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종교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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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는 말
◎ 무종교의 실체
◎ 무종교의 역사
◎ 퇴색한 종교관
◎ 일상주의와 종교

Ⅱ. 나오는 말

본문내용

등의 뛰어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악하고 기괴해서 세상에 뛰어나도 신이라 한다. 사람 가운데의 신으로 헤아릴 수 없이 어지신 천황은 세세대대로 신으로 계심은 새삼 말할 나위가 없다. 그것은 먼 신이라고도 하니, 범인과는 아득하게 멀고 높고 어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다음 다음에 신으로 되어가는 사람, 예나 이제나 다름이 없다. 또 넓은 천하뿐 아니라 한 나라, 한 동네, 한 집안 안에서도 나름대로 신이 될 사람이 있다 할 것이니 신 시대의 신들도 거의가 그 시대의 사람이었다. 그 시대의 사람은 모두 신이었던 까닭으로 신 시대라 이름한다.
그리고 일본은 대체적으로 모든 종교를 수용하였다. 그것도 자신들의 삶에 있어서 좋은 것만 받아들였다. 이 같은 사정으로 일본인은 불교를 특정의 처지, 특정의 의향에 따라 수용했다. 불교를 무슨 사회 정치적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든가 도구로서 채용한 경향이 있다. 불교에 귀의했다기보다 오히려 일본인으로서의 위치에서 섭취한 느낌이 많다. 이것은 또 메이지 이후의 기독교 수용에서도 같은 경향을 보인다. 많은 일본인으로서는 신앙으로서의 기독교 자체는 아무래도 좋다. 다만 그것이 빠르게 일본화 하는 것, 일본적으로 되는 것을 바랬던 것이다. 불교가 일본화 한것과 같이 기독교에 대하여도 일본화 할 것을 바랬다. 그래서 불교가 들어오면 불교의 좋은 점만 취하고 불편한 점은 던져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리스도교가 들어와도 멋있어 보이는 부분만 채택하면 그만이었다. 크리스마스 파티나 교회에서 행하는 결혼식만 있으면 그 뿐인 것이다. 그러나 장례식은 불교식으로 한다. 봉오도리(盆踊)
) 7월 명절의 축제 때 노래나 장단에 맞추어 추는 춤
도하고 정월 초하루 참배도 한다. 좌선도 하고 축제의 가마도 멘다. 이러한 일들이 아무런 모순 없이 동시에 행해진다. 이런 식으로 일본화 하려는 양태의 기원은 쇼토구 태자에 의한 습합사상이 나타나면서 발생한 '이이토코도리'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종교와 같은 엄격한 것조차도 '이이토코도리(良いとこ取り)'
) '좋은 것을 취한다.' 라는 뜻
를 할 수 있다면 다른 문화는 말할 나위도 없었던 것이다. 메이지 시대가 되어 서양 문명이 물밀 듯이 들어오자 그들의 뛰어난 기계 문명을 재빨리 받아들여 체신과 철도망을 만들었다. 그리고 의회 제도를 받아들였고 징병 제도도 만들어 냈다. 기술도 제도도 학교도 모두 서양식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러나 서양의 자유 사상이나 가족 제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것을 '화혼양재(和魂洋才)'
) '전통적인 일본의 정신을 지키며 서양기술을 배운다' 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으며 일본의 주체성과 실리성을 나타내주는 표본이다.
라 이름 짓고 득의양양해 했다.
이러한 사상적인 전통이 있었기에 일본은 우리와는 달리 외국의 문화나 기술을 아무 거리낌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이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반드시 옛날 문화를 버린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불교 신자가 되었다고 해서 신사 참배를 그만두어야 한다고는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냥 새로운 것 하나를 추가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그것 참 재미있어 보인다 하여 그냥 받아들인다. 일본이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에서 유일하게 근대 기술, 근대 제도를 빨리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일본 사회에는 직장이란 것이 강력한 결속체 역할을 하는 '직연 사회'가 형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하나가 직장을 대신하는 결속체로서 종교 집단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쇼토쿠 태자가 시작한 습합 사상만 있으면 직장 활동에 방해가 되는 종교적 계율이나 집회 행사는 가볍게 피할 수 있었다. 오늘날 일본인의 경제 동물적인 성격을 만들어 낸 데에도 '이이토코도리'의 사고 방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으로 오늘날 일본이 왜 스스로 무종교라고 자처하는지 그들의 사상을 통해서 알아보고자 했다. 그리고 이런 '무종교'라고 하는 것 뒤에는 그들 나름대로의 사상이 있었고 그 사상은 오늘날 일본인의 특징으로 요약되는 점이 많음을 알아보았다. 이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일본인의 관용성은 역사와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변화하기는 하였지만 일본의 특징으로 지금도 살아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일본을 주체가 없는 문화라는 등으로 곱지 못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 여기다가 요즘은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로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이것 또한 생각의 차이이다. 그들에게 예전부터 내려온 유교 사상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이다. 일본은 모든 것이 현실적이며 계산적이다. 하지만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는 주자학의 영향을 받은 우리 민족은 이런 일본을 쉽게 이해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이해 못하고 일본 또한 우리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 우리는 조선시대의 성리학이 그저 당쟁의 논리로써만 활용되었고 이후 위정척사논리로 이어지고, 이러한 주자학은 다시 우익들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그리고 그 우익들은 다시 대한민국정부를 수립하고 오늘날에 이른다. 이렇게 현재까지 오면서 우리는 단 한번도 성리학의 반성과 비판을 해 오지 않았다. 그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 온 것이다. 그리고 일본도 그저 자신들에게만 유리하게 모든 사상을 일본화 하여 받아들여 오면서 그들도 반성이 없지 않았나 싶다.
진정으로 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 나라가 가지고 있는 유교사상을 한번쯤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왜 그들이 무종교라고 하는지도 쉽게 알 수 있고 또 사회, 문화 전반의 모든 것을 어느 정도는 서로 이해 할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 레포트를 마친다.
참고문헌
『일본인의 사유방법』, 나까무라 하지메, 도서출판 우진, 1982
『현대일본 종교문화의 이해』, 시마조노 스스무, 도서출판 청년사, 1997
『일본인과 일본문화』, 사비 료타로·도널드 킨, 을유문화사, 1993
『일본을 이끌어 온 12인물』, 사카이야 다이치, 자유포럼, 1997
http://www.donginuni.com/
비디오 - 일본인의 신앙심 : 그로리미디어 제작
  • 가격1,500
  • 페이지수15페이지
  • 등록일2004.04.22
  • 저작시기2004.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7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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