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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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자유주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신자유주의의 정의

* 일본의 경우

* 전후 자본주의의 위기와 신자유주의의 대두

* 신자유주의적 국가개조

* 일본기업의 다국적화와 일본형 신자유주의

* 우리나라의 경우

* 신자유주의 과거와 미래

* 신자유주의 논쟁의 구도

* 미국의 사례

본문내용

론자가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은 '꽁무니 따라가기'라는 것이고, 대세에 적응하고 추수할 수 없으면 '당신은 낙오됩니다'라고 협박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는데, 이것들은 어느 것이나 일본형 신자유주의자가 이론적·사상적 자율성이 부족하고, 단지 미국이나 재계의 요청에 추수하고, 외적 상황에의 적응을 설파하는 데에 용감함을 말한 것이다.
일본형 신자유주의가 이렇게 상황적응형 혹은 대세추수형의 체질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카토 슈이치가 말하는 "지금·여기주의"라는 일본적 전통이 반복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현재의 이익에 민감하고, 주변상황(여기)에 눈을 빼앗기는 "지금·여기주의"의 신자유주의는 다름 아닌 일본적 매스컴의 마찬가지 "지금·여기주의"까지 가세하여 대세순응형의 집단히스테리라고나 불러야 할 규제완화 붐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 이상으로 위험한 것은 그 사상적 무절조 때문에 지나치게 그때그때의 권력과 유착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경향을 아울러 가지고 있는 점이다. 그 모습을 나는 경제전략회의나 행정개혁위원회 등의 정부심의회를 통해서 시장원리주의를 선전한 신자유주의자에게서 본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자유주의 과거와 미래
김영삼 정부 이후 우리 사회에서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에 대한 경제학적 인식은 별로 진전이 없어서 대체로 신자유주의를 레이건-대처식 신보수주의와 동일시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재야 진보세력이 김대중 정부를 비판적으로 지지하면서 신자유주의와 코퍼러티즘 사이에서 동요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논쟁의 구도
미국에서 법인자본의 금융화 및 구조조정이 진점됨에 따라 성장기 경제정책인 케인스주의는 불황기 경제정책인 새 케인스주의로 `개혁'된다. 50~60년대 케인스주의는 보수주의적 우파를 통합함으로써 자유주의적 중도좌파의 헤게모니를 실현한다. “
이제 우리는 모두 케인스주의자다”라는 닉슨의 선언은 이를 상징한다. 그러나 70년대 케인스주의의 헤게모니가 위기에 빠지면서 화폐주의를 매개로 신우파, 신보수주의가 등장하고, 80년대 중반 신중도좌파, 신자유주의의 새 케인스주의가 출현한다. 90년대 신보수주의는 또다시 신자유주의로 수렴하는데, 이를 넓은 의미에서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부를 수 있다.
전후 유럽에서 자유주의는 사민주의에 의해 대표되는데, 특히 독일의 경우 59년 고데스베르크 대회에서 코퍼러티즘으로 변질된 사민주의는 보수주의의 포스트파시즘적 `사회적 시장경제론'을 수용하기까지 한다. 90년대 이후 출현한 유럽식 신자유주의는 금융세계화에 순응하려는 현대화된 사민주의로서 `사회자유주의'라 불린다. 블레어의 `제3의 길'의 논거로 제시되는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자본주의'란 클린턴이 제시하는 새 케인스주의의 유럽식 변종이다. 클린턴과 블레어는 범대서양적 규모에서 신자유주의의 초민족화를 상징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의 수렴은 우파와 중도좌파의 분열 가능성이라는 정치적 효과를 생산한다. 극우 보수주의로서 인민주의 또는 커뮤널리즘(코뮌주의, 공동체자치주의)이 우파에서 분리되고, 자유주의 좌파로서 진보주의 또는 코퍼러티즘(조합주의)이 `좌파의 좌파'를 자처하면서 중도좌파에서 분리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아직 가능성일 뿐인데, 예를 들어 블레어에 대한 라퐁텐의 반대나 조스팽의 유보는 신자유주의와 코퍼러티즘의 절충이 계속 쟁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어쨌든 진보주의적 경향의 자유주의 좌파가 인민주의적 경향의 극우 보수주의와 연대해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 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유럽과 일본의 요구로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의 `뉴 라운드'에 대한 반대 투쟁은 미국의 방조라는 조건 속에서 복잡 다양한 정치적 경향들이 수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경우
'자본의 시대' '혁명의 시대'등 근대사 연구서로 유명한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봅은 시장자본주의의 전면적인 지배는 민주주의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홉스봅은 슈피겔지와의 회견에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에 대한 승리감에 젖어 자신의 문제를 외면함으로써 사회정의와 인간성을 구현하는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민주주의와 시장 사이의 모순이 현대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하고, 시장은 인간을 사적인 고객으로 취급하지만 민주주의는 공동체의 문제에 책임질 줄 아는 공적 시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시장의 전면적 지배는 곧 민주주의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또한 그는, 그러나 지난해 11월 시애틀에서 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 출범에 격렬한 반대 시위가 일어난 것 처럼 21세기에는 일방적인 시장의 지배에 대한 저항운동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20세기 중반에 역사상 최초로 '잉여의 시대'가 미국과 서유럽 등 일부 국가에서 도달했다고 보는 홉스봅은 21세기에는 경제성장 보다는 재화의 사회적 재분배가 더 중요한 문제로 대두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도 부국과 빈국 사이의 격차를 줄이는 일이 시급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세계 최상위 부자가 200명의 재산이 중국 전체의 국민총생산과 맞먹는 상황에 도달했으며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산업이 선진국에 편중됨에 따라 국가간의 빈부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자원의 사용도 시장에 맡겨놓을 수 없으며 정치적 제한이 더욱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21세기에도 세계를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을 것이갈는 질문에 대해 홉스봅은 부정적으로 대답했다. 미국이 군사개입을 통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극히 제한적이며 더욱이 미국의 지배력은 식민지가 아니라 위성국가 체제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위성국가들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홉스봅은 세계적으로 분리주의적·지역주의적 경향이 심화되는 것을 우려하면서 이제 강대국들이 세계를 통제할 수 있었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으며 서구의 인권 개념도 보편적으로 관철될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21세기에 새로운 강대국으로 떠오를 중국이 어떻게 새로운 위상을 차지하느냐 하는 것이 국제질서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띨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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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5.03
  • 저작시기2005.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5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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