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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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서론
■ 본론
1. 조선시대 교육사의 발달과정
2. 조선시대의 교육 제도 및 기관
3. 과거 제도와 교육
4. 교육 사상과 사상가
5. 조선 말기의 교육
■ 결론

본문내용

다. 선교계 학교의 설립이 초기에는 서울 중심으로 설치되었으나 점차적으로 전국에 확대되었다.
(2) 관학의 설립
고종 13년(1876)에 정부에서는 통상아문의 부속 기관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통변학교를 1883년에 설립하고 또 1886년에 육영공원이 설립되었다. 육영공원은 종래의 전통과 특권층의 귀족자제를 교육하는 구고육의 전통을 탈피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육영공원이 선진화된 신문물을 학습하기 위한 근대적 교육기관인 것은 사실이다. 당시의 외교통상상에 있어서의 외국어교육의 필요성이 당면문제가 되었고 영어교육을 통해서 구미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는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나 육영공원은 자체가 가지는 제한성 때문에 1894년에 갑오경장 후에 폐교되었다.
갑오경장 후에 지금까지 교육을 관장한 예조를 폐하고 그 대신 학정을 총할하는 학무아문을 설치하고 과거제를 폐지하였다. 1894년 소학교와 사범학교를 설치하고 반상의 구별 없이 교육기회의 균등 하에서 국민교육의 원칙을 밝힌 것이다.
(3) 사립학교의 성립
1904년에 러일전쟁과 결부하여 나타난 한일의정서와 을사보호조약에 의하여 조선정부는 독립성을 상실 당하고 민족의 분노는 어느 때보다도 극에 달했다. 그리고 일제의 침략성에 대한 민족의 각성을 촉진하는 계몽운동이 각종 형태로 전개되었다. 이런 계몽운동은 관학에서 보다 사립학교에서 더욱 활발히 전개 되었다. 최초의 사립학교인 흥화학교 에서부터, 대성학교, 오산학교, 양정의숙, 보성학교, 보성중학교, 중동학교, 진명여자학교와 명신여자학교, 동원여자의숙, 동덕여자의숙 등의 사립학교가 있었다.
을사보호조약 이후에는 애국사상가들에 의해서 교육과 계몽을 통한 교육구국운동이 적극적으로 활발해져 「아는 것이 힘이다」는 표어를 내고 각종문화단체가 조직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學會」의 조직과 활동이다. 서화학회, 서우학회, 호남학회, 기호학회, 교남학회, 대동학회, 대극학회, 대한흥학회, 대한동인학회, 관동학회, 대한학회, 여자교육회, 보인학회, 국민교육회 등이 있다.
지금까지 본 근대학교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로, 근대학교의 성립에는 사학이 크게 공헌하였고, 둘째로 초등교육의 의무화에 공헌, 교육의 기회균등으로 인해 민주화에 공헌하였고 셋째로는 학제의 기본적인 틀을 마련하고 근대적인 교육과정을 수용하였고 마지막으로 근대학교의 관학은 외국어교육, 실업교육, 교원양성교육에 치중하였다는 점이다.
한일보호조약(1905)이 체결되자 일본 통감부는 1908년에 사립학교령을 공시하여 사학을 탄압 감시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한말에 국운이 쇠퇴하자 구국운동의 동향이 교육을 통해 나라를 찾으려고 한 것은 큰 의의가 있는 일이다.
■ 결론
펴보면서 현재 우리 교육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조선 시대에는 막연히 유학에 대한 연구만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유학만큼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다양한 형태의 교육이 이루어졌으며. 때때로 '실학'의 경우와 같이 부족한 부분의 교육에 대한 비판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방법들이 수용되면서 교육이 변화 되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교육의 변화 양상을 보면서, 비록 형식이 다르기는 하지만 '참교육'에 대한 고민과 열망은 어느 시대에나 비슷하게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의 교육은 각 시대별로 여러 양상을 띠고 있지만, 교육이 교육답게 가장 제대로 이루어 진 것은 아무래도 혼란해진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는 후기나, 일제 강점기에 행해졌던 우민화 교육이 중심이 되는 말기가 아니라, 조선시대의 초기와 중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은 안정되어 있던 나라 정세를 바탕으로 나라에서 운영하고 관리하던 국학을 중심으로 지방에서의 명망있는 선비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학이 잘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또한 실제로 조선은 이 당시에 국가적으로도 가장 주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었다.
조선의 교육은 특히 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무과보다는 문과를 중요시하여 '지식인'을 으뜸으로 여겼으며 '선비되기'를 교육의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후대에 가서 이러한 선비교육을 받은 지배계급이 부패하고 무능했던 것은 그 지식이 시대를 지나면서 그저 아집과 독선에 가득찬 '문자'자체에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처음 조선이 교육의 지침으로 삼았던 원래의 목적을 교육이 후대에 가서 상실하고야 만 것은 교육을 하거나 받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교육을 이용하였기 때문이고, 이러한 지배층의 우매함의 결과로 말기에 가서는 일제 식민지의 지배까지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이것은 지금 우리의 교육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시대가 바뀌면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이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단순한 명제이다.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아도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50년대 혹은 70년대식의 주입식 교육을 실시하고 있어, 세대를 반영하지 못하고 따라가지도 못하는 교육이 현 우리 교육의 최대의 문제점 중의 하나이다. 또한 우리의 교육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 절대로 빠지지 않는,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인한 주입식 교육, 즉 '살아있는 교육'이 아니라 '문자만의 교육'이 얼마나 나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지 우리는 조선 말기의 상황에서 잘 이해할 수 있다.
교육을 바로 세워야 나라가 바로 선다. 이것은 조선시대에 교육이 무너졌을 때, 나라에 얼마나 많은 혼란이 왔는지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문제점이 생겼을 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미시적인 교육 제도의 개편이 아니라, 과거의 교육제도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분석을 바탕으로, 앞으로 우리 교육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한 커다란 틀을 정하여 차근차근 개선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선시대의 교육을 살<참고문헌>
교육의 역사와 철학의 이해-장찬익
서원 - 이상해
교육의 역사. 철학 이론-성균관대학교 출판부
박의수 외 [교육의 역사와 철학](동문사,1998)
이만규 [조선교육사Ⅰ](거름 1988)
정낙찬, 이동기, 채휘균 [한국의 전통교육](영남대학교 출판부,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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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2.02
  • 저작시기20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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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84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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