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에밀을 읽고...(쟝자크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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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후감>에밀을 읽고...(쟝자크루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루소에 대하여

2. 루소의 교육사상
(1) 성선설
(2) 소극적 교육
(3) 자연주의 교육의 목적

3. <에밀>의 줄거리

4. <에밀>의 교육적 의의와 비판점
(1) 교육적 의의
(2) 비판점

5. 결론(정리와 나의 생각)

본문내용

일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자연적인 성향은 선하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그가 가지고 있는 흥미나 필요는 교육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며 이것은 발달단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므로 각 발달단계의 특성에 맞는 교육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에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개인과 사회에 대해서 두드러지게 논의한 부분은 소년기와 청년기 교육이다. 소년기는 사물을 통하여 자신을 연구하는 시기로, 자연이 보여주는 사물의 세계만을 파악한다. 청년기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연구하는 시기로 이 시기의 목적은 사회에서 필요한 것을 자신의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사회, 문화, 예술, 종교 등을 통하여 배운다. 결국 소년기를 통하여 사물에 의한 자신의 연구 후에 비로소 사회적인 존재로서 자신을 연구하게 된다.
(2) 비판점
루소의 교육론은 자연적인 성장에 맡긴다는 것, 즉 일정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개인을 방치해 둔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수 있다. 또한 교육에 있어서 사회의 영향을 배제하고 있음도 비판받을 수 있다.
상류계급의 자제를 위한 귀족의 자제를 모델로 하고 하류계급의 아동이나 장애자들의 교육에 대해 관심 갖지 못했다. 또한 훌륭한 교육이 왜 중요하며 당대의 학교교육이 어떻게 나쁜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개인적 전체적 경험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의 교육을 밝히지 않았다. 그의 교육론이 일반론에 머물고 있을 뿐, 구체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논의를 전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차별이 지적될 수 있다. 남녀의 차이를 당시의 사회 문화적 상황에 근거하여 과학적으로 분석하지 못하고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근거로 분석하고 있다. 그리하여 결국 양자간의 차이를 시대와 사회에 따라서 그리고 교육의 양과 질에 의해서 변화 될 수 있는 가변적인 속성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불변의 특징으로 고정화 시켜 버렸다.
5. 결론(정리와 나의 생각)
<에밀>에서 루소는 "교육이란 자연에 의해, 인간에 의해, 또 사물에 의해 행하여진다. 인간은 모두 이 세 종류의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는다."고 하여 교육이란 어떤 한정된 시기나 장소, 또는 시설 속에서 특별히 행하여지는 것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다. 즉 루소의 교육관은 "교육이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며, 죽을 때까지 도처에서 행하여진다."는 것이다. 그는 교육의 작업이라는 것을 교사나 학자 또는 부모들만이 지니는 특별하고 전문적인 작업이라고 보지 않았다.
따라서 루소는 이미 220여년 전에 교육을 전문가의 손에서 만인의 관심사로 해방시킨 셈이다. 모든 것을 자연으로 돌리고 자연의 상태로 보존하는 것을 지상의 과제로 여겼던 루소는 종래에 사람들이 지녀 온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교육의 과제로 여겼다. 그러므로 <에밀>의 교육은 단순한 학교 교육이 아니라 생활의 교육, 생활력의 교육으로서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어려운 사람,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줄 줄 아는 교육, 이웃과 고향인과 동포를 사랑할 수 있는 성실한 사람이 되는 교육,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남을 존중할 줄 알고 모든 일을 실제로 손수 할 줄 아는 교육, 농사도 지을 줄 알고, 목수 일도 할 줄 아는, 허영과 허례에 빠지지 않는 현실 생활에 강한 인간을 기르는 본보기의 교육이라 하겠다. 루소는 교육의 주요 관심사를 인간의 행위의 문제에 두었으며, 외면에서의 인간 행위가 아닌 내면적인 인간성을 문제로 삼았다. 즉, 현대 사회의 학문 예술, 다시 말해 문명의 진보의 방향이 인간의 영혼의 상태를 무시하고 황폐하는 대로 내 버려 두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루소는 인간 행위의 선악, 인간 행위의 행·불행 따위를 판단하는 기준을 「자연」이라 불렀던 것이다.
루소가 말하는 「자연」은 자유로운 의지의 주체로서의 인간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자연」이란 바로 인간에게 이기심 또는 정념에 의해서 유도되는 자의를 초월한 어떤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말한다.
루소는 <에밀>에서 인간이 지니는 본래적인 내면의 감정으로서의 자유로운 감정을 인간의 마음에 가꾸어 주고 고취시켜 주며 그것을 진정으로 맛보게 하여 주는 것으로서의 교육을 말하려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루소는 <에밀>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성을 그대로 드러나게 하고 또 그것을 실현하려 하였다.
이러한 <에밀>의 출판은 당시의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박해를 받았지만 한편에서는 찬사와 열광이 시대를 뒤흔들었고, 만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자녀 교육의 길을 제시해 주었다. 그 영향이 얼마나 컸었던가 하는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우유 대신 모유를 먹이고, 전원 생활이 유행으로 번졌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즉, 그 당시 사람들의 그릇된 자녀 교육을 <에밀>은 예리하게 꿰뚫어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에밀>에 담겨진 가장 큰 가르침은 교육의 본질적인 목적은 인간의 형성이며, 관리 양성이 아니라는 점을 그 당시 사람들에게 상기시키고 완전한 실험적인 방법을 사용 할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루소가 <에밀>을 쓰게 된 배경과 작품 내용과의 관련을 놓고 볼 때 모순되는 가치의 상이점을 엿볼 수가 있다. 루소가 말하기를 그의 <고백록>에서 <에밀>에 관하여 "20년간의 명상과 3년간의 노작의 결과"라고 말하고 있는데 바로 이 점에 의외성이 있는 것이다. 루소가 <에밀>을 집필하게 된 것이 1760년경이므로 20년 전이라면 1740년경이 되는데, 이때부터 루소가 인간 형성의 자연 교육에 관심을 가졌다면 어떻게 1746년경에 태어난 자신의 첫 아이를 고아원에 보낼 수 있었으며, 또한 계속하여 그 후에도 4명의 아이를 그렇게 처신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생을 비판하고 인간성의 신장에 대한 교육론을 쓴 사람이 그와 관련된 생각을 끊임없이 하면서도 그와는 걸맞지 않는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당시의 상황이 절박하다 하더라도 진정한 교육에 관하여, 아이의 인간 형성에 관하여 골몰하는 이가 그런 행위를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에밀>의 창작 배경과 창작에 관한 명상의 시기에는 생각해 볼만한 점이 있지 않나 싶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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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3.12.08
  • 저작시기2003.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37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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