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의 방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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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Spinoza의 방법론
**인과적 관계와 논리적 추론을 동일하게 보았나?
**모든 학문의 목적:

2. 존재의 형이상학

3. Spinoza의 도덕철학

본문내용

어리석음을 쉽게 범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자유에 따르기 보다는 운명이나 정서의 힘에 굴복당한 사람의 모습이다. (4부 정리 3) 그리고 사물은 그 자체로 인간의 예속에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는다. 동시에 인간의 인식에 따라 그 사물의 본성적 가치가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사물은 그자체로 완전하다. 왜냐하면 자연은 목적을 위해서 작용하지도 않으며 사물의 본성에는 작용인 이외에는 어떤 것도 필연적으로 들어 있지 않다. 따라서 사물의 완전성과 불완전성은 우리 인식의 착오에서 오는 사유의 양태이거나 사물들을 단순히 비교함으로써 습관적으로 형성된 구분일 뿐이다.
선과 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다. 사물들 그 자체는 선과 악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것도 지시하지 않는다. 동일한 사물이 동시에 선일 수 있으며 악일 수도 있다. 따라서 선을 다시 정의한다면, 선은 인간 본성의 이상적 유형를 향해 추구해 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수단이 되는 것을 말하며 방해가 되는 것은 악이라 말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 본성의 이상적 유형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기보존과 자기완전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이상적 유형으로 접근할 때 우리는 완전하다고 말하며 동시에 선하다고 말한다. 그 반대로 접근할 때 불완전하거나 악이라고 말한다. 인간 본성의 이상적 유형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선인지를 알면서도 오히려 방해가 되는 악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스피노자는 그 이유를 외부적 원인들에 의존되어 있는 수동적 정서(passive emotion)로부터 나오는 욕망이 선과 악에 대한 참된 지식으로부터 나오는 욕망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면 단기적이고 현실적인 이익을 주는 쾌락으로부터 나오는 욕망이 장기적이기에 미래적인 쾌락을 얻고자 하는 욕망보다 더 큰 것은 사실이다.
수동적 정서에 사로잡힌 예속적 삶, 노예적 삶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성의 명령에 따라 살며, 덕(virtue)의 삶을 유지함으로써 가능하다. "덕으로 행동하는 것은 우리가 이성의 지도에 따라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기초로 행동하고 생활하며 자기의 유(존재)를 보존하는 것일 뿐이다. 이 세 가지는 동일하다." (4부 정리 24) 인간이 이성에 따라 산다는 것은 곧 모든 것을 인식, 또는 이해(understanding)하는 것이다. 자기 존재의 보존과 완전성 성취를 위해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고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은 정신의 활동(endeavour)이다. 정신은 이성을 사용하는 한에서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 말고는 결코 자기 보존에 유리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4부 정리 26) 따라서 이해하는 일은 정서의 노예로부터 해방되는 첫걸음이자 통로이다.
6. 정신의 이해와 자유: 정신은 타당한 관념(adequate idea; 대상들이나 정서에 대한 인식의 결과)을 가질 때에만 그리고 이성적으로 사유할 경우에만 사물에 대해 확실성을 가진다. (4부 27) 그리고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만을 선이라 하고 방해가 되는 것은 악이라 부른다. 이해는 정신이 대상에 대해서 작용을 받는 수동성(passivity)이 아니라 정신의 활동(activity)이다. 따라서 이해는 수동적 정서들에 대해서 우리가 타당한 관념(명석 판명한 관념)을 가지게 만드는 정신의 활동이다. 이럴 때 수동적 정서들은 더 이상 우리의 마음을 혼란시키는 정서이기를 그친다. (5부 정리 3) 증오심(hatred)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증오심은 수동적 정서이다. 즉 외적 대상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정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피해를 주었을 때 나는 그에 대해 증오심을 느낀다. 그러나 그의 행동이 자연의 필연성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하는 한 그에 대한 나의 증오심은 보다 쉽게 극복된다. 더 나가서 인간이 본성상 유사하다는 것과 공동의 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한 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다.
7. 신에 대한 지적 사랑: "정신의 최고의 선은 신에 대한 이해이며, 정신의 최고의 덕도 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4부 정리 28) 스피노자의 철학은 존재의 순서에 따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에티카」 1부에서 보여주고 있다. ordor essendi에 따르면 그 어떤 것도 신의 존재 이전에 존재할 수는 없다. 신의 존재는 모든 것에 논리적으로 선행한다. 따라서 개별적 존재자들에 대한 이해에 앞서 이것들의 원인자인 신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한다. 신은 무한한 존재이며 무한에 대한 이해는 유한한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신에 대한 이해는 쾌락과 고통 그리고 모든 욕구들의 원인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만든다. 우리가 신을 알면 알수록 신에 대한 사랑이 증가하며 우리 자신과 사물들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증가하면 할수록 정신의 쾌락과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영원한 제1 원인자로서의 신에 대한 지식과 이해는 우리에게 '신에 대한 지적 사랑(Amor dei intellectuis)'이라는 쾌락을 준다.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과 신에 대한 정신의 지적 사랑은 똑같다." (5부 정리 36의 결론)
8. 문제점: 스피노자는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을 통해서 정신의 자유와 정서들의 혼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려고 했다. 마음과 몸으로 이루어진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그런한에서 결정론적 운명에 붙들려 있어야만 하는 존재인데 결국 스피노자는 인간의 정신이 신에 대한 사랑을 직관함으로써 자유로워 진다고 말하고 있다. 어떻게 결정론과 자유론이 결합될 수 있을까?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이라는 스피노자의 말을 신비주의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신과 자연은 동일한 실체이다. 따라서 신에 대한 사랑이란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치환할 수 있으며 자연에 대한 사랑이란 자연에 대한 과학적(질료적) 설명에서 오는 정신적 만족과 쾌감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적절할 것이다. 신에 대한 사랑을 문학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자체로 의미가 있으나 스피노자 철학의 전체 체계안에서 볼 때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앞에서와 같이 해석해야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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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0.19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7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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