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문화사에 대한 개관 및 인더스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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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인도문화사에 대한 개관 및 인더스 문명>
1. 인도사 개관
2. 인도지리 개관
3. 인도의 先주민들
4. 인더스 문명

< 아리아족의 이주와 바라문 종교의 확립 >
1. 아리아족의 이주
2. 카스트 제도
3. 바라문교(Brahmanism)
...

본문내용

특히 대승불교는 기존 부파불교의 열반을 추구하는 아라한의 길을 '小乘(h nay na)'이라고 비판하고 깨달음을 구하면서 衆生을 제도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적인 菩薩(bodhisattva)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부각하였다. 그리하여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열반에 있는 것이 아니라 成佛에 있게 된 것이며, 이것이야 말로 석존이 베푼 교설의 진정한 뜻이라고 그들은 역설하였다. 대승불교는 그 발생 후기원전 1, 2세기경부터 먼저 반야경전이, 뒤이어 法華經이 일어나서 二乘作佛의 설 등이 일어나게 되자, 聲聞도 또한 이 도에 귀입해야 할 것으로 되었다. 다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의 실유불성설(悉有佛性說)에서는 일체 중생이 모두 성불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승은 모든 중생을 태우고 如來地에 이르는 절대의 大道로 인정되게 되었다. 대승경전은 반야, 법화, 열반 외에 화엄, 무량수(無量壽), 능가( 加), 유마(維摩), 승만(勝 ), 대집(大集), 금강(金剛) 등 여러 경이 연달아 각 방면에서 많이 편찬되어 퍼지고 동시에 많은 보살, 論師(논사)가 배출하여 논과 주소(註疏)를 작성하고 대승불교의 찬란한 발전, 비약이 성취되어 인도의 다른 여러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곧 티베트, 중국, 일본에 들어와 나라마다 각각 독자적인 발전과 완성을 보게 되었고, 혹은 성쇠를 반복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오늘날의 연구에 의하면 대승불교가 大衆部에서 일어났으리라는 것은 거의 定說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초기에 有部를 비롯하여 다른 여러 부파(部派)로부터의 영향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고 있다.
가 발전한 시대라는 역사적 의의를 지님.
(2) 불교 인도의 시대적 성향 :
불교가 성행하는 현상은 이 시대에 일관되게 볼 수 있는 상업사회의 번영과 상통하는 것으로 서 바라문교가 발달하게 되는 굽타 시대의 상업사회 쇠퇴현상과는 반대되는 것이며, 즉 불교 의 지지자는 주로 왕후와 상공업자임을 잘 알 수 있음.
(3) 서북부 이민족들의 불교 신봉 :
불교를 신봉했던 서북 이민족으로서는 그리스계인 박트리아 왕국의 메난드로스 왕(밀린다 왕), 샤카족, 쿠샨족의 카니슈카 왕 등을 들 수 있겠다.
< 힌두교 문화의 완성과 불교의 쇠퇴 ; 굽타 왕조 >
1. 굽타 왕조의 흥기
(1) 쿠샤나와 안드라 제국은 A.D. 3세기에 접어들자 점차로 쇠퇴하여 많은 군소 제국으로 난립 하게 됨.
(2) 마가다국에서 일어난 찬드라 굽타(Chandra gupta) 1세가 A.D. 320년에 즉위하여 굽타 왕 조를 창시함.
2. 집권적 국가의 성립
(1) 찬드라 굽타를 이은 사무드라굽타(Samudragupta, A.D.330년경 즉위)는 남북에 걸친 전 인 도를 정복하여, 마우리야 왕조 이후 처음으로 통일 국가가 형성되었다.
(2) 굽타 왕조 시대는 왕조에 다수의 소제후가 예속되어 있었으며, 각각의 제후국의 내부에는 제후에 직속된 관리가 행정을 맡아 행하였으며, 신분의 차이는 고정화되어 있어 직업은 대 체로 세습되었으며, 백성은 토지에 묶여 있었다.
3. 인도 고전 문화 및 고전 육파철학의 완성
(1) 바라문 시대의 사회의 고정화를 뒷받침해 주는 이론으로서, 인도 고대의 바라문 교학은 점 차로 부흥하여 바라문교가 국교로서 채택되었다. 바라문 법전은 사회 질서의 유지를 위한 규준(規準)이 되었다.
(2) 힌두교 제파는 바라문교의 학문, 신화, 습속을 다양하게 섭취하여 바라문교와 융합함과 동시
에 점차로 사회 상층 계급의 지지를 받아 사회적으로는 대단히 유력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학술, 문예 방면에서도 바라문 교학이 사회의 전면에 나타나 바라문 용어인 산스크리트어 가 전 인도에 걸쳐서 공용어로 사용되었다.
(3) 불교나 자이나교에서도 학문적 연구를 활발하게 하였으나 사회적 위세는 약화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사정이 촉진되어 불교, 자이나교의 학자들도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고, 후에는 바라문의 철학 술어를 많이 사용하여 철학적 논의를 주고 받기에 이르렀다.
(4) 철학적으로는 각 학파마다 근본 경전이나 교과서가 작성되어 스승에게서 제자에게 전수되었 다. 그 후 여러 학자는 그 근본적 교설을 숭배하고 주해하여, 그것을 상세하게 발전시켰다. 그 중 정통 바라문 계통의 여섯 철학파를 일컬어 六派哲學(Sa ar ana)이라하는데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 베다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통(正統)이라고 생각되었다.
4. 敍事詩의 완결과 푸라나 聖典
(1) 이 시대의 사회는 신분제가 확립되어, 바라문의 사회적 우월성이 인정되자 서사시도 저절로 그러한 방면으로 변하게 되었다. A.D. 400년 경에 마하바라타가 거의 현재의 형태와 같이 정리되었다.
(2) 서사시의 제 요소를 더욱 발전시켜 푸라나(P r a) 성전을 성립시켰다. 푸라나 성전은 힌두 교의 성전으로 현재의 인도 민간 신앙과 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5. 불교 교리의 체계화
(1) 소승 교리의 체계화 :
굽타 왕조의 집권적 국가 체계가 바라문교적 사상을 주축으로 해서 사상의 고정화, 체계화 를 목표로 하고 있던 정세에 부응하여, 전통적·보수적 불교제파도 체계적 강요서(强要書) 가 작성되었는데, 후세에 가장 중시된 것은 Vasubandhu(世親, A.D.320∼400)의 아비달마구 사론(阿毘達磨俱舍論, Abhidharmako a)이다. 이 논서는 경량부(經量部)의 입장에 서서 정 통 유부(有部)의 학설에 대해 비판했다는 의의가 있다.
(2) 종전의 대승 불교(中觀論)는 철학 사상의 이론적 체계를 갖추지 못한 반면에, 굽타 왕조 시대 에 이르면 당시의 이론 체계화 분위기에 힙입어 대승 불교도 이론적 체계를 구성하고, 산스 크리트어로 저작을 한다. 이러한 작업은 識의 원리에 기초를 두고 조직적으로 설명 되어진 것으로 이러한 학파를 唯識學派(Vij nav din) 혹은 瑜伽行派(Yog c ra)라고 한다.
[ 참고문헌 및 출처]
이지헌 인도문화사 개관 및 인도 종교론.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 2001
천동희 동서비교연기론(인도연극의 문화적 배경-인도 배우사 및 동서 연극사에 나타난 배우들의 특징과 예술사적 연구) 경기대학교 대학원 연기학과,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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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4.04.01
  • 저작시기2004.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5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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