수 백만의 노동자가 대면할 그 날이 올 것이다. 진실과 정의의 기지개는 지금 온 하늘에 가득하고 4월의 태양이 대지를 덥히며 영광의 숨결을 불어 넣는다. 모든 곳에서 씨앗은 부풀고, 커져서 , 싹트고 열기의 빛을 갈구한다. 정열의 범람은 조용한 목소리와 함께 흐르고 그 싹의 외침은 점점 더 분명하게 땅을 파고 들듯이 동지들을 경각시키며 거대한 만남으로 세상을 뒤덮는다.>
위 대사는 프랑스 탄광촌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그린 영화 \"제르미날\"에서 파업을 주도했던 한 노동자가 파업 실패 후 떠나면서 남긴 마지막 대사다. 이 영화에서도 물론, 주인공이 탄광촌 노동자들을 선동해 파업을 시행해 실패한 후 모든 것을 잃고 파업에 대한 회의감과 무기력함을 보여주었지만 무언가 메시지를 전하는 듯한 저 마지막 대사에 대해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일제 시대 당시 노동자들도 자본가 측이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 거라는 희망을 전혀 가지지 않은 채로 파업에 임했을 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들은 저 대사가 암시하는 것처럼 자본가들에 대한 기대가 아닌 저런 혁명의 바람이 몰아쳐 바뀔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투쟁에 임했을 지도 모른다. 조금 더 확대해 생각하면 그들은 해방 후에도 후손들에게 그러한 정신의 흐름을 이어주어 현대 우리나라가 민주화를 어느 정도 이룰 수 있는 기본적 틀을 마련해 준 것일 것이다.
Ⅴ 참고문헌
한국노동운동사, 안재성, 삶이 보이는 창 2008
박준성의 노동자 역사 이야기, 박준성, 이후 2009
한국독립운동의역사 농민운동, 김용달,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한국독립운동의역사 노동운동, 김경일,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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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6.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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