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 5학년 - 2 절제하는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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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아리스토텔레스 - 5학년 - 2 절제하는 생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이론들
2. 이론과 관련된 경험 사례
3. 도덕 교과서에서의 지도방안
<같은 가방을 4년째 쓰고 있는 박지성>

본문내용

려지지 않았던 에피소드들을 책을 통해 알아본다.
잘 알려진 것처럼 수원공고 졸업을 앞둔 고교 시절까지 박지성은 무명의 2류 선수였다. 초등학교 시절, 이동국 선수에 이어 제5 회 ‘차범근 어린이 축구상’까지 받았지만, 왜소한 체격의 그를 눈 여겨 보는 팀은 없었다. K리그 입단을 위해 수원 삼성 2군에 테스트를 받기도 했고, 대학팀에 들어가기 위해 서울의 웬만한 대학과 지방대학과도 접촉했지만 전부 퇴짜를 받았다. 그러다 겨 우 진학한 학교가 명지대. 입학하기로 했던 10명의 신입생 가운 데 1명이 다른 팀으로 가는 바람에 빈자리를 메울 선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기로 한 해 겨울, 명지대 축구부에 합류해 울산에서 합숙훈련을 하던 중 박지성에게 행운이 찾아온다. 같은 울산에서 합숙 중이던 시드니 올림픽 대표 팀과 연습경기 중 허정무 감독의 눈에 든 것이다. 그 뒤 박지성은 시드니 올림픽 대표, 일본 J리그 교토 퍼플상가 입단, 2002 한일월드컵 대표 팀 등을 거치며 유럽으로 진출한다. 무명이었던 그가 불 과 몇 년 만에 앞서 이름이 알려진 빼어난 선수를 제치고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선수로 자란 이유는 무엇일까. 적어도 책에 따르면 가장 큰 동력은 고지식할 정도로 매달린 연습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창 시절 축구하는 내내 나는 왜소한 체격 때문에 컴플렉스에 시달려야 했다. 체격이 문제가 된다면 기술로 승부하자는 생각 이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는지 한순간도 공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교 때까지 축구공은 내 신체의 일부분이었다. 꼭 운동장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공 만 있으면 때로는 집주변이, 혹은 내 방이 훈련장이었다. 공 떨어뜨리지 않고 무릎과 발등으로 트래핑하며 집 주변 돌기, 방안에 서 헤딩으로 공 컨트롤하기 등 훈련 방법은 다양했다. 무엇보다 내가 신경 쓴 것은 짧은 거리의 패스, 단거리 달리기, 헤딩, 볼 컨트롤 같은 기본기였다. 어린 시절 코치 선생님에게 들은 바로는 발등 구석구석마다 적어도 3000번씩 공이 닿아야 감각이 생기고 다시 3000번이 닿아야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맨유 입단이 확정된 뒤 메디컬 테스트를 받으며, 심폐기능이 마라톤 선수와 같다는 평을 들은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은 이런 과정을 통해 길러졌다. 이렇게 훈련에 몰두하던 그는 고교 시절 당시 현역에서 은퇴하지 않았던 이학종 감독과 연습하며, 축구는 몸보다 머리를 많이 써야하는 운동임을 깨닫는다. 동료의 움직임에 맞춰 패스를 하고, 찔러주는 패스를 미리 예측하고 받아내는 것을 몸에 익힌 것도 이 때부터다. 허정무 감독의 눈에 띄어 시드니 올림픽 대표 팀에 발탁되고 히딩크 감독에 의해 월드컵 대표 팀을 거쳐 유럽 진출에 성공한 것도 근본적으로는 그의 성실한 연습 덕이었다. 끊임없이 연습하고 준비한 덕분에 기회가 올 때 마다 피하지 않고 부딪칠 수 있었고, 도전 할 때마다 성공적인 마무리가 가능했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 박지성을 만든 또 다른 힘은 감사하는 마음과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외국선 수 생활 중 약속을 어김없이 지켰다는 그는 책에서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화려한 플레이, 수많은 골, 멋진 어시스트 다 좋다. 하지만 선수로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신뢰다. 나와 팬, 나와 동료, 나와 코칭스태프, 그리고 언젠가 나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인정할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것이 내 꿈이다,
2. 에인트호벤서 슬럼프 마음고생 “난 할 수 있다” 믿음으로 극복
지독한 연습벌레로 승승장구하기만 하던 박지성에게도 슬럼프는 있었다. 박지성은 가장 힘들었던 때로,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네덜란드로 처음 갔을 때를 꼽는다. 당시 그는 전 소속 팀 이었던 일본 교토 퍼플상가와 2002 한일 월드컵 대표팀을 오가며 하 루도 쉬지 못한 채 몸을 혹사시켰다. 에너지는 소진되었고 몸에 는 재충전이 필요하다는 빨간불이 들어왔으며 생전 처음으로 무릎 수술을 위해 수술대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임한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에서의 경기는 처음부터 잘 풀리지 않았다. 빠른 스피드와 몸싸움에 대한 대비는 부 진했고, 패스도 잘 되지 않았다. 동료 선수들은 그에게 패스하기를 꺼렸고, 패스를 못 받는 그는 하릴없이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는 꼴이 되었다. 홈 관중들은 그런 그가 경기장에 들어서기만 해 도 야유를 퍼부어댔다. 팬과 동료들이 ‘저 선수는 어떻게 저 실력으로 여기까지 왔을까’는 수군거림이 들려오는 듯했다. 처음 겪는 지독한 슬럼프였다.
그 때 박지성을 지탱해준 것은 나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 하나뿐 이었다.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한 마인드 컨트롤과 이미지 훈련.
“나는 내가 가진 능력의 절반도 아직 보여주지 못했다. 만약 내 능력을 모두 보여주고, 그래도 안 되겠다 싶으면 미련 없이 돌아가겠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난 나를 믿는다.” 박지성은 끊임없이 자신을 다독이며 독려했다. 경기장에 들어설 때마다 ‘지 금 이곳에서 내가 제일이다’라는 주문을 외우곤 했다. 그런 그를 히딩크 감독도 배려했다. 야유를 퍼 부운 홈 구장에서의 경기에 서는 그를 빼고, 원정경기에서 기용하며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해 준 것이다. 그는 1년가량의 시련을 거친 끝에 2004년 1월 겨울 휴식기를 가진 뒤에야 비로소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되찾는다.
영국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한 뒤에도 마음고생은 많았다. 첫 골 이 터져주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터지지도 않는 골을 억지로 만들 수도 없는 노릇, 그럴수록 그는 “나는 할 수 있다”는 주문 을 더 자주 외웠다. 그리고 골에 집중했고, 기어이 첫 골이 터졌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그리며, 끊임없는 노력으로 뒷받침해준 것이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참고문헌><>
빌헬름 바이셰델, 이기상외 역, 철학의 뒤안길, 1991, 서광사.
J.O.엄슨, 장영란 역,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1996, 서광사.
루퍼트 우드핀, 김태경 역, 아리스토텔레스, 2005,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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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3.12
  • 저작시기2019.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89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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