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사상 조명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문내용

한 딜레마가 발생한다. 유대인들은 그러한 '불결한' 고기를 건들려고 하지 않는다. 초대 그리스도교의 의식도 동일하게 이 문제에 관하여 꺼려하였다. 그러므로 동일한 방식으로, 고린도 교회가 이 문제를 문제 삼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바울의 가르침에 의해서 영감을 얻은 또 다른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상이 세상에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우상 안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심약한 형제들의 대단한 중상모략을 감수하고 자유롭고 개방적으로 이방의 희생제물 음식을 먹었다. "모든 만물은 정당하다"는 것은 그들의 슬로건이었다. "모든 음식을 깨끗하게 하신 분"이 그리스도가 아니었습니까? 라며 바울은 항변한다. 즉, "모든 것이 정당하지만 그 모든 것이 공동체를 증강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이러한 강건한 신앙을 소유하고있지 않으며 만약 심약한 형제가 당신의 지도를 따라 음식을 먹는다면, 당신은 그의 양심에 상처를 입히고 당신은 그에대해 책임을 져야한다(cf. 고전 8: 1-13; 10:14-31). 안식을 유지와 채식주의에 관해 로마교회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였으며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와 같이 이 문제도 동일하게 다루었다(cf. 롬14: 1-15:6).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만 하는 것은 개개인의 양심에 있는 거대한 가치이다. 바울은 말하기를 "공동체의 구성워들의 양심이 오해되거나 혹은 너무 세심하다 할지라도, 부드럽고도 신실하게 그 공동체 구성원들의 양심을 존중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공동체도 세워질 수 없다"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가장 강건한 양심은 반드시 양심의 명령과 임무의 전체 분야를 공평한 시각으로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양심의 명령과 임무란 금기와 미신적인 두려움으로 인해 통제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오로지 신성한 양심 속에서 그리스도와 친교 하려는 의식으로 움직여나가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을 향해 끊임없이 책임의 감각을 지니고 움직여 나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성숙은 모든 인간을 포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 동안 이러한 과제는 완성되지 않았으며 이것은 바깥에 이방인들(the outsiders)과 관련이 있다. 첫째로 그리스도인은 자신과 다른 이방인을 자신의 이웃으로 의식할 의무가 있다. 롬 12:17, 고전 10:32, 살전 4:12, 골 4:5를 아우르는 "모든 사람의 판단 속에 있는 존경받을 만한 행위를 생각해내십시오" 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최대한도의 능력을 반드시 그들 공동체의 도덕적 판단기준과 관련시켜야 함을 의미하지만 더 나아가 보면, 보편적인 자선행위에 대한 의무는 그리스도 공동체의 경계선에 제한과 한계가 없다(참고: 갈 4:10, 살전 5:15, 롬 1:14; 13:8). 바로 그러한 사랑은 모든 사회적인 의무들의 가장 정확한 수행을 고취시킬 것이다. 황제와 그의 정부는 이러한 일반적인 의무의 범위에 포함되어있다. 제국은 그러한 보상의 자연법을 구체화하려고 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보다 높은 사랑과 자유의 삶에로 들어갈 때에만 극복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은 무엇인가를 단순한 의무의 수행 차원 이상의 건설적인 차원으로 이끌 것이다. 이교도 종교에 있는 모든 좋은 척도에도 불구하고, 악의 능력은 역시 존재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반대하는 방식으로 압력이 가해졌다. 이것은 항상 무저항 뿐만 아니라 선의 과잉과 직면하게 된다. "가능하다면, 그 결정이 당신과 함께 있는 한, 모든 것과 더불어 평화를 유지하십시오. 복수하려하지 마십시오. 친구여, 죄에 대해 보복하는 사람(복수의 여신, Nemesis)은 그것의 과정을 겪게 되며..... 악에 정복되지 말고 선으로서 악을 정복하십시오." 이것은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에서의 무저항에 기초한 가르침의 탁월한 요약이고 적용임에 틀림없다. 그것의 모든 산출물은 상호관계(눈에는 이에)의 원리이다. 이 원리는 사랑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원리로 대체되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시는 유일한 원리가 사랑이기 때문에, 그 사랑은 인간 도덕성의 유일한 근거이다.
이러한 모든 것에서 이교도의 기본 위에 구성된 것으로서의 사회는 반드시 사라져야만 한다는 것이 내포되어 있다. 미래는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공동체와 더불어 있다. 인류의 미래는 이런 공동체에게 맡겨지며, 인류 미래의 역사는 이러한 공동체의 강화와 성숙임에 틀림없다. 그것의 구성원들은 세상 속에 있는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있는 등불과 같다. 그들은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선택된다. 즉, 그 목적이란 차별없이 전 인류를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며 그의 아들과의 친교로 인도하는 목적이다. 그러므로 더 앞으로 나아가 보면,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의 운명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다. 그것 안에서 바울은 인간의 진정한 신성사회의 약속을 바라본다. 이미 그리스도인 사회의 경계 안에서 인종과 성, 문화, 신분의 거대한 차별들이 초월되었으며 에베소와 로마에 사는 수많은 믿음의 동료들이 우주적 신성사회의 실제적인 핵심들이다. 바울은 이러한 신성사회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토대 위에 세워졌고 또한 성장해가고 있음을 바라본다. 즉, 그들의 삶이 모퉁이 돌인 그리스도에 의해 조명받고 영감받고 성숙해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하나의 성전인 것이다. 또 다시 바울은 공동체를 살아있는 유기체로 바라본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는 머리이며 각 지체들은 완전한 인간으로 성장하기까지 살아있는 구조를 견고하게 하는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하여 바울이 그의 비전을 확대했을 때, 그는 이러한 "완전히 성숙한 인간(예수)"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을 고대하며 기다리는 그러한 우주를 구원하는 수단임을 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시키고 있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과 땅의 만물을 총합하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만들고 자유하게 한 세계에 대한 바로 그 비전이 사도에 사역의 영감이었고 그러한 경주에로 계속해서 나아가는 희망의 말이다.

키워드

  • 가격1,3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2.10.24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8022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