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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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제기획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 논

본 논
제 1편 경제기획원의 출범
Ⅰ. 5 16과 경제 기획원의 출범
1. 초기 `부흥부`에서 `경제 개발부`까지의 전개
2. 과도기의 `건설부`에서 새롭게 `경제기획원`으로 거듭남
Ⅱ. 강력한 경제 개발을 위한 각종제도의 정비
1. 세계에 유례없는 정부지불 보증제도
2. 경제 개발 특별 회계와 예산 회계법 개정
3. 경제 부총리의 리더십과 경제장관회의
4. 월례 경제 동향보고
5. 수출 진흥 확대 회의
Ⅲ. `경제 개발 5개년 시대`의 개막
1. 5·16이전의 경제 개발 계획
2. 급조된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Ⅳ. 경제기획원의 조직 특성과 문화
1. 삼위일체 ( 기획 - 예산 - 외국자본조달 ) 조직과 기능
2. 개방과 합리성의 조직 문화

제 2편 경제기획원의 전성시대
Ⅰ. 황금기의 두 기록
1. 장기영 부총리(64.5.11 ∼ 67.10. 3)
2. 김학렬 부총리( 69. 6. 2 ∼ 72. 1. 4 )
Ⅱ. 황금기의 부작용
Ⅲ. 세계 초유의 개발 도구와 국가 주도형 개발 전략
1. 주도적 조정력의 원천
2. 국가 주도형 개발 정책의 특징
Ⅳ.한국경제 개발 시대의 금자탑
1. 포항제철
2. 경부고속도로

제 3편 경제 정책 결정의 이원화와 유신체제
Ⅰ. 유신체제와 기획원의 위상 약화
1. 민간 주도론의 대두
2. 대통령의 이원화 용병술
3. 인재양성
Ⅱ. 도전과 응전
1. 부실기업의 처리
2.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 명령(8·3조치)
3. 보완조치
Ⅲ. 중화학공업 전략과 정책 결정의 이원화
1. 시장에 의한 점진적 중화학공업화
2. 중화학공업 추진기획단
3. 보조 역할자로서의 경제기획원

제 4편 경제기획원의 복원과 5공의 대전환
Ⅰ. 경제 기획원의 복원
1. 실제경제 안정화 시책
2. 신군부와 경제기획원
3. 공정거래법
4. 물가 잡기
5. 영점기준(zero-based) 예산 방식의 도입
Ⅱ. 흑자시대 경제정책
1. 외채 망국론
2. 3저와 개별 산업 육성책

제 5편 경제기획원과 6공의 정치논리
Ⅰ. 정치논리 대 경제 논리
1. 부채탕감과 경감
2. 주택 200만호 건설
3. 토지공개념
4. 노동정책
5. 복지시책
Ⅱ. 산업합리와 정책
1. 부실 기업 정리
Ⅲ. 대외정책

제 6편 경제기획원을 뒤로 하며 재정경제원으로의 이행
Ⅰ. 경제기획원 폐지론
Ⅱ. 1992년 대선 공약, 작고 효율적인 정부`

결 논

본문내용

회부, 노동부 등과 함께 국민복지 증진대책을 마련하고 단계적으로 시행해오던 의료보험을 전국민 대상으로 확대했다. 이어 1988년 1월부터 국민연금제와 최저 임금제도의 도입을 발표했다. 복지시책에서 기획원은 재정중립의 원칙을 고수했다.
Ⅱ. 산업합리와 정책
1985년 이전에 기획원의 부실 기업 정리 차여는 주로 산업 합리화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산업 정책에 대한 정책 조정 차원에서 산업 전체를 대상으로 통폐합을 유도한다든지, 또는 개별 기업을 대상으로 할 때도 공기업이거나 직·간접 재정 지원과 관련되는 경우로 한정되었다.
1. 부실 기업 정리
6공화국 들어와서 공개입찰을 시행하면서 부실 기업의 정리과정에서 기획원의 역할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중공업의 경우는 예외였다. 공기업인 한국중공업의 경영이 효율적이지 못하므로 민영화로 주인을 찾아주면 경영 정상화가 빨라질 수 있다는 논리였다.
기획원은 공기업 체제 유지론을 견지했다. 우선 공기업으로 경영 정상화를 이루고, 주식매각을 통해 국민기업으로 전환시키자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공개입찰이 유찰되면서 기획원이 다시 나섰다. 민영화를 전제로 정상화 방안을 마련했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자본금을 추가로 수혈하고 경영 독립성을 위해 관계 부처의 간섭 및 감사원 감사를 최대한 배제토록 했다.
Ⅲ. 대외정책
기획원이 UR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공식 라운드가 시작된 1986년보다 훨씬 이전인 1983년부터다. 다른 행정부처가 UR 기류에 대해 수동적이고 소극적인데 반해 기획원은 해외협력위원회 기획단 시절부터 UR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제기했다. UR의 목적이 우리 경제의 대외 지향적인 발전 전략과 맞기 때문이다. 초반의 의제 선정 단계부터 적극 참여하는 것이 전체 협상에서 우리 입장을 반영시키기가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경제 규모가 커짐에 따라 선진국의 통상 압력은 불가피한만큼 무조건 반대가 능사는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제 6편 경제기획원을 뒤로 하며 재정경제원으로의 이행
경제기획원 33년사는 곧 한국 경제의 발자취나 다름없다. 기획원이 탄생한 직후인 1962년에 87달러이던 1인당 국민총생산은 지난해 7,500달러로 확대됐다. 한국 경제가 빈곤의 늪에서 벗어 나온 계기가 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도 경제기획원의 주도로 이뤄졌다.
한국 경제를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올려 놓은 밑거름도 기획원이 깔아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극찬을 뒤로하고, 경제기획원은 1994년 12월 3일 간판을 내린다. 정부 수립 후 44번째 정부 조직 개편의 결과지만, 군사혁명 직후인 1961년 7월 출범해서 33년간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 기적을 일궈낸 주역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경제기획원 간판을 내리게 한 직접적인 계기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조직 개편 작업의 결과이다.
새 시대에 맞는 정부의 통합·조정 능력을 강화하려면 30여 년전의 성장과 수출을 목적으로 만든 경제기획원을 발전적으로 개편해 경제2003년 11월 20일통일·안보 분야를 총괄하면서 장기 계획이나 목표를 수립하고 각 부처의 일을 조정하는 '국가 기획 조정원'같은 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러한 경제기획원이 간판을 내리고 재정경제원으로 통합된 것은 불가피한 '발전의 결과'이기도 했다.
Ⅰ. 경제기획원 폐지론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나라 행정기구는 성장과 효율, 개발 주도 행정이란 이름 아래 법치 행정의 참여와 통제 행정이 경시되고, 권한의 비대 현상과 획일 행정을 일삼아왔다. 이제 민주화시대를 맞아 행정 또한 시대 정신에 걸맞게 탈바꿈하고 큰 수술을 단행해야 할 시기에 다다랐다. 특히 경제기획원은 과도한 중앙 집중화 현상의 상징적 존재였을 뿐 아니라 민주화 추세와 민생 부처의 강화라는 차원에서 볼 때도 경제기획원의 대폭적인 개편은 당연하게 받아 들여졌다.
물론 기획원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는 논의가 조직 내부에서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가오는 새 시대에 기획원 스스로 살길을 찾아보려는 몸부림의 하나였다.
기획원 자체의 논의결과 그 동안 기획원의 조직과 기능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그 당시 기획원 체제는 1960년대에 골격을 잡은 것으로 정부 주도에 의한 경제 개발에 기능적인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과거와 같이 5개년 계획을 중심으로 밀어붙이기식 경제 개발이 한계에 왔으므로 경제 민중화에 맞춰 경제 운용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획원 개편은 기획원뿐 아니라 전 정부 부처를 망라한 새로운 행정의 청사진 아래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다.
Ⅱ. 1992년 대선 공약, 작고 효율적인 정부'
문민 정부 출범과 더불어 30년 군사 정권의 종지부를 찍는다는 점에서 신정권 창출의 의미를 부여했던 문민 정부로서는 더욱 그랬다. 또한 정부 주도 경제를 민간 자율 경제로 바꾸는 것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가장 먼저 손댈 사항으로 이미 인식 되던 터였다.
과거 30여 년 간 경직화 된 정부 주도의 권위주의적 계획 경제에 바탕을 둔 정부 조직은 경제 문제가 당면한 최대의 국가적 과제로 등장한 오늘날의 국제 경제 경쟁시대에 대처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군사 정권과의 차별화 전략으로 작은 정부를 지향했다. 이것은 크기는 작으나 강한 정부로 개조하여 문민 정부의 정부 조직 개편 철학으로 제시되기에 이르렀다.
그 후 12·3정부 조직 개편으로 경제기획원은 재무부와 통폐합되어 재경원으로 재 탄생하게 되었다.
이로써 33년간 한국 경제의 발전과 맥을 같이 해온 경제기획원은 문을 내리고 재정경제원 시대가 막을 열게 되었다.
結 論
지난 경제개발시기의 주역인 경제기획원은 사라졌다. 새로운 기능과 능력을 요구하는 새로운 환경으로의 도래로 재경원으로 바뀐 것이다. 물론 이것이 바뀌게 된 이유가 구 시대의 유물을 청산하자는 것에서 비롯된 것은 비단 확실하다. 또한 무리하게 외자 유치를 하고 사업을 도모해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세계 최대 빈민국에서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올려놓은 사실도 간과 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오늘날의 한국을 만드는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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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1.28
  • 저작시기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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