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통합론과북한문학 월북작가 박태원과 정지용문학의 존재방식(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고, 북한문학사에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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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화통합론과북한문학 월북작가 박태원과 정지용문학의 존재방식(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고, 북한문학사에서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문화통합론과북한문학

월북작가 박태원과 정지용문학의 존재방식(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고, 북한문학사에서의 위상평가에 대해서도 비교분석해 보시오. (단, 반드시 ‘논문의 형식’을 취하고, 본문만 7쪽 이상을 작성하여야 하며, 각주를 꼭 제시해야 함./상업자료나 동료의 과제를 표절할 경우, 0점 처리됨/인터넷 자료 활용 0점 처리됨)



목차

서론

본론
1, 박태원의 문학 세계
2, 천변풍경에 관하여
3, 1930년대 후반 박태원의 소설
4, 정지용의 시 세계
5, 독특성과 청아함
6, 동양사상으로의 귀의
7, 의혹에 찬 최후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감성으로 대상을 감각화하여 이미지로써 제시하고 있다.
둘째, 지용은 일본에서 귀국한 것을 전후로 카톨릭에 귀의했고, 이후 『카톨릭 청년』지의 편집인으로 활동하면서 여러 신앙시들을 썼다. 이러한 작품들은 주로『정지용 시집』의 4부에 실려 있는 것으로, 앞의 모더니즘 계열의 시나 뒤의 산수시와는 달리 종교적인 관념이 시에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사물시가 아닌 관념시를 이룬다. 그는 산문을 통해서도 신앙이 시인에게 미치는 정신적인 영향에 대하여 역설한다. 그는 주로 카톨릭에서의 절대자를 찬양하며 죽음에 대하여 초월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다. 물론 이시기에는 이전과 같은 예민한 감각을 필요로 하는, 시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와 시도들은 이루어 지지 않는다.
송욱이나 김윤식 등은 지용의 종교시는 시적 형상화가 부족하여 관념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구조적 밀도력이 부족하며, 그의 시형식이 또한 종교라는 내용을 담기에는 부족한 것으로 보아 실패한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그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탐구를 통하여 자연회귀 경향의 후기시로 이행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셋째, 종교시를 거쳐 동양정신을 담은 산수시의 경지에 이른 작품들은 주로 『백록담』시집에 실려 있다. 이 시기의 작품들에는 이전의 바다 대신 산이 주로 등장하고, 부동과 정적의 공간에서 시적 화자는 그곳에 묻혀 자연과 일체가 되어 있거나 그것을 관조하고 있다.
지용은 『백록담』시기에 와서는 무욕청정한 우리 산의 세계에 귀의하려 함으로써, 그동안 그의 의식을 지배해 온 상실의식과 일제 말기의 정신적 고통을 초극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시에 의미를 부여하기 꺼렸던 그가 종교시에서 반성을 시도했으나 다시 돌아가게 된 곳이 자연이다. 이러한 시에서 자연은 너무 신비로운 곳으로, 심지어는 시간이 배제된 공간으로, 부동과 정적의 공간으로 그려져 시인은 그곳에서 넋을 잃고 하나가 된 삶을 노래했다.
그 세계는 人間事 · 世俗事에서 벗어난 현실이탈의 자리였다. 그렇게 현실과 절연된 상태에서 순수의 세계를 추구한 한계는 있지만 당시의 상황 속에서 그러한 순수와 무욕의 정신세계를 추구한 것은 그 나름의 정신사적 의의를 갖는 일이다. 그것은 현실 대결로 나아가지는 못하지만 현실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확보하게 된다. 특히 정지용의 시는 생경한 관념의 표백이 아니라 정경의 함축을 통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정신세계를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한국시의 내면을 풍요롭게 했을 뿐 아니라 방법상에서도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일제 강점기의 시창작 공간에서 이러한 思惟와 표현의 유려한 결합을 보여준 시인은 매우 드물었다. 정지용의 시는 그러한 문학사적 위상에서 더욱 생생한 빛을 발한다 하겠다.
7, 의혹에 찬 최후
평양에서 열린 2001년 8.15 평양축전에 참석했던 남한 시인 도종환 씨는 27일 '북한의 문학평론가인 조정호 씨가 정시인이 북으로 후퇴하던 중에 비행기의 기총소사에 맞아 숨졌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말해 남한 언론들이 이를 보도하고 있다. 북한의 조정호씨 말에 따르면 북한의 수필가 석인해로부터 정시인과 북으로 후퇴하던 중에 비행기 공습이 있었으며 정시인과 함께 몸을 숨겼는데 잠시 후 안보여서 찾아봤더니 죽어있었다는 것이며 그래서 바로 그 자리에 묻어주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었다. 조씨는 정지용 시인의 사망시기와 장소에 대해서는 전쟁초기는 아니고 전쟁이 한창일 때이며 장소는 생각이 날듯 말듯한데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도종환 시인은 전했다. 이번 조정호 씨의 얘기는 그 동안 알려진 대로 전쟁초기 남북과정에서 바로 죽었다거나 미군에 의해 처형됐다는 주장과 달라 주목을 받고 있고 또 최초의 목격자 증언으로 그 신빙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2003년 문학평론가 박태상도 정지용이 납북되던 중 1950년 9월 25일 미군의 동두천 폭격에 휘말려 소요산에서 폭사하였다는 내용의 자료를 공개하여 정지용이 실제 납북되어 북조선에서 활동하였는가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단, 박태상이 공개한 자료는 북조선 언론 자료에 기초한 것이어서 남한에서는 신빙성을 크게 인정받지 못하였고, 현재까지 정지용의 정확한 사망 일자나 원인에 대해서는 확실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결론
193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박태원 소설에서 통속적 성향이 의도적으로, 그리고 매우 뚜렷하게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지는 학자가 적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박태원 소설 연구들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천변풍경 을 중심으로 나타난 서술기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박태원 소설의 통속화가 그의 기법적 관심에서 야기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이에 본고는 그동안 ‘모랄의 부재’로 규정되면서 하나의 타락으로 여겨졌던 박태원의 1930년대 후반기 작품을 1930년대 전체 작품과의 관계 속에서 조망하고 그것을 박태원 문학사에 복원함으로써, 그의 1930년대 작품들이 지니는 문학사적 의미를 되짚어보았다.
여기에 정지용은 시작 생애의 전반에 걸쳐 정지용 시의 본질을 형성하고 있었던 바탕은 순수시 지향이었으며, 서양적이기 보다는 동양적인 것이었다. 그는 동양적 바탕에 서양의 방법이나 감수성을 표나지 않게 조화시킴으로서, 시적 탄력과 미적 가치를 획득했다. 그러므로 정지용 시의 가장 큰 긍정성은 바로 이런 측면, 즉 정지용 자신을 통해서 동양적인 바탕에 서양적인 방법을 아무 이질감이 없도록 용해하여 성공시킨 성숙된 역량과 모범을 보여준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민요조로 흐르거나 전통적 정서에 집착하거나, 또 지나치게 서구문명의 피상적 이해에 머물렀던, 양극단적 한계는 정지용을 통해서 비로소 새로운 지향점을 찾게 되었다. 단지 그의 시에 이와 같은 긍정성이 당대의 민족적 삶의 문제에 좀 더 투철하게 천착해 들어가지 못한 것은 그의 시가 가진 한계라 할 것이다.
참고문헌
박태상, 『박태원의 삶과 문학』, 한국문화사, 2017./
김진석, 『한국모더니즘 소설연구』, 국학자료원, 2015./
방민호 외, 『박태원 문학연구의 재인식』, 예옥, 2010. /
정현숙,『박태원문학연구』,국학자료원,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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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7.03.31
  • 저작시기20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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