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족주의 운동에 대한 통시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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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민족주의 운동에 대한 통시적 고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한말 반외세,반봉건 의식과 `민족주의적` 운동

2. 일제하 국권회복,민주공화정,민족문화수호의 이념

3. 해방 후 `완전자주독립`,신민족주의 및 민족통일의 이념

4. 맺는말 - 공생(共生)을 지향하는 `열린 민족주의`

본문내용

족주의'의 좌우협력 이념을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일찍이 임시정부에서 좌·우 통합을 이룩했던 김구가 뒷날 민족분단을 막기 위해 김규식과 제휴, 남북협상을 진행시킨 것을 보면, 신민족주의 이념이 해방공간에서도 일정하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것 같이 느껴진다.
분단체제의 고착화, 6.25의 동족상잔, 공산주의와 반공주의의 대결 등 해방 이후 1950년대까지는 이 땅에 민족주의가 자리잡기 힘들었다. 세계 냉전체제의 당사국인 미·소는 보편주의를 내세워 개성적인 민족주의를 극도로 기피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영향력이 가장 강하게 미치고 있던 한 반도에서는 해방 직후의 민족주의적 분위기마저 점차 사라져 갔다. 남한의 경우, 친일파가 득세한 것도 민족주의적 분위기를 몰아내는 데 한 몫을 감당하였다. 대학교양과목에서 세계사가 필수로 된 것과는 달리 국사 과목이 빠진 것은 이 무렵의 민족주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었다. 남과 북에서 민족주의자들이 희생된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4.19혁명은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를 회생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부정선거와 독재에 항거하여 일어난 4.19혁명은 민주화와 부패추방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을 뿐 아니라 당시까지 금기시되어 온 분단체제에 대한 비판을 가능하게 하였다. 민족주의가 구성원의 민주의식과 병행해야 한다면, 학생들이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혹은 서로 협력하여 통일을 이뤄야 할 민족으로 확인하게 된 것은 통일운동과 민족주의의 새로운 단계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 무렵 일제하의 민족주의 사학이 재조명되고, 무력통일론 대신 평화통일론이 등장하게 된 것도 새로운 민족주의의 전개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다.
4.19혁명을 계기로 성장하던 민족주의는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을 병행하는 한편, 5.16 후 군사정권이 추진하던 '굴욕적인 한일회담'에 반대, 항일의식을 고조시키기도 하였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된 후 남쪽의 집권세력이 국가민족주의를 강화하여 경제성장을 주도한 데 비해 북쪽에서는 '주체사상'으로 종래의 마르크스 레닌주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민족주의 노선'을 추구하였다. 나아가 1972년 '7.4공동성명'은 민족통일 문제에 대한 합의를 도출함으로 남북이 연대하여 민족주의를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듯했다. 그러나 남북 집권자들은 이를 정권강화에 이용, 남쪽에서는 유신체제를, 북쪽에서는 김일성의 유일체제를 굳힘으로 민족의 염원을 저버리고 말았다.
70년대 유신독재 기간 동안 인권신장과 민주화의 요구는 '국가안보'의 논리 앞에서 자주 벽에 부딪쳤다. 그러나 '국가안보론'이 바로 분단구조에 근거한 것임을 깨닫게 되자 분단구조를 해소하는 것(민족통일)이야말로 인권신장과 민주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1980년의 광주민주화운동은 미국의 실체에 대한 의문을 던졌고 민주화와 자주화를 앞당기는 첩경으로서 통일의 과제를 부각시켰다. 80년대 신군부와의 대결을 통해 민중적 민족주의가 전면적으로 대두되었고, 시민적 민족주의도 크게 성장하여 90년대의 민간정부를 창출하는 동력이 되었다.
4. 맺는말 - 공생(共生)을 지향하는 '열린 민족주의'
20세기 후반, 냉전체제가 와해되고 정보통신의 혁명, 장벽이 없는 세계 무역구조의 성립,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등 지구화의 열풍은 한국에도 '세계화'론자들을 양산시켰다(박찬승, 「한국의 역사학은 민족주의를 버려야 할 것인가」, 한국사학사학회 제1회발표, 1999.5.8.). 각 방면에서 민족주의는 비판되고 세계화가 강조되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의 시정방침에서조차 '폐쇄적인 민족주의'와 '보편적인 세계주의'가 대비되면서 세계화의 길만이 생존을 약속하는 것처럼 강조되고 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경제·사회·문화 등 각 방면의 울타리는 제거되고 정보의 창출·독점자가 종래의 국경을 거침없이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추진되고 있는 세계화는 개성의 총화로서의 세계화가 아니라 다원사회를 일원화하는 의미의 세계화다. 또 현시점에서의 세계화란 미국의 자본과 미국적 가치관을 보편화하려는 것으로 느껴진다. 이럴 때 개성에 바탕한 민족주의는 발붙일 곳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민족주의는 이 같은 공격적 세계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의 과제를 안고 있다.
민족주의는 다원성과 개성을 파괴하려는 세계화에 대응적인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이것은 비단 제3세계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소위 선진국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각 국가, 각 민족이 갖고 있는 개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가꿀 때에 세계가 더 풍요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안창호나 김구가 꽃밭론을 주장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화단이 형형색색의 꽃으로 꾸며졌을 때 더 아름다운 것처럼, 세계도 각 민족이 자기의 개성을 가지고 세계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세계사는 창조적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민족주의는 아직도 세계사에 참여하는 개성있는 민족을 다듬기 위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민족주의는, 비판자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던 것처럼, 폐쇄적 혹은 침략적이거나 국제적 협력과 교류를 거부하는 이론적 근거처럼 되어서는 안된다. 국제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서되 민족적인 것을 우선적인 매개체로 해야 한다. 민족주의는 자기 존재를 귀하게 여기는 것처럼 다른 민족의 존재도 귀하게 인정해야 한다. 거기서 민족주의는 공생(共生) 이념의 바탕이 될 수 있다. 그런 민족주의가 '열린 민족주의'다.
'열린 민족주의', 그것이 바로 미래의 한국 민족주의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참고문헌 ----------------------------------------------
1. 로빈슨, 김민환역, 일제하 문화적 민족주의, 나남출판사, 1990.
2. 김창순, 김준엽, 한국공산주의 운동사 2권, (청계연구소, 1987.
3. 백낙청편,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창작과 비평사, 1981.
4. 신용하편, 민족이론, 문학과 지성사, 1984.
5. 차기벽, 한국민족주의의 이념과 실태, 까치, 1978.
6. 노태돈, 한국민족 형성에 대한 이론적 고찰, 한국고대사논총 1, 1991.
7. 송건호·강만길 편, 한국민족주의론, 창작과 비평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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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2.17
  • 저작시기2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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