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자를 찾지 못하자 낙담한 자로는 위나라의 수도로 돌아갔다. 공회를 구하려던 자로는 결국 죽고 말았다.
노나라로 가는 귀국길에 오른 공자는 은퇴할 생각을 가졌다. 노나라에 도착한 공자는 계강자와 애공의 극진한 대우를 받고 고향 사
|
- 페이지 6페이지
- 가격 700원
- 등록일 2003.11.04
- 파일종류 한글(hwp)
- 참고문헌 있음
- 최근 2주 판매 이력 없음
|
|
공자가 노나라 애공을 알현하니 애공이 말했다.
有語寡人曰, 爲國家者, 爲之堂上而已矣. 寡人以爲迂言也.
과인에게 말하길 국가를 다스림은 마루 위에서 할 뿐이라고 하니, 저는 그 말이 먼 말이라고 여겨집니다.
孔子曰, 此非迂言也. 丘聞之
|
- 페이지 6페이지
- 가격 1,000원
- 등록일 2006.07.29
- 파일종류 한글(hwp)
- 참고문헌 있음
- 최근 2주 판매 이력 없음
|
|
공자는 노 애공(哀公) 16년(B. C 479) 74세로 서거했다.
①몽전양영(夢奠兩楹)- 꿈에 두기둥 사이에서 전을 올리다.
▶공자가 병들어 자공이 찾아왔다. 공자는 지팡이를 짚고 문간에 서성거리면서 노래하길 "태산(泰山)이 무너지려는가? 대들보가
|
- 페이지 7페이지
- 가격 1,000원
- 등록일 2015.10.20
- 파일종류 한글(hwp)
- 참고문헌 없음
- 최근 2주 판매 이력 없음
|
|
과 자리를 함께 하다)
노나라 애공이 관에서 묵을 때 공자가 손님의 계단(賓階)을 통해 오르자 공이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정치를 물었다. 공자가 대답했다.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은 백성을 잘 살게 하고 또 오래 살게 하는 것입니다. 노역
|
- 페이지 10페이지
- 가격 2,300원
- 등록일 2014.06.30
- 파일종류 한글(hwp)
- 참고문헌 없음
- 최근 2주 판매 이력 없음
|
|
애공이 문왈 하위즉민복이니까 공자대왈 거직조제왕 이면 즉민복하고
擧枉조諸直이면 則民不服이니라.
거왕조제직이면 즉민불복이니라.
- 애공이 묻기를, “어떻게 하면 백성의 마음까지 따르게 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하기를, “곧
|
- 페이지 10페이지
- 가격 1,000원
- 등록일 2006.08.17
- 파일종류 한글(hwp)
- 참고문헌 있음
- 최근 2주 판매 이력 없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