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사]조선전기문학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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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문학사]조선전기문학의 특징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조선전기 문학의 특징
2. 1. 조선전기 사장파와 도학파의 문학논쟁
2. 2. 조선전기의 한시문학
2. 3. 조선전기의 시조문학
2 .4. 조선시대 시가의 사적전개(史的展開)

3. 결론

본문내용

가 곤란하여 2구나 4구나 6구, 8구 등으로 잘라 각기 다른 자로 압운 하는 경우가 있다. 즉 시가 소절로 분단되어 각 소절마다 운이 바뀌는 것을 환운(換韻)이라 하고 제각기 같은 운으로 이루어진 소절을 해(解)라 한다. 압운 되어 있는 글자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 글자의 음을 읽어보면 되나 우리에게는 좀 어렵겠죠. 더욱이 고어인 경우에는 더 힘들겠고. 한자의 음에는 글자마다 고저가 있는데 그것이 사성(四聲)이다. 평성(平聖)은 고저가 없이 평탄하게 소리가 나는 것이고 상성(上聲)이란 끝이 올라가는 것. 거성(去聲)이란 어미가 내려가는 것 입성(入聲)이란 끝이 막혀버리는 것이다. 이사성 가운데 평성을 평(平) 상성, 거성, 입성을 측(仄)이라 하여 이를 평측이라 한다. 한시에서는 이를 잘 배열하여 중국말로 읽을 때 리드미컬한 느낌을 받게 한다.
한시의 형식은 크게 고체시와 근체시로 나눈다. 고체시는 고시(4언,5언,7언)와 악부로 나뉘게 되는데 고시는 형식에 제한이 없으며 압운 규정도 덜 엄격하다. 악부는 1구의 자수의 제한이 없고 길고 짧은 구절이 혼합되어 있다. 근체시는 절구(5언,7언)와 율시(5언,7언)그리고 배율(5언,7언)로 나뉜다. 절구는 기승전결 4구로 되어있으며 5언의 경우 제2구와 4구, 7언의 경우 제 1구와 2구 4구에 압운 되어 있는게 원칙이다. 율시는 2구씩 합쳐 수연, 함연, 경연, 미연(또는 기연, 전연, 후연, 절연)이라 하여 모두 8구로 되어있다. 5언의 경우 2,4,6,8구 7언은 1,2,4,6,8구의 끝자에 압운 되어 있는 것이 원칙이다. 수경함미의 구성은 절구의 기승전결에 준 한다. 함연(3,4구)과 경연(5,6구)의 부분은 각기 대구를 이룬다. 배율은 10구 이상으로 되었고 율시의 형식에 준 한다.
조선 전반기를 통하여 한문학이 주류를 이루고있는 것은 여전하였다. 그 중에서도 한시가 주류중의 주류였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조선 전반기 한문학, 한시문학의 가장 특징적인 점이라면 그것이 사대부적문학이었다는 것이다. 옛 글에 <독서왈사 종정왈대부>라는 말이 있다. 그 뜻인즉 사대부란 독서인이라는 것이다. 조선에서는 주로 벼슬에서 떨어진, 또는 벼슬길로 나아간 관리중심의 유교적 지식계급을 두고 사대부라 하였다. 헌데 다 같은 사대부들이었지만 그들의 사회적 처지와 생활적 자세는 서로 달랐다. 사대부적문학 역시 그 담당자들인 사대부들의 부동한 사회적 처지와 생활적 자세와 따라 그 성격도 서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3. 결론
조선초부터 사장이 억제되고 경술이 장려되어야 한다는 조정의 표방에 장려되어야 한다는 조정의 표방에는 변화가 없었음에도 세조조 이후 사실상 사장을 선호하는 풍조가 유행하였다. 인재등용의 관문인 관료제도 주된 원인이 있다 하겠지만, 성종의 학문적 취향은 이를 더욱 조장하였다. 단종조 이후 여러 차례의 정변을 겪는 과정에서 굳건하게 뿌리내린 훈구관료들은 이에 적극 호응하였고, 반대로 신진관료들은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하였다. 문학논쟁은 이런데서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시장파든 도학파 문인이든 문장은 어디까지나 도를 담아야 한다는 논리는 조선초의 문인들과 다른 점이 없다. 또한 도학파들의 지치주의에 입각한 문학관 역시 경세적 효용성을 중시한 견해로 기치에 있어선 별다른 바가 없다.
중종조 사장파와 도학파의 문학 논쟁은 이미 성종조의 관학파와 신진사림파와의 대립에서 비롯한 것이다. 성현과 김종직의 문학 논쟁으로 대표되는 성종조의 경향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논리의 전개를 마련하였다. 특히 성현의 주장은 확실히 하나의 이론으로 성립되고, 나름대로 문학의 다양성, 독자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다음 시기인 중종조에 이르러서는 사림파 문인들이 보다 이론적으로 철저해진데 비하여 훈구파는 이렇다 할 이론을 마련하지 못하였다. 훈구관료들의 사장 옹호의 구실은 대개 공리주의적 문학관에서도 지엽적 문제인 사대외교상의 필요성만을 강조한 것이었으므로 논리적 근거가 약하였다.
도학파에서는 사장의 무용론을 들어 논박하였지만 사장파에 있어서는 과격하게 도학의 무가치를 내세우지 못하였다. 단지 도학도 존중하여야 하겠지만 사장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실로 온건한 논조에 머물고 있다. 그만큼 사장파는 이론적 무장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수동적으로 대처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사장파와 도학파의 논쟁이 사장파에 있어서 전혀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실로 조선 초기의 사장학이라면 음풍농월 식의 내용이었고 내용면에 있어서 이렇다 할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도학파의 대립된 위치에서 논쟁을 해나감으로써 수정된 노선을 표방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도학을 존중하되 사장도 무시할 수 없다는 논리가 그 같은 과정에서 도출되었다. 이 논리에 이미 도학을 전제한 만큼 사장학 그 자체가 어느 정도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건을 내포한 것이다. 이야말로 사장파의 수정노선인 것이다. 결국 사장파는 도학파가 대두함에 딸라 저절로 한 학파를 이루게 되었고 그 영향을 충분히 받아 사장학 자체에서도 이전의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 좀 더 깊이 사상적인 내용을 담아야 함을 절실히 느낀 것이다. 여기서 사장학은 객관적으로 발전을 기대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볼 때, 도학파와 사장파의 대립은 정치적 사회적으로는 혼란을 초래했을지라도 문학사적 측면에서는 독자적 의의를 인정받는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고 본다. 도문일치의 문학 사상이 주조를 이루어 온 조선초기의 입장과는 달리 도학에서 분리된 문학이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그 가치를 인식 받게 되었으며, 동시에 대치적으로 존재한 도학의 감시 하에서 엄격한 비평과 함께 나름대로의 존재 의미를 찾으려 했던 것이다. 이 결과 문학이 사상적 내용을 갖게 되었으며, 부화함에서 벗어나 진실성을 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참 고 문 헌
김학성, 고전시가론, 새문사, 1984. 5
이병주, 고전의 산책, 민족문화문고 간행회, 1985. 9
이종산, 이상보 외 6인, 국문학개론, 교학사 1986. 2
정병욱, 한국 고전 시가론, 신구문화사, 1996. 4
홍순석, 한국 고전 문학의 이해, 한국문화사, 199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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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5.09
  • 저작시기2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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