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제사에 대하여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기독교와 제사문제
1). 제사와 현대문화
2). 제사에 대한 성경적 견해
3). 제사에 대한 역사적 이해
4). 별세한 조상에 대한 실천적 이해
5). 효도와 제사
6). 기독교에서 제사를 반대하는 이유

Ⅲ. 제사에 대한 성서적 비판

Ⅳ.조상 제사의 종교적 성격
1). 예라는 말의 의미
2). 예와 사회적 계급적 질서
3). 제사와 관련된 중국 유교의 제신
4). 제사와 종교성과 효의 개념

Ⅴ. 기독교의 제사에 대한 수용 가능성
1). 조상숭배 제사에서 기독교가 수용할 수 없는 요소들
2). 조상숭배 행위에서 기독교가 이어 취할 수 있는 문화적 요소들

Ⅵ. 문제를 푸는 길

본문내용

상에 내시고, 양육해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그들의 생전의 삶에 대하여 추모할 수 있다. 특별히 조상이 남긴 신앙의 모본과 교훈을 되새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③ 성묘, 우리는 조상의 무덤을 찾아 성묘하며, 부활의 소망을 일깨움도 유익하다고 본다. 그러나 성묘의 경우 우리는 유교나 불교 혹은 무속의 복잡한 체계를 믿지 않으므로 삼우제(三虞祭) 등과 같이 날짜에 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④ 그리스도안에서 조상들과의 연합의 문제.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은 세상을 떠난 조상들과의 교통의 문제이다. 이미 지적했듯이 우리가 조상의 영혼과 직접적으로 교류함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을 떠난 조상들도 그리스도 안에 있고,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직접 조상들의 영혼과 교류할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간접적으로 일치하고 있으며, 조상의 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령 안에서 일치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점은 그간의 추모예배에서 부족했던 측면이라고 생각된다.
Ⅵ. 문제를 푸는 길
그러면 이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한국의 기독교가 신 지향적인 종교성을 여전히 유지하면서 제사를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된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이러한 우주-지향적 종교성을 어떻게 읽고, 알고,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제사의 문제는 우리 나라의 기독교의 문제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래서 서양에는 없는 그러한 문제 때문에 기독교가 이렇게 시달리고 있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넓게 멀리 보면 이것은 우주-지향적 종교성을 끌어안지 못하고 있는 기독교 자체의 문제이고 기독교가 스스로 지니고 있는 문화적 한계 때문에 불가피하게 직면하는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주-지향적 종교성이 신-지향적 종교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하는 것도 상응하는 진지성을 가지고 논의해야 한다. 기독교를 어떻게 토착화시켜야 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통적인 종교문화가 새로운 신-지향적 종교성을 어떻게 읽고, 알고,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도 아울러 추구하고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가피하게 그것은 상호적인 것이다.
그러나 어찌됐든 상황이 이러하다면 제사문제는 근원적인 문제의 한 단면, 또는 작은 지엽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제사에 대한 문제는 실은 죽음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나 모든 죽음에 관한 물음은 삶에 관한 문제이고, 삶에 관한 문제는 생명에 관한 문제로 그리고 마침내 존재에 대한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제사문제를 제사문제로만 논의하는 것은 존재자체에 대한 분명한 해답과 연계되지 않은 것일 때 아무런 보람도 초래할 수 없는 물음에 매달려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지금 기독교는 자기 나름의 답변을 마련하여 그 물음들의 연쇄 끝에 신을 두어 모든 해답을 완결한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적인 경험은 그 물음들의 끝에 우주-지향적 종교성을 자리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같은 두 다른 종교문화의 유형을 익숙하게 경험해 왔다. 종교사는 그러한 유형의 종교들이 지속하고 있는 나름의 속성들이 현대의 문화정황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보여주면서 그러한 모습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 적합성 여부조차 시사하고 있다. 이른바 신-지향적 종교문화가 봉착한 심각한 딜레마는 자신의 자기주장의 논리 안에 '자연의 이법(理法)'을 결여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고, 우주-지향적 종교문화의 심각한 갈등은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존재의 인격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지향적 종교문화의 에토스와 우주-지향적 종교문화의 에토스를 인간-지향적 종교문화의 에토스 안에 수렴하여 나아가는 일을 현실적인 과제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제사문제의 해결은 제사문제에 자체에 있지 않다. 제사문제는 기독교가 우주-지향적 종교문화의 에토스를 어떻게 읽고, 알고, 받아들이는가 하는 태도로 다듬는다면 별로 대수로울 것이 없는 사소한 일일 수밖에 없는 그러한 문제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사자체를 끝내 중요하고 궁극적인 문제로 여겨 그 문제에 대한 해답만을 모색한다면 제사를 긍정하든 부정하든 결국 그러한 문제제기 및 문제해결의 태도는 전제적 태도에 종착하고 말 것인데, 그것은 실은 지극히 비종교적이고 반종교적인 태도이다. 지금 기독교가 기독교이기를, 제사가 제사이기를 주장하는 자리에서 솔직하게 말하면 출구는 없는 것 같다. 기독교가 수용한 제사는 이미 제사가 아닐 것이고 또 기독교가 제사를 수용하면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닐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제사를 빙자해 박해했다는 과오를 승인한다면, 이것만 회개한다면 거기에 출구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 과오를 승인하지 않고, 참회하지 않고, 그 과오를 회개하지 않는 한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은 열리지 않는다. 그 가능성이란 기독교가, 제사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종교가 바뀌는 것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 변화는 생명의 현상인 보편적인 진리이고 생명이 있기 때문에 변하는 것이고 생명이 있는 것은 바뀌어진다. 새로운 종교성의 탄생은 불가피한 필연입니다. 이처럼 제사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한다고 하는 것이 그러한 가능성의 조짐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바뀌어져야 하는가 여기서부터는 신학자들이 할 일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죽음의 슬픔을 위로하는 자리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단지 그것이 영혼이냐 아니냐 등에 집착하고 있다면 어쩌면 그것은 참 문제가 아닐 것이다. 다른 것은 잘 모르지만 제사에 관해 중요한 것은 종교성 자체가 다른 문화, 다른 역사의 맥락에서 출발한 진지한 인간의 몸짓을 짓밟아 버린 과오를 고백하는 데서부터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출발한다면 갑자기 제사가 그리 큰 문제가 아닌 지경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절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그 자리에서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사를 지내야 하는 죽음의 자리에서 그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것이다. 우리가 참 문제 아닌 것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된다.

추천자료

  • 가격2,0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4.07.08
  • 저작시기2004.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9875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