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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윤, 『해동역사』
이긍익, 『연려실기술』
유홍열, 「고려의 원에 대한 공녀」, 『진단학보』18, 1957.
조좌호, 「이조 대명 공녀고」, 『황의돈고희기념사학논총』, 1960.
김갑주, 「병자호란 후 대청공녀고」, 『동국사학』14, 1980.
이용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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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윤·한진서의 『해동역사』와 안정복의 『동사강목』을 통해 살펴보았다.
중세사학은 經史一體·中華史觀·왕실중심의 서술·정통성의 명분론 등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후기의 사학이 근대사학을 배태하고 있었다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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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윤으로 계승되었다. 정약용은 고조선의 중심지는 한반도 안에 있었으며, 뒤에 영토를 확장하여 요서를 점령하고 연과 국경을 접했다고 보았다. 따라서 패수를 압록강으로 보았으며, 한사군도 진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압록강 남쪽에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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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윤에 의해서도 그 태도는 계승되었다.
안정복이 저술한 동사강목은 춘추적·강목적인 사관에 의해서 한국사의 계통을 분명히 하였고 이긍익의 저술서인 연려실기술은 문헌적·실증적인 사안으로 조선시대의 정치·문화를 정리해주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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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적 역사관의 발달
조선 후기에는 자주적인 역사관이 발달하면서 우리의 역사를 탐구하는 국학이 매우 발달하였다.
≪ 사 진 ≫
[유득공이 저술한 발해고]
조선 후기에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 바탕을 둔 성리학에 반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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